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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 등록 2002.10.24(목) 제43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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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혼란의 ‘핵구름’이 몰려온다 ‘북핵 프로그램 시인’ 발표로 다시 얼어붙는 동북아 정세… 북한의 의도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지난 여름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고위 보좌관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파괴하기 위한 공격 계획을 마련해 보고했다. 우방국인 남한 정부와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북한에 대한 신속한 공격작전을 수행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소문이 퍼지자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토머스 파고 미 태평양함대 사령관 등 고위인사들이 나서 이를 무마시켰다.” 지난 9월 말 부시 행정부가 ‘국가안보전략서’를 내놓은 뒤 미국의 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가 이에 대해 보도하면서 언급한 내용이다. 보도가 나간 뒤 몇몇 국내 언론에서 이를 간략히 소개했지만, 커다란 이목을 끌지 못했다. 계획 입안단계에서 폐기된 것으로 전해진데다, 최근 들어 선제공격의 빌미가 될 만한 북한의 돌출행동이 없었던 탓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워싱턴의 분위기
하지만 지난 10월16일 밤(미국 현지시각) 미 국무부가 “북한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난 여름 확실히 알게 됐다”고 발표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미국 정부가 북한의 핵개발 계획에 대한 증거를 확보한 시점과 선제공격 계획의 입안 시점이 정확히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북핵 위기가 고조됐던 94년과 98년에 이어 지난 여름에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 한반도에 전쟁의 음습한 그림자가 드리워졌을지 모를 일이다. 서해교전에 대한 유감표명과 일본인 납치사건 인정 및 재발방지 약속 등으로 북한의 ‘충격외교’가 이어지면서 화해와 협력의 급물살을 타던 동북아 정세가 다시 얼어붙고 있다. 미 국무부의 발표가 나온 뒤 국내외에서 대북 강경론이 득세하면서, 워싱턴 정가에서는 “이라크보다 먼저 북한을 상대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왔다. 미국의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이를 두고 “북한이 국제 사회를 혼란의 원심분리기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표현했다. 현재까지 미국은 북한 핵개발 프로그램의 상세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채 “우방국과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제임스 켈리 미 국부무 동아태담당 차관보도 10월19일 서울을 방문해 북핵 문제에 대한 공동대처 방안 협의를 마친 뒤 “동맹국 및 우방과 논의하고 있으며, 부시 대통령은 아직 구체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워싱턴의 분위기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0월20일 행정부 고위관료의 말을 따 “부시 행정부는 북-미 기본합의를 파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도 10월20일
미국이 북-미 기본합의 파기를 공식 선언할 경우, 이는 북한을 고립·압박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여기에 대북 중유지원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마저 차례로 중단될 경우 북한으로선 동결했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재가동할 가능성이 높다. 자칫 한반도를 둘러싼 핵위기가 재연되면서 전운이 감돌 가능성마저 높다. 미국이 평화적 해결을 장담하고 있지만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위기는 이제 시작인 것이다.
북한과 이라크에 대한 상이한 태도
우려할 만한 것은 부시 행정부 내부의 대북 강경론이다. 미 국방부는 올해 초 의회에 제출한 ‘핵태세검토보고서’에서 이라크·북한 등 미국에 위협이 되는 국가에 대한 핵무기 사용계획을 내비친 바 있다. 파장이 커지자 미 정부는 “실제 행동에 옮기기 위한 계획용 문건이 아니라 단순히 21세기 억지력을 위해 필요한 사항들을 신중하게 정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격렬했다. 북한 외무성은 대변인 성명을 내어 “핵 미치광이들이 백악관을 차지한 현 상황에서 우리는 미국과 맺은 모든 약속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며 “1994년 맺은 북-미 핵합의를 폐기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켈리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북한이 보인 반응과 정확히 일치한다.
부시 행정부의 강경몰이는 지난 9월 공개된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다시 한번 확인됐다. 보고서는 테러리즘과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군사행동의 최우선 대상으로 삼고, 필요할 경우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특히 미사일 수출 문제 등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 전력을 거론해, 이라크에 이어 북한도 미국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냈다. 이는 북한이 “북-미 기본합의가 깨진 것은 미국 책임”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북-미 기본합의서에는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위협 또는 불사용에 관한 공식보장을 제공한다”는 이른바 소극적안전보장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이 발표된 뒤 미국 내에서 벌어지는 논란의 초점은 북한과 이라크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상이한 태도에 모아진다. 이라크와 한판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미국이 북한과는 “대화를 통해 평화적 해결방안을 찾고 있다”고 전혀 다른 대응책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북한과 평화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면, 이라크와는 왜 대화로 문제를 풀 수 없느냐”는 반론이 쏟아지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미국 내 대북 강경론자들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시인이 “단호하고 공세적이었지 사과성은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대북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93년 3월 북핵 문제가 불거지자 마자 북폭을 주장했던 워싱턴의 안보정책센터(Center for Security Policy)는 성명을 내어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을 비롯해 기본합의를 체결하는 데 책임이 있는 클린턴 행정부 관료들은 즉각 미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 단체 프랭크 개프니 회장은 10월17일 <내셔널 리뷰>에 기고문을 보내 “미국은 북한에 대한 봉쇄정책을 벌여야 하며, 사담 후세인과 마찬가지로 북한 정권과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대량살상무기의 위험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신이 북한이라면…”
아직까지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통해 핵무장을 했다는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으며, 가능성도 낮은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과학기술 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는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이 있는 것과 실제로 핵 기를 제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핵물질을 생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라며 “핵개발 프로그램은 그저 몇 사람의 아이디어 수준에 머무를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북한 핵개발 프로그램의 연구 및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지역이 불분명하다는 점 때문에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 가능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 사실을 알아낸 것이 위성 사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보에 의한 것이어서 특정 지역에 대한 공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북한 핵문제가 국제무대에서 가지는 예측 불가능성이다. 당장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 시인 배경에 대한 해석마저 천차만별이다. 미 노틸러스연구소 피터 헤이즈 소장은 “중요한 것은 왜 북한이 핵개발 프로그램 보유 사실을 시인하면서, 미국이 제네바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장시간 설교를 늘어놓았느냐는 점”이라며 “당신이 북한이라면 문제를 해결할 생각 없이 왜 협약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겠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10월17일 기자 브리핑에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한 것이 어떻게 대화를 위한 좋은 징조로 보일 수 있는 지 이해할 수 없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해체하기 전까지 어떤 대화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고 보면, 제네바합의 파기 이후 상황이 어떤 국면으로 이어질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케네스 퀴노네스 전 미 국무부 북한담당관은 10월20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는 미국이 주장하는 대량살상무기 문제이기에 앞서 한반도 문제이며, 따라서 우선적으로 남북한 간에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파괴되는 것 역시 서울이지 워싱턴이 아니다. 서울은 잃을 것이 너무 많은 반면 워싱턴은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는 그의 지적은 94년 핵위기 당시 한반도를 휘감은 전쟁의 그림자를 모른 채 지나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논란의 와중에도 남북장관급회담이 예정대로 열린 것에서 희망의 단초를 발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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