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10월02일 제428호 

‘생각없는 연대’는 가능한가

대선 화두로 떠오른 후보단일화론의 허실… 노무현 후보쪽은 “불순한 의도 끝까지 거부”

민주당 내 비노·반노 세력의 논리는 상황과 국면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을 달고 등장했으나 정몽준 의원의 출마선언 이후엔 ‘후보단일화론’으로 수렴되고 있다. 단일화론은 아주 초보적인 정치공학적 계산에서 출발한다. 이회창 후보를 꺾으려면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의원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단순논리다. 3명이 모두 나설 경우 이 후보가 이기는 것으로 나오는 여론조사 지표가 그 근거다. 일견 견고해 보이는 논리지만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짚어볼 문제들이 수두룩하다.

‘반창연대’외엔 뚜렷한 명분 없어


사진/ '너무 다른 두 사람.' 단일화론에 대해 노 후보쪽은 "끝까지 혼자 가겠다는"는 입장이고 정 의원쪽은 느긋하게 상황을 즐기는 편이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우선 단일화론자들이 정책이니 정체성이니 정치적 동질성이니 하는 얘기를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나라를 이끌어갈 대선후보의 선택을 논의하면서 그 후보의 정책적 정체성에 눈을 감는 것은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정당 간 연대가 빈번한 유럽의 경우 정책적 논의를 배제한 연정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97년 DJP 단일화도 결국 승리를 노린 정치공학적 계산에서 촉발됐지만 그때는 그래도 명분일지언정 내각제 합의라는 정책적 매개고리를 내세웠다. 어쨌든 정책연대의 형식은 갖춘 셈이다. 노 후보와 정 의원은 당장 주5일제나 고교평준화문제, 재벌문제, 남북문제 등 정책현안에서 상당한 인식의 편차를 보이고 있다.

최근의 단일화론이 ‘꿩잡는 게 매’라거나 ‘승리가 곧 정의’라는 식의 무원칙한 승리이데올로기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일화론자들이 내세우는 나름의 이데올로기가 있기는 하다. 정균환 원내총무가 주장한 ‘재집권이 이 시대 최고의 개혁’이라는 논리다. 맞는 얘기일까. 노 후보의 정무특보인 천정배 의원은 즉각 반론을 제기한다. “재집권이 의원 개개인의 이해관계일 수는 있어도 국가적 과제나 역사적 책무일 수는 없다. 정치발전이나 개혁의 진전이라는 역사적 책무를 도외시할 수는 없다. 재벌정권의 등장을 역사적 진전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노 후보도 ‘누구 누구 안 된다’가 아니라 ‘재벌경제 안 된다, 제왕적 정치 안 된다’는 식으로 가야 한다”며 단일화론의 함정을 지적했다. 그동안 모호한 태도를 보여온 한화갑 대표조차 “선거에서 조금 불리하다고 민주당을 버리고 다른 쪽으로 갈 수야 없지 않느냐”며 단일화론의 무원칙성을 경계했다.

87년 두 김씨 후보단일화 운동 과정에선 군정종식과 문민정부 수립이 역사적 책무로 제시됐다. DJP 단일화 과정에선 정권교체라는 광범위한 합의를 토대로, 논란의 여지는 있었지만 ‘지역등권론’이라는 나름의 명분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오는 단일화론엔 ‘반이회창 연대’ 이외에 뚜렷한 명분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단일화론자들의 반격 또한 만만치 않다. 이들은 지지자들의 정치적 지향의 동질성을 단일화론의 명분으로 주장한다. 노 후보 지지자들이나 정 의원 지지자들이나 개혁을 지지하고 지역패권에 반대하며 수구·냉전적 사고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냉전·수구·기득권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노 후보와 정 의원 지지층은 모두 정치개혁을 원하는 탈지역주의·탈냉전 세력이다. 동질적인 두 집단이 연대해야 한다. 밑동을 결합하고 하층을 연대해야 한다.” 반노로 돌아선 김영환 의원이 주장하는 이른바 ‘하층연대론’, ‘지지세력 연대론’이다. 성향이 비슷한 두 후보의 지지자들이 여론지지도를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지지율의 쏠림현상을 일으켜 실질적인 단일화를 이뤄내자는 논리다.

“무원칙하거나 패배주의거나”


사진/ 97년 DJP 후보단일화 합의 장면. 그래도 당시엔 정책연대의 꼴은 갖췄다. (이용호 기자)


노 후보쪽도 일단 지지층의 동질성은 인정한다. 민주당 주요 기반인 호남지역에서도 정 의원의 지지율이 노 후보의 그것보다 높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 원인에 대해선 정 의원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데서 오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호남지역 대중은 정 의원에게 기대와 희망이 뒤섞인 막연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정 의원이 정책적 비전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은 탓에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아직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따라서 정 의원에 대한 지지는 단순히 개혁적인 인물일 것이라는 인상비평적 수준일 뿐이다. 그러나 정 의원이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면 호남지역 대중들도 실망하게 되고 결국 노 후보에게 돌아올 것이다.” 민주당 정책위의장인 임채정 의원의 진단이다.

노 후보쪽이 단일화론자들에게 분개하는 부분은 문제제기의 시점이다. 왜 하필 지금이냐는 것이다. 이들이 보기에 단일화론은 노 후보를 정 의원쪽으로 편입하자는 흡수통합론이고, 이는 곧 후보교체론과 다를 바 없다. 현재 지지율은 정 의원쪽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단일화는 어느 쪽이든 승복할 수 있어야 가능한 얘긴데, 지금 당장 단일화를 얘기하는 것은 노 후보를 무력화시키고 주저앉히려는 시도일 뿐이다. 반노·비노 세력이 자꾸 단일화론을 끄집어내면 감정만 악화시켜 최악의 경우에도 양보를 못하게 할 것이다. 반노·비노 세력이 공멸의 길로 가고 있다.” 노 후보의 정무특보인 이강래 의원의 지적이다. 백번 양보해서 당이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인 뒤 그래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으면 막판에 대안으로 단일화를 모색하는 게 순서지, 링에 오르기도 전에 단일화론을 끄집어냄으로써 노 후보의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후보단일화의 드문 성공사례인 97년 DJP 연대도 JP의 지지율이 5%대를 밑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단일화론자들은 거꾸로 “노 후보가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면 당의 분란은 하루아침에 진정될 것”이라고 맞선다. 반노·비노 세력의 흔들기가 문제냐, 노 후보의 지지율 하락이 원인이냐의 논란이다. 결국 노 후보쪽은 승리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고, 비노·반노쪽은 ‘노무현 필패론’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다. 이 점을 두고 임채정 의원은 “단일화론자들은 무원칙하거나 패배주의자 둘 중의 하나”라고 꼬집었다.

열쇠는 여론지지도 추이

어찌됐든 후보단일화론은 성사 가능성과 전망을 떠나 올해 대선에서도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단일화에 대해 실낱같은 여지를 남겨놓던 노 후보는 최근 “끝까지 갈 것”이라며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한 상태다. 만약에 지지율의 쏠림현상으로 뒤처지는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쐐기를 박은 것이다. 노 후보의 한 참모는 “노 후보는 정치 1번지인 종로구 의원직을 버리고 지역통합이라는 대의명분을 추구해 사지나 다름없는 부산으로 출마한 사람”이라며 “절대 무원칙하게 절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일단 지지율이 앞서는 정 의원은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인 만큼 가능성은 많다”며 단일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사실 정 의원쪽에선 민주당 내 단일화 논란을 느긋하게 즐기는 상황이다. 단일화론자들이 민주당에 남아서 노 후보의 지지율 상승을 막아도 좋고, 이탈하더라도 결국 자신의 신당으로 흡수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어느 경우든 단일화의 열쇠는 여론 지지도의 추이다. 일단 정 의원의 신당이 출범하고 각종 토론이 상당부분 진행된 뒤인 11월 초순께의 지지율 판도가 고비가 되겠지만 그때까지도 표 쏠림 현상이 일어나지 않은 채 어중간한 차이를 보일 경우 여론조사 결과보도가 금지되는 11월26일까지 단일화의 불씨가 남을 가능성도 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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