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10월17일 제430호 

한총련이 변하고 있다

'6·15 선언 지지' 등 강령 변화와 함께 대중적 조직으로 탈바꿈하려는 노력들

이적규정 5년째, 한총련이 변하고 있다. 공안당국이 이적단체로 낙인찍은 주요 근거가 된 연방제 강령은 이미 지난해 '6·15 남북 공동선언 지지'로 바뀌었다. 96년 연세대 사태나 97년 한총련 출범식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적 투쟁방식' 역시 산발적 점거 시위 등을 제외하곤 사라진 지 오래다. 최근에는 10기 의장 김형주(전남대 총학생회장)씨가 재판과정에서 "흡수통일에도 반대하지만, 적화통일도 반대한다"는 내용을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밝히기까지 했다.

특정정파만의 조직을 탈피한다


사진/ 지난 5월4일 제10기 한총련 출범식을 마친 대학생들이 범청학련의 청년학생결의대회에 참가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일부에서는 여전히 이런 변화의 몸짓 역시 "북한의 지령에 따른 것"이라고 폄하한다. 오는 10월21일 결심공판을 앞둔 김형주씨에 대한 검찰의 기소내용에도 "북한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설정하고, 북한의 대남사업부서인 통일전선부의 사실상의 지휘·조정을 받고 있고, 남한 사회를 뒤집어엎으려고 시도하고,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으로 채워져있다.

그러나 이런 공안당국의 인식은 10기 한총련의 지난 10개월 동안의 활동내용을 보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온 국민의 관심을 끈 F-15K 도입 반대운동을 비롯해 미군 궤도차량에 의한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 농촌 및 수해지역 봉사활동, 대의원 대회 및 출범식 등이 한총련의 올해 주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강령 개정과 함게 한총련의 낡은 구조를 바꾸기 위한 개혁작업도 시작되었다. 한총련이 "특정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정치조직이 아니라 대중적 학생자치단체연합이라는 본래의 역할에 맞게 재조직돼야 한다"는 주장이 한총련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이적규정 뒤 고립된 채 특정 계열의 기구가 되다시피한 한총련의 현실인식에서 비롯됐다.

지난 93년 4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를 이어 전국 183개 대학 총학생회장·단대학생회장 1600여명이 모여 창립 대의원 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한 한총련은 지난 97년 이적단체로 규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민족해방(NL) 계열과 민중민주(PD) 계열 등 학생운동권의 좌·우파가 참여한 경선을 통해 의장을 선출했다.

그러나 97년 5기 의장 선출 뒤부터 사실상 경선이 중단되고, 민족해방 계열이 의장을 잇따라 배출하면서 한총련의 대중성은 급격히 약화했다.

한총련의 거듭남은 이적규정 철회부터

낡고 비밀스런 '80년대식' 조직체계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학생들의 직접투표로 선출되는 대의원들과는 달리 사실상 한총련의 활동방향을 결정하는 중앙집행위원회·상무집행위원회 등 중앙 집행국 간부는 전년도 집행부에 의해 미리 임명된다. 대법원의 이적규정 뒤 지닌 5년여 동안 한총련 중앙간부 수십명이 징계 또는 제명되고, 간부 인선을 둘러싼 마찰이 끊이지 않은 배후에는 이런 구조적 경직성이 자리잡고 있다. 10기 의장으로 당선된 김형주씨가 가칭 '한국민주학생연합'(민학련)이라는 학생운동권의 새로운 연대체 건설 등 개혁공약을 내건 것도 이런 고민을 반영한다.

한총련 5기 의장을 지낸 강위원(31)씨는 "강령·규약개정과 함께 한총련이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학생자치기구로 거듭나기 위한 내부 노력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한총련에 대한 이적규정 철회는 학생운동권의 합리적 재편과 한총련의 제자리 찾기를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인화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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