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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 등록 2002.10.17(목) 제43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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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한총련 문제는 민주주의 문제 사법부는 ‘녹화사업’과 다름없는 법적 폭력을 어떻게 묵인할 수 있는가
지난 9월 광주법원에서 한총련의 이적성을 둘러싸고 증언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한총련 내에 일부 주사파도 있고, 96년 연세대 사태처럼 극렬 투쟁도 하니까 으레 그렇듯이 한총련이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있거니 하고 생각했다. 더구나 내가 한총련의 노선에 좀 비판적이기까지 해서 이런 생각은 무의식처럼 내 안에 존재했다. 그러나 자세한 사항을 들여다보고, 나는 한총련 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이다’라는 판단을 하게 됐다.
민노당 강령이 더 급진적이다
먼저 한총련은 일부 주도그룹의 이념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매년 재구성되는 전국 대학생 혹은 학생회의 대표기구다. 이것은 ‘결사의 자유’에 관한 문제다. 그런데 매년 재구성될 한총련이 미리 이적단체로 규정돼 있고, 한 학생이 총학생회장이나 학생회장으로 당선되어 가입을 승인하면 바로 이적단체의 구성원이 되어 수배되는 것은, ‘반민주적’이라기보다는 ‘법적 폭력’이라고 판단됐다. 이것은 사회의 비리와 폭력조직을 소탕한다는 이름으로 문신 새긴 모든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삼청교육대로 끌고 간 전두환의 정화조치와 거의 다를 바 없다. 이런 상황을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어떻게 묵인하고 승복하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둘째, 한총련의 강령이 급진적이어서 이적단체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논리도 있는 것으로 안다. 한총련 강령의 핵심인 자주·민주·통일은 80년대를 경과하면서 비판적·진보적 학계나 사회운동 진영의 최대공약수가 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불온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상식을 반복하는 것이다. 합법정당인 민주노동당의 홈페이지에서 본 강령이 한총련보다 최소한 언어상으로 훨씬 더 급진적이었다. “노동자와 민중 주체의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며, 민족의 통일을 반대하고 자주권을 억압하는 미국을 포함한 모든 외세와의 불평등 조약 및 협정을 무효화”하고, “최소한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방식의 통일이라도 이루어”야 한다고 하는 민주노동당의 주장보다 최소한 언술상 한총련의 강령이 더 급진적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없다. 검찰은 말보다도 사실에 있어 ‘한총련은 친북적이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검찰의 말대로 설령 일부 주도그룹이 친북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한총련이라는 대중조직을 친북적이라고 규정해야 할 근거가 되지 않는다. ‘결사의 자유를 악용하기 때문에 결사의 자유를 허용하지 말하야 한다’는 것은 바로 독재시대에 우리가 들어왔던 논리다. 반정부 집회가 아닌 경우에만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반정부 이념 동아리를 만들지 않아야 학내에서 자유로운 동아리 활동을 허용한다고 하면 과연 그것이 민주주의인가.
우리 시대 판사들의 생존방식 셋째, 실정법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판사들이 어떻게 생존하는지를 말해줄 뿐이다. 5·16 이후 민족일보 사장에게 사형을 언도한 판사들, 그리고 74년 2차 인혁당 사건의 담당판사들도 당시의 정치현실과 실정법적 현실로 스스로를 변호하며 ‘사법살인’을 내렸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 판사들이 무슨 말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다행히 용기 있는 판사들이 있어 대전지법 1심 판결에서 전향적 판결을 내려 한총련 합법화의 길을 터- 물론 고등법원에서 역전되었으나- 놓았다. 판사들의 이러한 전향적인 노력들이 그나마 사법부에 대한 우리의 일말의 기대를 유지하는 근거라고 생각된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자고, 비상식이 상식화된 현실에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자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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