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 이후에도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 계획을 추진해왔음을 시인해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북한은 핵물질로 플루토늄이 아닌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기 위한 원심분리기 설비를 도입해 우라늄 농축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한개의 핵무기 우라늄을 만들려면…

사진/ 북한이 몰래 수입해 우라늄 농축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원심분리기. 이 장비에 의한 우라늄 농축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현재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얼마나 생산했는지, 실제로 핵무기를 만들었는지 여부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이해 당사국인 미국을 비롯해 남한·일본·중국 모두가 대화로 문제를 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핵문제를 둘러싼 현재 상황은 최악의 경우 군사적 충돌도 배제할 수 없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북한의 핵개발이 어느 단계에 이르고 있는지,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지 등을 진지하게 모색할 시점이다.

고농축 우라늄은 우라늄 동위원소의 하나다. 핵물질인 우라늄235가 20% 이상인 우라늄을 뜻한다. 천연 우라늄의 경우 우라늄235는 0.7%이며 나머지는 거의 대부분 우라늄238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고농축 우라늄을 만들려면 우라늄235의 비율을 높이기 위한 특별한 농축설비가 필요하다. 우라늄 농축 방법으로는 가스확산법·원심분리법·레이저분리법이 대표적이다. 이 중 원심분리법이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이용된다.

현재 핵무기에 사용되는 핵무기급 우라늄은 우라늄235가 90% 이상인 고농축 우라늄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까지는 그 이하 농축도의 고농축 우라늄도 핵무기로 사용 가능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무기에 사용된 우라늄의 농축도는 70%였다. 북한은 우라늄 농축을 위해 원심분리기를 주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부분적으로 레이저 분리기술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원심분리기는 전력소비가 적고 지역적으로 분산해 우라늄을 농축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높이 1∼2m에 지름 20cm 크기의 원심분리기 하나의 분리능력은 연간 약 5SWU(우라늄 농축 단위)다. 약 250kWh의 전력으로 핵무기급 우라늄을 연 약 30g 생산할 수 있다. 제조가 비교적 쉽다고 알려져 있는 ‘건타입’(gun-type) 우라늄 핵무기의 경우 50kg 정도의 핵무기급 우라늄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한개의 우라늄 핵무기 제조를 위한 핵무기급 우라늄을 만들려면 1700여기의 원심분리기를 1년간 풀가동해야 한다. 농축 우라늄으로 이미 핵무장을 한 파키스탄은 1990년께 2천여기의 원심분리기로 연 60kg 정도의 핵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북한이 지난 90년대 말부터 원심분리기를 도입해 우라늄 농축을 시도해왔다는 미국쪽 정보에 근거하면 고농축 우라늄 확보량은 심각한 수준은 아닐 것으로 예상된다. 원심분리기를 대량 확보하였을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다. 가령 100기의 원심분리기를 5년간 쉬지 않고 돌렸다고 치더라도 고작 15kg 정도의 핵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을 뿐이다. 레이저분리법에 의한 우라늄 농축은 아직 세계적으로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이다. 북한이 이 기술을 써서 원심분리기만큼의 고농축 우라늄을 확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현재 북한이 그동안 원심분리기를 이용해 핵무기급 우라늄을 우려할 수준의 양을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북한이 원심분리기를 대량으로 확보해 우라늄 농축을 앞으로도 계속한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또 북한이 원심분리 방식이 아닌 고농축 우라늄 덩어리를 외국으로부터 대량으로 들여왔을 경우도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북-미간의 플로토늄 문제

사진/ 북한 영변의 핵시설(왼쪽)과 이를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모습(오른쪽). 현재로서는 핵사찰을 수용해 핵무기 개발 의혹을 완전히 불식시키는 길만이 최선일 것이다. (연합뉴스)

여기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게 있다. 우라늄 농축은 많은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고농축 우라늄은 이를 이용한 핵무기 제조가 단순하며, 플루토늄 핵무기와는 달리 사전에 폭발시험을 하지 않고도 실전에 사용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북한의 플루토늄 문제는 고농축 우라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제네바합의 준수사항과 관련하여 1994년 5MW급 흑연로에서 방출된 30kg 정도의 핵무기급 플루토늄이 포함된 사용후 핵연료 48t은 현재 밀봉상태로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 아래 놓여 있다. 북한은 1989년에 8kg 안팎의 핵무기급 플루토늄이 든 사용후 핵연료 25∼50t을 5MW급 흑연로에서 몰래 추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북-미 간에 협의되지 않았지만 1975년 소량의 플루토늄 추출 경력이 있는 연구용 원자로 IRT-2000의 사용후 핵연료 문제가 있다. 미국 국립연구소는 그간 누적된 IRT-2000의 사용후 핵연료는 10kg 안팎의 플루토늄을 담고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미국은 북한이 2기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는 IAEA의 특별핵사찰을 통해 밝혀져야 할 것이다. 1기의 핵무기 제조를 위한 플루토늄량은 대략 4∼5kg 정도로 알려져 있다.

고농축 우라늄에 견줘 플루토늄은 정확한 추출량은 알 수 없으나 북한이 제네바합의 이전에 확실히 추출하였으며 앞으로도 핵동결이 풀리면 언제든 사용후 핵연료로부터 다시 추출 가능하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더구나 이들 사용후 핵연료로부터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북한의 재처리시설은 현재 동결상태지만 언제든 재가동할 태세를 갖추었다.

지난 94년 북한의 핵개발을 동결한 제네바 기본합의를 체결한 뒤 8년째를 맞고 있다. 하지만 지금 북-미 양쪽의 비협조적 상황으로 경수로사업과 그에 맞물려 진행되는 북한의 핵사찰 수용 모두가 미뤄지고 있다. 9월17일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 핵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모든 국제적 합의를 준수할 것이라고 밝히기는 했지만, 10월3일부터 사흘간 평양에서 진행된 북-미 고위급회담의 결과는 북한 핵문제의 암담한 앞날을 예고한다.

두 나라는 핵사찰 수용 시점에 대해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였다. 미국은 경수로 1호기가 적어도 2008년까지 완공되려면 경수로 핵심부품 반입 예정인 2005년까지 핵사찰을 마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북한은 2005년 중반 정도로 예상되는 경수로사업의 상당부분 공사가 끝난 뒤 IAEA와 핵사찰에 대한 협상을 진행해 2∼3개월 안에 핵사찰을 완료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핵사찰 소요 기간을 추정해보면 이렇다. IAEA와 북한 간 핵사찰 범위 협의에 수개월, 핵사찰을 위한 특수장비 제조 및 설치에 1년, 핵사찰 수행에 2∼3년, 그리고 최종보고서 작성에 수개월이 걸리므로 적어도 4년 정도 예상된다. 만약 북한이 핵사찰을 2005년 중반께 받아들인다면, 경수로사업은 상당부분 공사가 끝나는 2005년 중반 이후부터 핵심부품이 반입되지도 않은 채 중단될 게 뻔하다. 이럴 경우 경수로 1호기 완공은 2012년 이후에나 볼 수 있다. 북-미 두 나라의 주장이 크게 다른 까닭은 핵사찰 수용시기에 대한 제네바합의의 모호성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경수로사업의 상당부분이 이행되기 전까지 핵사찰 수용을 거부한다고 해서 이를 강제할 방법은 없다.

경수로 해결, 남쪽에서 할 일

사진/ 북한 금호지구의 경수로 공사모습. 북한이 핵사찰을 미루면 그만큼 경수로사업은 더 지연될 수밖에 없다. (AFP연합)

그렇지만 북한이 핵사찰을 미루면 그만큼 경수로사업은 더 지연될 수밖에 없다. 총사업비 46억달러의 경수로사업이 더 미뤄지면 북한에 제공되는 연 1억달러 정도의 중유공급 비용에 더해 연 3억달러 가까운 사업추가비용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회원국들이 부담해야 한다. 이는 KEDO 회원국들에게 심각한 정치·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해 경수로사업의 진행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북한이 IAEA 핵사찰을 즉각 수용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물론 미국도 북한의 태도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 우선 북한은 핵사찰 즉각 수용을 발표하고 과거핵 규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이에 대한 인센티브로 미국은 북한의 핵사찰 수용시기에 발맞춰 북한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상당량의 전력(연 50만kW 발전설비 용량 정도)을 1호기 완공 전까지 추가로 제공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또 미국은 북한이 품고 있는 경수로사업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과 선제핵공격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제스처도 보여줘야 한다. IAEA 핵사찰에 따라 북한의 과거 핵존재가 드러나더라도 경수로사업은 중단 없이 계속될 것이며, 제네바합의에 명시된 대로 북한을 핵무기로 위협 또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밝혀야 한다. 50만kW의 전력공급에 필요한 추가 비용은 북한 전력지원에 긍정적인 뜻을 보여온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더 구체적인 다음과 같은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첫째, 경수로 2기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앞으로 10∼20년 정도 전량 또는 상당량을 적절한 가격으로 남한이 수입해 이용하는 방안이다. 이를 통해 남쪽은 국내 전력공급량을 높일 수 있고, 북한은 수억달러가 소요될 기존 전력망의 개선 없이는 이용하지도 못할 경수로 전력을 수출해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리게 될 것이다. 북한 경수로에서 국내로 끌어오기 위해서 필요한 송배전망 건설비용은 한국 정부가 어느 정도 부담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핵무기 개발 의혹 불식만이 최선

둘째, 전력 인프라 시장 즉 북한의 전력망 개선 및 중소형 발전설비 시장에 국내 민간기업을 진출시키는 방안이다. 이를 통해 국내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게 될 것이고, 북한은 자국의 경제·산업 발전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셋째, 북한 흑연로 및 재처리시설의 해체작업에 남쪽 민간기업을 앞세우는 방안이다. 북-미 기본합의에 따르면 경수로 건설이 이뤄지면 북한 핵시설 해체작업 또한 완료되어야 한다. 핵시설 해체는 가까운 장래에 가장 주목을 받을 사업이다. 북한 핵시설 해체작업을 통해 얻을 기술적 노하우로 국제시장 진출을 꾀할 수 있으므로 국내 기업들이 관심을 가질 만하다.

결론적으로 북한이 핵사찰을 수용한다면 장기적으로는 경수로를, 단기적으로는 상당량의 전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또 미국으로부터의 안보상의 우려를 해소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핵사찰을 당장 수용해 핵무기 개발 의혹을 완전히 불식시키는 길만이 최선일 것이다. 물론이 과정에서는 한국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강정민/ 핵공학박사 jmkang55@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