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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배, 질식하는 젊음 교정 담벼락 안에 갇힌 한총련 수배자들의 옴니버스 이야기…“우리들의 존재를 알려야 하고 알아야 해요”
프롤로그
부산대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수배자들을 만나러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부산을 찾은 것은 지난 10월10일 오후 5시, 초가을의 날렵한 햇빛이 금정산 너머로 막 넘어갈 무렵. 부산대 정문 앞에서는 이 학교 수배자 12명이 기획·제작·출연한 ‘수배자들의 게릴라콘서트’ 준비가 한창이었다.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연습을 하며 왁자지껄 떠드는 학생들에게서 수배의 그늘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다.
“힘들고 지칠 땐 내게 기대~. 언제나 네 곁에 서 있을게….” 공연은 god의 <촛불하나>로 흥겹게 시작했고, 수배 생활을 풍자한 개그와 콩트, 독창으로 이어졌다. 툭하면 대사와 노래 가사를 까먹는 어설픈 공연이었지만, 구경온 학생들은 연신 깔깔거렸다.
“밝은 곳으로 나와서 이렇게 같이 노니까 참 좋아요. (저들의) 존재를 알려야 하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죄지은 것도 별로 없잖아요.” 청중의 맨 뒷줄, 선 채로 노래를 따라 부르던 이정희(21·미대 서양화과 3)씨는 “운동권은 아니지만 저들의 생각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청중들은 공연 중간중간에 미리 준비한 꽃다발을 수배자들에게 바쳤고, 수배자들은 그 꽃을 쑥스러운 듯 받아안았다. 금정산 자락의 어둠은 그렇게 찾아왔다.
코알라를 닮은 우식이
“제 수배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쓰러지셨어요. 워낙 당뇨가 있으셨는데, 폐결핵에 늑막염까지 겹쳐 농사일을 못하시게 됐죠. 어머니는 제가 중3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막내누나와 단둘이 살고 계시는데, 막내누나 결혼식이 며칠 남지 않았거든요. 이제 아버지는 누가 돌봐드리죠” 공연 때의 발랄함은 온데간데없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친척들은 그가 어머니 제사에도 오지 않자 “빨갱이가 되더니 독해졌다”고 욕했다. 심지어 패륜아라는 얘기까지 들렸다. 경찰이 집에 찾아오고 공무원인 매형한테도 회유와 협박이 돌아갔다. “집으로 전화해서 조카들이 받으면 ‘너희들은 삼촌 때문에 외국도 못 나간다’고 협박한대요. 워낙 작은 마을이라 소문도 금방 퍼졌죠. 아버지는 막내누나가 결혼하면 고향을 떠나시겠다고 한대요. 가실 곳도 없는데….” 그는 “양심과 신념을 꺾지 않은 데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지만, 정작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후회하지 않을까” 두렵다고 했다.
심장병을 앓다 99년 2월부터 4년째 수배자 생활을 하고 있는 부산대 총학생회장 윤용조(24·철학과 4)씨. 99년 2월 인문대 학생회장으로 당선됐을 때부터 수배자가 됐다. 99년까지만 해도 형사들이 학교에 쳐들어와 자고 있는 수배자들을 연행해갔다고 한다. “밤이 되면 후미진 강의실로 흩어져 신문지를 깔고 숨어서 잠을 잤어요. 긴장감이 극도로 심했죠. 게다가 잦은 단식투쟁에 불규칙한 식사, 불편한 잠자리…. 그렇게 4년이 지나니까 몸이 다 망가졌죠.” 그는 심장이 좋지 않다. 병원 진찰을 정확히 받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조이는 느낌이 있고, 현기증과 호흡곤란을 겪기도 했다. 최근 1주일 동안은 거동도 못하고 꼼짝없이 누워 지냈다. 인터뷰 중에도 아픔을 참는 듯 여러 차례 입을 앙다물곤 했다. 변장을 하고 학교를 빠져나가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지만, 요즘엔 그저 임기가 끝나가면서 긴장이 풀려서 그러려니 하고 참고 지낸다. 그의 소원은 여자친구의 아버지에게 당당하게 인사드리러 가는 것이다.
복적생의 꿈
가을 햇살이 눈부신 한양대 교정에서 만난 박무웅(24·기계공학과 4)씨는 초췌한 모습이었다. 99년 11월 공대 학생회장에 당선된 뒤부터 학교 안에서 도피 생활을 하는 그는 수배자로서 어느덧 세 번째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수줍음 많고 말 잘 듣는 ‘범생’이었던 그가 운동권이 된 사연은 단순했다. “대학에 들어오니까 누구든지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더라고요. 그게 좋아서 선배들 좇아서 집회에 따라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생회 활동을 하게 됐죠.” 97년 한총련 출범식에 참가한 박씨는 경찰에 연행돼 1주일간 구류를 살았다. 집안은 발칵 뒤집혔고, 아버지는 맏아들을 “없는 형편에 무리해가며” 10개월 동안이나 어학연수를 보냈다. 하지만 98년 여름 돌아온 박씨는 다시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옳은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과 학생회장과 공대 학생회장을 거쳐 2001년 총학생회 부회장이 되면서 ‘A급 수배자’가 됐다. 박씨는 지난해 1학기에 학사경고 누적으로 제적됐다가 올 2학기에 복적했다. 다시 수업을 들으면서 복학생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듣게 되더라고요. 고등학교 졸업 뒤 처음으로 수업이 재미있어요. 그런 내가 신기해요. 이번에 노벨 물리학상을 탄 일본인이 대학 때 꼴등으로 졸업했다더군요. 문득 나도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농담 속의 번민
하지만 “수배자 생존율 상위 1%에 들 것”이라는 그의 농담 속에서는 교정의 담벼락에 갇혀 세상에 다가갈 수 없는 진한 고독감이 비쳤다. 박씨와 함께 학생회 활동을 한 친구들은 박씨의 수배기간에 군 복무를 마쳤거나 벌써 졸업해 가정을 이루기도 했다. “언제까지고 마냥 이렇게 지낼 수는 없고, 사회진출을 준비하긴 해야 겠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할 뿐이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놓고 다시 휴학원서를 낸 것도 학생신분을 좀더 유지하려는 도피행위였는지 모른다. 얼마 전부터 한자와 컴퓨터 공부를 시작했다는 박씨. 그가 교정을 벗어나 다시 세상과 마주할 수 있기까지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하는가.
수배자와 수배자 아닌 것의 차이
동아리연합회장인 정씨는 지난 7월 경찰의 출두요구서를 받은 뒤 3개월째, 학교에서 불과 10여분 거리에 있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조금씩 성격이 예민해지고, 가끔 우울해지는 것은 학교를 벗어날 수 없다는 갑갑함 때문일 것이다. 여름 옷 몇벌 달랑 들고 집을 나선 터라 추워지는 날씨도 걱정거리다. 하지만 정씨는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학생들이 직접 뽑은 자치기구의 대표가 당선과 함께 자동적으로 수배돼 3~4년씩 도피생활을 하고 있어요.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던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어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맛있는 것 먹고 영화 보는 걸로 풀던 대학생 정현진씨는 지금 체제를 전복하려는 이적단체의 구성원으로 쫓기는 신세다.
에필로그
지난 7월, 경찰로부터 소환장을 받은 서울지역 한총련 대의원 명이 한꺼번에 서울경찰청으로 자진출두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포상과 특진 기회가 사라지는 걸 우려한 것일까 경찰은 ‘한 사람씩 찾아오라’며 이들을 되돌려보냈다. 학생들을 검거하는 일이 사회안전 보장을 위해 긴요한 일이 아님을 경찰 스스로 폭로한 셈이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825명의 대학생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으며, 이 중 90%가 한총련 관련자들이다. 그리고 해마다 500~600명씩의 한총련 관련 수배자가 새롭게 양산되고 있다. 부산 하늘에 인공기가 펄럭이고 북한 공동응원단의 공식 팬클럽이 버젓이 활동하는 지금.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묶어두려는 공안당국의 시계는 몇시를 가리키고 있는가 이 거대한 부조리 현상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이재성 기자 firib@hani.co.kr·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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