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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은 동병상련 느낄까 5년전 ‘노무현 흔들기’와 비슷한 위기 겪었지만 든든한 버팀목 덕분에 생존
“우리 당은 전당대회에서 자유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했으며 이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후보교체론은 민주주의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고 민주정당의 자기 부정이다.” 민주당의 얘기가 아니다. 5년 전 이회창 후보를 놓고 벌이는 신한국당의 공방이다. 당시 신한국당 내 민주계를 중심으로 한 비주류는 “DJP 연대에 반대하는 모든 후보와 정치세력이 모여야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고, 이를 위해 모든 후보들이 마음을 비워야 할 것”이라고 이 후보를 압박해 들어갔다. 현재의 ‘반창연대’ 논리구조와 빼다 박았다. 5년 전 비주류 의원들은 반김대중 연대를 성사시키기 위해 ‘정권 창출을 위한 국민연대 추진협의회’를 결성했는데, 공교롭게도 민주당 반노세력들이 추진하는 기구의 이름도 이와 비슷한 ‘정권재창출협의회’다. 두 후보 모두 3김 이후 새로운 리더십을 형성해가는 과도기에서 시련을 맞았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인제 의원의 대선 출마선언일은 9월13일로, 5년 뒤 정몽준 의원의 출마선언일(9월17일)과 4일의 시차밖에 안 난다. 정 의원처럼 당시 이 의원도 신당 참여인사와 관련해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이상의 영입도 가능한 상황 변화가 정치권에 있을 것”이라고 신한국당 내부의 변화를 기대했다. 세 후보에 대한 지지도도 <한겨레> 10월11∼12일 여론조사는 김대중 32.4%, 이인제 21.0%, 이회창 17.7%로 지금의 판세와 비슷하다. 그러나 5년 전 이 후보보다 노 후보가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먼저 이 후보는 당시 현역 의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민정계가 든든한 버팀목이 돼줘 비주류의 공격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또 50년 장기집권에 따른 ‘여당불패’의 신화가 살아 있어 친여조직이 언제든지 가동될 준비가 돼 있었다. 결정적으로는 <중앙일보>가 당시 2위로 기세를 올리던 이인제 후보에게 연타를 가하는 등, 이 후보는 보수언론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았다. 총선까지 남아 있는 기간이 지금의 1년 반과는 달리 당시는 2년 반이어서 의원들의 불안감이 덜했다는 점이 이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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