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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등록 2002.09.04(수) 제425호

[표지이야기] 그라운드 제로, 평화 시계제로!

9·11 한돌 미국 현장취재… 들끓는 애국심의 용광로에서 찾아본 실낱 희망

움푹 팬 1만2천여평의 터는 작업 중인 중기들의 굉음으로 요란했다. 구덩이는 매장을 위해 파놓은 거대한 무덤 같았다. 문득 커다란 성조기가 펄렁거리며 눈에 들어왔다.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2001년 9월11일, 세계무역센터의 거대한 쌍둥이빌딩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뉴욕 맨해튼 맨 아래쪽의 폐허를 미국인은 이렇게 부른다. 이 말은 미국이 일본에 투하한 원자탄의 피폭지점을 일컬어 쓰인 이후 대재앙의 현장을 가리키는 데 쓰여왔다. 절망의 끝에서 새 출발을 기약하자는 것일까. 뉴욕시는 그곳에 새로운 건물을 짓는 프로젝트의 이름을 ‘출발점’(starting point)라고 명명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용기를 내서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외치고 있다.

“아직도 공동묘지에 온 느낌”

철조망 너머를 응시하는 방문객들은 말이 없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휴가차 뉴욕에 왔다가 들렀다는 제럴드 케네디(37)는 “잔해는 치웠지만 아직도 공동묘지에 온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곳 부근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영업사원 브래드 골드는 “뉴욕이 많이 변했다. 경찰들이 큰 총을 들고 다니기도 하고…. 언제 다시 테러가 일어날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두려움을 내비쳤다. 주변 노점상에선 화염에 휩싸여 처참하게 무너져내리는 쌍둥이빌딩의 간이사진첩을 10달러에 팔고 있다.

뉴욕에선 아직도 간간이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열린다. 주검의 흔적조차 찾지 못한 유가족들이 좀처럼 가족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뉴욕시는 8월19일 사망자와 실종자 등 희생자 수를 2819명으로 최종 집계했다. 미국 정부와 뉴욕시는 ‘9·11을 기억하자’는 슬로건 아래 추모행사 준비에 분주하다.

9·11 이후 1년. 가까이서 들여다본 미국은 악몽을 꾼 뒤의 혼곤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가장 또렷한 변화가 감지되는 곳은 국제공항이다. 뉴욕 존에프케네디 국제공항에선 신발까지 벗게 하는 광경이 목격됐다. 공항의 안전요원들은 혁대의 버클까지 샅샅이 확인했고, 미심쩍은 사람은 몸과 가방을 거듭 수색했다.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뉴욕 리버티섬을 찾는 관광객들은 배에 오르기 전 혁대를 모조리 풀어헤쳐야 했다. 맨해튼 월스트리트에 있는 증권거래소 건물도 철책에 둘러싸여 있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넓지 않은 인도가 더욱 좁아졌지만 뉴요커들은 이런 불편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들의 담담한 표정에서 ‘그래도 테러당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라는 자위가 읽혔다. 허술하게 보이던 수도 워싱턴 DC의 백악관 앞뜰은 밤이 되자 기관단총으로 중무장한 요원들이 앞뜰의 나뭇가지 사이사이를 헤치고 다녔다. ‘자유의 나라 미국’은 이제 거대한 철조망을 겹겹이 둘러치고 있다. 워싱턴 DC 정부는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통조림과 침구류를 준비할 것을 권유하는 안내 팸플릿을 각 가정에 돌렸다. 언뜻 한국의 민방위훈련이 떠올랐다.

미국은 또 성조기의 물결로 넘쳐나고 있다. 그것은 도처에서 휘날린다. 유리창엔 성조기 스티커가 나붙었다. 성조기 문양의 장식헝겊도 여기저기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남성들은 가슴에 성조기 배지를 달았고, 여성들은 성조기 문양의 두건을 썼다. 아예 팔뚝에 ‘9·11’이라고 문신으로 새긴 청년의 모습도 눈에 띈다.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는 맹렬한 애국심으로 전이됐다. 고조된 애국심은 군에 입대하려는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 사이 미국 방위산업체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대표적 방산업체인 록히드마틴은 올 들어 수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배로 늘었다. 애국주의를 부추긴 것은 언론매체였다. 노엄 촘스키는 대담집 〈프로파간다와 여론〉에서 ‘국익’에 충실한 선전(프로파간다)에 몰두하는 미국 언론매체의 이중성을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아직도 구금 중인 이슬람교도 74명

‘위대한 나라 미국’에서 애국심이 넘쳐나는 만큼, 국외자들, 특히 중동과 남아시아 출신 이슬람교도들의 수난은 증대됐다. 별안간 미국에 널리 퍼진 애국심은 애꿎은 희생양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9·11 이후 이른바 ‘예방적 단속’을 명분으로 구금된 이슬람교도는 1100명이 넘었다. 이들은 몇 개월에 걸쳐 테러조직과의 연계 여부 등을 조사받은 뒤 8월 초 대부분 풀려났으나 74명은 아직도 구금상태다. 미국 정부는 테러조직을 이롭게 한다는 이유로 구금자들의 이름을 공개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거부했다. 뉴욕에 머물고 있는 이라크 출신 평화운동가 카도리 알카이시는 “미국 거주 아랍인들이 살인·방화·폭력 등 수많은 피해를 입었다. 특히 여성들은 베일을 쓰고 다녀 피할 수도 없는 처지다”라고 중동계 미국인의 어려움을 전했다. 인종과 민족의 용광로임을 자처해온 미국 사회에서 이제 중동계 미국인은 용해되지 않는 이물질로 겉돌고 있다.

9월11일부터 외국인 입국자의 지문채취와 사진촬영을 의무화한 국가안보출입등록제가 시행된다. 당장은 이란과 이라크 등 미국이 규정한 테러지원국 출신 입국자에 제한해 적용하지만 미국 정부는 대상을 더욱 넓힐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 법무장관 애시크로프트는 “‘우리’는 더 이상 미국의 모든 사람이 아니며, 심지어 미국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모든 사람도 아니며, 오로지 미국의 시민만이다”라고 선언했다. 열린 사회임을 자랑해온 미국의 문은 점점 닫히고 있고, 문턱은 더욱 높아가고 있다. 예일대 교수인 이매뉴얼 월러스틴(사회학)은 최근 한 논문에서 “대통령이 국민에게 간청하는 것은 정부와 군대가 무슨 일을 하든, 심지어 그 일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해도, 아무 유보 없이 박수갈채를 보내달라는 것”이라고 현재 미국을 휩쓸고 있는 비이성적인 분위기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도대체 미국에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언론과 종교, 사상의 자유, 다른 인종에 대한 개방과 관용, 합리적 이성과 과학기술의 발전 정도에서 세계에서 가장 우월한 나라라고 그토록 자부해온 미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워싱턴 한국경제연구소 피터 벡 연구실장은 “한국의 냉전세력이 통치를 위해 북풍을 활용한 것처럼 부시 행정부도 국민을 두려움에 떨게 하기 위해 ‘오사마빈라덴풍(風)’이라는 것을 이용했다”고 재미나게 비유했다. 그는 “부시정부와 언론매체들이 상처받은 미국의 우월의식에 불을 지피자 미국인이 보복에만 관심을 나타낼 뿐, 전쟁에서 누구를 죽이고 누가 죽는지, 전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전쟁 한번 하자는 분위기에서 다른 진지한 목소리들은 힘을 얻을 수 없었다”고 진단했다. 워싱턴 조지타운대학의 아시아연구소장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교수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정부는 강경한 대외정책에 맞춰 국내적으로도 많은 시민권의 제약을 가했다. 테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런 것들이 용인됐으나 잘못된 것이다. 미국의 이슬람 정책에 반대한다고 해서 반유대주의는 아닌데도 사람들이 이를 혼동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도덕적 수치심과 유대인들의 매우 효율적인 로비 때문에 친이스라엘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는 벌써 오래전에 바뀌어야 했다.”

코란 교재 중단요청 기각되다

9·11이 일어난 지 1년이 다 돼오면서 그래도 상황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테러에 대한 보복공격을 절대선으로 받아들인 초기와 달리 일반 시민들도 차츰 전쟁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독일 등 유럽 동맹국들의 이라크에 대한 확전반대와 전 국무장관인 제임스 베이커, 로렌스 이글버거,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 출신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등 전직 고위관료들의 신중론 제기는 분위기 전환의 계기가 됐다. 미국 사회는 점차 거대한 논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피터 벡은 “북한에 대한 대처법을 두고 때때로 남한에서 ‘남남갈등’이 벌어지는 것처럼 지금 미국에선 이라크 공격을 두고 같은 종류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결국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최후의 저울추는 국민여론이다. 관용과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용인 등 미국 사회의 자정능력을 확대시키는 쪽으로 기울 것이냐, 아니면 응징과 힘의 과시를 통한 미국 우월주의의 확인으로 돌아갈 것이냐. 미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논쟁이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최근 미국 사회의 분위기 반전조짐을 보여주는 두 가지 사례.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이 9·11 테러와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9월 학기부터 신입생들에게 코란을 교재로 쓰도록 하자 발끈한 보수적 기독교단체가 법원에 중단명령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미국 교육협의회(NEA)는 최근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아랍권과 특정단체에 대한 단정적인 비판을 수업에서 배제하라. 9·11 테러의 주범이 누구라고 일방적으로 지목하는 데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9·11 이후 미국 사회를 가득 채운 공포와 편견, 배타의 자리에 서서히 관용이 둥지를 틀기 시작한 조짐일까.

반전단체들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전연대조직체인 ‘앤서’(Act Now to Stop War & End Racism)는 10월27일 백악관 앞에서 대규모 반전시위를 준비 중이다. 이 단체에 속한 국제행동센터(IAC)의 브라이언 베커 공동대표는 “전쟁이나 인종주의는 해법이 아니다”며 부시 행정부가 비이성적일 정도의 강경책으로 일관하는 이유를 독특하게 해석했다. “부시나 체니, 럼즈펠드, 월포위츠 등 분위기를 주도하는 백악관의 강경매파들은 미국 자본가 계층에서도 특별한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냉전체제 이후 국제질서의 재형성을 시도하고 있다. 과거의 적인 공산주의자들은 이제 테러리스트들로 치환됐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마음먹기에 따라 전쟁이든 경제봉쇄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세계사가 9·11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미디어의 전망은 분명 과장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에서는 이런 구분법이 맞아떨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9·11은 미국인에게 커다란 상처였고, 그 흔적은 종이 위에 번진 잉크 자국처럼 지워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부시 행정부는 미국인의 상처에 대한 기억과 테러에 대한 불가항력의 두려움을 재료로 엄청난 증오의 확대재생산을 꾀하고 있다. 미국은 도대체 미국이 왜 당해야 했고,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기회도 갖지 않은 채 재발 방지를 위한 수단부터 강구하고 나섰다. 그것은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의존한 군사공습이다. ‘위대하고 우월한 나라’라는 요지부동의 자존심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데 대한 보상심리일까. 그러나 미국 안에서도 부시 행정부의 무모함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사건이 일어난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에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뾰족한 뉴욕 맨해튼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은 쌍둥이빌딩을 무너뜨린 자들에 대한 앙갚음을 다짐하며 돌진할 채비를 갖추고 발사대위에 장전된 로켓포처럼 보였다. 미국을 상징하는 아이콘 자유의 여신상은 여전히 오른손을 번쩍 치켜든 채 횃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녀가 지키고자 하는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적잖은 의문을 남긴 채.

뉴욕·워싱턴=글·사진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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