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10월31일 제432호 

아, 그 악마 같은 발자국 소리!

사형수 출신들이 보는 사형제도

방 앞에서 멈추면 죽음이요, 지나쳐 가면 삶… 정치범 사형도 협박이나 장난 아니었다


사진/ 김성만ㅣ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사형선고 ·연세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나는 1985년에 구미유학생사건으로 체포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판결을 받았다. 미국에서 정치학 석사과정을 밟다가 재미교포의 소개로 유럽의 북한 대사관을 방문해 그들과 민족문제를 놓고 이런저런 토론을 한 것이 전두환 정권에 포착돼 간첩죄로 기소된 것이었다. 간첩행위를 하지 않았는데도 사형선고를 받은 사실은 해외의 인권운동가들 사이에서 대단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국제적으로 구명운동이 벌어졌지만 전두환 정권의 철옹성 같은 독재정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예고 없는 사형집행일

정치범에 대한 사형선고는 그냥 한번 해보는 협박이나 장난이 아니었다. 한번은 재소자들과 함께 강당에서 예배를 보며 선배 정치범 사형수들 사이에 앉게 되었다. 나이가 젊은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그분들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예배를 보았는데, 사흘 뒤 사형집행이 있었고 내 양 옆의 사형수들이 그날 이슬처럼 사라졌다. 내가 서울구치소에 입소하고 나서 1년 사이에 사형집행이 두번 있었는데 정치범은 7명이 사형집행을 당했다. 나의 집행순서도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 다음 번의 사형집행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명단에 있고 없고는 미리 알 수가 없다. 미국처럼 사형집행일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 죽으면 죽는 것이고, 살아나면 명단에 없는 것이다. 사형집행일은 그야말로 쥐 죽은 듯 조용하다. 한쪽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으므로 숨소리 이외에는 들리는 것이 없을 정도다. 단 한 가지 크게 울리는 소리가 있다. 교도관들이 사형수를 끌어내기 위해 몰려다니는 발자국 소리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와서 방 앞에서 멈추면 죽음이요, 지나쳐 가면 삶인데 20분쯤 뒤에는 악마 같은 그 소리가 다시 시작된다. 한번은 집행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가 교도관들에게 소원을 말하기를, 절친한 동료 사형수의 얼굴을 한번만 보고 작별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해서 동료 사형수를 잠시 끌어냈으니, 그 사형수에게는 얼마나 잔인한 일이었을까.

사형수의 고통은 정신적 고통에 그치지 않는다. 사형선고를 받으면 24시간 수갑을 차야 한다. 낮에는 앉아 있으므로 수갑이 덜 고통스럽지만 밤에 누워 있을 때는 팔목과 어깨가 보통 아픈 것이 아니다. 반듯이 누우면 팔에 무게가 있으므로 저절로 팔이 내려가는데 그러면 수갑의 날카로운 금속이 팔목을 파고든다. 팔목이 아파서 모로 누우면 누운 쪽 어깨가 잠시 후 저려오고 수갑에 채인 다른 쪽 팔도 아파온다. 결국 밤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밤을 보내게 된다. 사형수 때 나는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사람 중에서는 가장 불쌍한 존재고, 나보다 더 불쌍한 존재는 짐승 속에서 찾아야 할 것 같았다.

국민의 생명존중 의식 더 깊어져야

우리도 선진국, 그리고 다른 많은 국가들처럼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규범을 갖추면서 사형제도를 폐지할 수는 없을까 사형제도 폐지는 법으로 하는 것이고 입법부에서 해야 할 일이다. 그 사람들은 정치가들이다. 그들에게 사형제도 폐지 여부는 정치적 부담의 문제가 된다. 사형제도를 폐지한 상태에서 혹여 막가파라도 나타나 피해자의 간을 뽑아 서로 나누어 씹어먹는 엽기적인 사건이라도 일어나면 범인들을 사형에 처할 수 없는 현행 제도에 대한 들끓는 여론을 정치가들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가들이 사형제도를 용기 있게 폐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 속에 생명존중 의식이 더 깊이 자리잡아야 한다. 사형제도 폐지의 주장이 굳이 과반수를 차지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생명을 존중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고, 정치가들의 부담을 견딜 만하게 해줄 때 사형제도는 용기 있는 정치가들에 의해 폐지될 것이다.







.




↑Back to th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