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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구제불능이야!” 후보단일화론으로 쟁점 이동한 민주당 분란, 더욱 거칠어진 노무현 흔들기의 실체
사도세자가 될 운명?
시간이 흐르면서 노 후보를 흔들어대는 바람은 갈수록 거칠어진다. 박상희 의원이 “이제 민주당 대표와 대통령 후보를 우리가 접수하겠다”고 말하더니, 박양수 의원은 “사실 노 후보는 중앙선관위에 후보로 등록해야 우리 당 후보가 된다”고 원천적으로 후보 지위를 부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수도권 한 초선의원은 “노 후보는 후보로 선정됐으면서도 대선에 나서지 못하는 ‘사도세자’가 될 운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200만명이 참여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경선에서 선출된 후보에게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물론 지지도 하락에서 모든 문제가 비롯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도 5년 전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에게 거의 더블스코어로 뒤지던 때가 있었다. 그래도 국민회의에서 후보교체론이 나오지는 않았다. 노 후보가 의원들을 끌어당기는 구심력을 잃은 반면, 의원들이 노 후보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는 원심력은 다양한 형태로 작용하고 있다. 약한 구심력과 강한 원심력의 자장에는 노 후보의 역량이 놓여있지만, 3김 시대가 곱게 물러나지 않고 노 후보에게 후폭풍을 불러일으키는 과도기적 상황도 한몫하고 있다.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사라지고 새로운 민주적 리더십은 형성되지 못했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과거 3김 시대의 한 대표는 “과거에는 3김이 공천 주고 당선시켜주고 정책개발비도 주고 했기 때문에 강한 리더십이 형성되고 거의 모든 의원들이 복종했다”며 “그러나 이제는 너나 나나 다 똑같다는 생각이고, 승복의 문화가 정착돼 있지 않다 보니, 끼리끼리 이해관계에 따라 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이를 통합하고 조정할 리더십은 없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중진의원도 “3김은 꼭 대통령이어서 제왕이었던 것이 아니라 야당 총재이거나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어도 제왕이었다. 의원들을 당선시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구청장·시의원·구의원들까지 다들 자기 돈 써가면서 알아서들 뛰었다. 그런데 지난 6·13 지방선거로 모든 것이 날아갔다”고 말했다. 돈 사정도 마찬가지다. 김경재 의원은 “정몽준 의원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의원들을 만나보면 ‘정몽준 당을 하면 돈이라도 원없이 쓸 수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들을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는 3김이 퇴조한 이후에도, 민주당에서 나름대로 계보원을 거느리는 중진들이 의원들에게 후원회·해외여행·골프 등 기회 닿을 때마다 몇백만원씩 지원해주는 관행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의원들 사이에 일정한 기대심리가 형성돼 있는 것과 관련돼 있다. 이에 비해 “노 후보는 돈도 공천권도 없으니, 아무도 무서워하질 않는다”고 한 측근 의원은 전했다. 그는 “의원들을 만나도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의원들은 자금지원에 대한 기대를 하고 만나나 본데 아무것도 없으니 ‘도대체 왜 만나자고 한 거야’라는 투덜거림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아무도 무서워하질 않는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일부일 뿐, 근본적으로는 2004년 총선에 대한 불안감이 민주당 의원들을 동요하게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선에 대한 관심은 뒷전이고 대선 패배가 불러올 총선 지형의 불리함이 우선 관심사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표적인 취약지역이 충청권으로, 송석찬·송영진·홍재형·박병석 등 이 지역 대부분의 의원이 반노 성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 의원은 “자민련과 이인제 의원이 민주당에 팽당했다는 감정이 극에 달해 있으며, 반민주당 결집도가 영남보다 높은 75%에 이르고 있다”고 충청권 분위기를 전했다. 충청권 의원들의 이런 상실감은 수도권으로도 번지고 있다. “충청표는 떠나고, 영남표는 오지 않고, 호남은 투표장에 안 가는 상황” 때문이다. 강성구·남궁석·박병윤 등 경기 남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레인보우’ 모임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 모임은 김홍일 의원 탈당 요구의 진원지였으며, 자민련과 연계돼 있는 이한동 의원과 가장 먼저 접촉하는 등 충청권과의 연대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노 후보의 정무특보인 천정배 의원은 “호남·충청 연합 구도 속에서 당선된 수도권 의원들이 옛 구도에 대한 향수가 짙다. 그러나 대선은 총선과 달라 호남·충청 지역연합만으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비판했다.
‘여당만 하던 사람들의 몸부림’
정몽준 의원과의 특수성이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 문화방송 사장 출신의 강성구 의원은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을 취재하던 기자시절 정몽준 의원으로부터 ‘아저씨’라고 불릴 정도로 정 의원과 깊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인지 강 의원은 현역의원으로는 유일하게 정 의원의 텔레비전 토론회 행사장에 참석하거나, 의정보고서 내용을 월드컵 4강 달성 축하 내용으로 도배했다. 이에 반해 한때 노 후보에게는 <조선일보>와의 화해를 수차례 건의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대선기획단에서 중도하차하는 등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른바 ‘구당파’의 좌장격인 최명헌 의원은 이북7도민회장 출신이라는 점과 그의 반노 행보가 관련돼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최 의원 스스로도 “이북7도민들은 실향민 출신인 정 의원에 대한 지지가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삶의 기반’이 다른 데서 오는 불일치도 존재한다. 수도권 한 중진의원은 “내가 정치자금을 조달받는 모임이 3군데 있다. 한 모임은 멤버가 10여명으로 대부분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 모임에서는 노무현의 노자도 못 꺼내게 하는데 내가 어떻게 노 후보를 지지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중소기협중앙회장 출신의 박상규 의원이나 대한전선 부사장 출신의 김원길 의원 등 이른바 ‘탈당불사파’가 이런 이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박 의원은 선거자금을 지원해줄 만한 기업인들과 노 후보가 만나도록 3∼4차례 은밀한 자리를 마련했으나, 노 후보가 아주 원칙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서로가 넘기 힘든 정치관의 차이만을 확인하는 등 오히려 관계가 어그러지고 만 것으로 알려졌다. 김원길 의원은 여기에다 자신의 정국돌파 구상을 노 후보가 수용하지 않는 데 따른 인간적 소외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6·13 지방선거 직후와 8·8 재보선 전후 등 모두 3차례 걸쳐 최고위원회의 해체와 선대위 체제로의 전환을 노 후보에게 건의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나를 못 믿어 그러느냐”고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후보는 한때 김 의원의 집을 직접 찾아가 선대본부장 자리를 맡아줄 것을 요청하는 등 공을 들였으나, 김 의원은 결국 “내가 노 후보 심부름이나 하고 다닐 수는 없다”고 등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위원들 사이의 경쟁도 한몫
이런 소외감은 크고 작고의 차이가 있을 뿐, 반노 성향의 의원들 대부분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노 후보가 설렁탕 한 그릇 사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출한 김영배 의원이나, 노 후보를 ‘급진좌파’라고 규정하며 탈당한 안동선 의원의 심리 밑바닥에는 당의 원로인데도 노 후보로부터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서운함이 깔려 있다는 것이 당 안팎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에 비해 탈당불사파의 이론가 역할을 하고 있는 김영환 의원은 확고한 ‘신념형’이다. 김 의원은 “통일이 10년 앞으로 다가왔다. 이회창 후보가 집권하면 5년이 아니라 상당기간 늦춰질 수밖에 없다. 이 후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김 의원은 자신이 87년 대선 때 민통련 정책실 차장으로 ‘비판적 지지론’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했던 데 대한 통절한 반성으로부터 후보단일화를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 후보 진영에서는 경기도지사 경선 때 노 후보가 진념 전 경제부총리를 지원한 데 대한 섭섭함이 작용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 후보는 김 의원을 만나 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근태·정동영 의원은 8·8 재보선 전날 밤부터 김영환 의원과 함께 오랫동안 논의를 진척시켜왔으나, 정 의원은 최근 노 후보 선대위에 가담했고 김근태 의원은 반노파와 분명히 선을 그으면서도 선대위에는 불참하고 있다. 또 대선 이후 당권을 염두에 둔 최고위원들 사이의 경쟁이 노무현 흔들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반노의 중심역할을 하는 ‘구당파’ 참여 의원들이 한광옥·정균환 최고위원과 가까운 사이기 때문이다. 노 후보도 “민주당은 지금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계보정치로 되돌아가려 하고 있는데 그것은 당권 경쟁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반노파 의원들은 “노무현으로 안 돼”라고 외치면서도 막상 행동으로는 쉽게 옮기지 못하고 있다. 후보단일화 성사 전망이 높지 않은 만큼 결국 정몽준 의원이 주도하는 신당 합류가 유력한 대안이 될 수밖에 없는데, 정 의원의 지지율 또한 가변적이라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 특히 반노파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전국구라 탈당할 경우 의원직을 내놓아야 하는 약점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분규는 계속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악성화하고 장기화하는 경향이다. 노 후보의 한 측근은 “노 후보를 인정하고 싶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섣불리 탈당했다가 혹시라도 정치적 미아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내분이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결국 눈치를 보다가 무조건 가장 손쉬운 길을 택하려는 기회주의 속성”이라고 비난했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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