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10월02일 제428호 

이회창은 동병상련 느낄까

5년전 ‘노무현 흔들기’와 비슷한 위기 겪었지만 든든한 버팀목 덕분에 생존


사진/ 97년 인기하락을 이유로 후보직 사퇴의 압박을 당했던 이회창(가운데) 후보. (한겨레 이정용 기자)


“이대로는 정권 재창출이 힘들다. 후보의 인기 하락이 이제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후보는 살신성인의 자세로 대선 후보직을 사퇴해야 한다.”

“우리 당은 전당대회에서 자유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했으며 이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후보교체론은 민주주의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고 민주정당의 자기 부정이다.”

민주당의 얘기가 아니다. 5년 전 이회창 후보를 놓고 벌이는 신한국당의 공방이다.

당시 신한국당 내 민주계를 중심으로 한 비주류는 “DJP 연대에 반대하는 모든 후보와 정치세력이 모여야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고, 이를 위해 모든 후보들이 마음을 비워야 할 것”이라고 이 후보를 압박해 들어갔다. 현재의 ‘반창연대’ 논리구조와 빼다 박았다. 5년 전 비주류 의원들은 반김대중 연대를 성사시키기 위해 ‘정권 창출을 위한 국민연대 추진협의회’를 결성했는데, 공교롭게도 민주당 반노세력들이 추진하는 기구의 이름도 이와 비슷한 ‘정권재창출협의회’다. 두 후보 모두 3김 이후 새로운 리더십을 형성해가는 과도기에서 시련을 맞았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인제 의원의 대선 출마선언일은 9월13일로, 5년 뒤 정몽준 의원의 출마선언일(9월17일)과 4일의 시차밖에 안 난다. 정 의원처럼 당시 이 의원도 신당 참여인사와 관련해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이상의 영입도 가능한 상황 변화가 정치권에 있을 것”이라고 신한국당 내부의 변화를 기대했다. 세 후보에 대한 지지도도 <한겨레> 10월11∼12일 여론조사는 김대중 32.4%, 이인제 21.0%, 이회창 17.7%로 지금의 판세와 비슷하다.

그러나 5년 전 이 후보보다 노 후보가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먼저 이 후보는 당시 현역 의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민정계가 든든한 버팀목이 돼줘 비주류의 공격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또 50년 장기집권에 따른 ‘여당불패’의 신화가 살아 있어 친여조직이 언제든지 가동될 준비가 돼 있었다. 결정적으로는 <중앙일보>가 당시 2위로 기세를 올리던 이인제 후보에게 연타를 가하는 등, 이 후보는 보수언론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았다. 총선까지 남아 있는 기간이 지금의 1년 반과는 달리 당시는 2년 반이어서 의원들의 불안감이 덜했다는 점이 이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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