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09월18일 제427호 

‘쥐꼬리 월급’ 위헌심판 청구한다

시민단체들 법률검토작업 속 보수진영 일부도 공명… 방법은 ‘과감한 다이어트’

온라인 징반모(징병제를반대하는모임)를 전신으로 한 모병제추진국민연대(www.anticonscript.org) 대표는 스스로를 ‘우파’라고 하는 예비역 대령 배성관(56)씨다. 스스로를 ‘보수’라고 일컫는 네티즌 최아무개(35)씨도 최근 자신이 운영하는 사이버청년한국운동본부의 강령 가운데 하나로 “사병월급 현실화”를 내걸었다. 한편 양심적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개선을 위한 연대회의는 최근 사병들의 월급을 놓고 위헌심판청구와 헌법소원을 위한 법률 검토에 들어갔다(참여·의견제보corights@corights.net). 연대회의에 속한 40여 시민·인권단체의 구성원들은 ‘진보’ 또는 ‘좌파’로 불리는 이들이다. 군복무기간 18개월과 모병제 추진을 공약으로 내건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통령 후보 역시 이 그룹에 속한다.

감군·감축 혹은 철통같은 안보


사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는 사병들의 월급이 헌법이 보장한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법률 검토에 들어갔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대척점에 섰던 좌우 가운데 상당수가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병에게 적절한 대우를 하며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꿔나가자는 것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엇갈린다. 한쪽은 철통 같은 안보와 군사강국화의 교두보로 여기고, 다른 쪽은 감군·감축을 위한 평화운동의 과정으로 본다. 방법이 어떠하던 지금처럼 일정 나이 이상의 청년들을 무상으로 징집해 능력과 적성을 무시하고 일괄 배치하는 구조는 국방개혁의 걸림돌이라는 점에서 같은 진단을 내놓고 있다.

2002년 현재 현역 사병은 52만여명이고, 공익근무요원(6만2천여명)·전투경찰(5만6천여명)·산업기능요원(7만5천여명)·전문연구요원(1만3천여명)을 비롯해 경비교도대·공중보건의 등 대체복무자는 21만여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민간기업체에서 노동자 최저임금을 받는 병역특례자(산업기능요원·전문연구요원)를 뺀 64만여명은 매월 1만6500∼2만1900원을 월급으로 받는다. 일당으로 치면 550∼730원꼴이다. 교정당국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정역(형 확정자들이 하는 장업)과 노역(벌금 미납자들이 나가는 작업)을 나가는 수형자들이 받는 일당이 500∼4천원인 것에 견주면 “군대 가느니 차라리 감옥 가겠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대한민국 사병들의 월급을 훌쩍 끌어올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먼저 어디까지가 적정액인지 분명치 않다. 현행법의 테두리에서는 공무원의 월급과 마찬가지로 ‘임금’이지만, 절대액을 놓고 보면 ‘간식수당’으로 불러야 마땅할 정도의 적은 금액이 40년간 변함없이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사병들의 현실적인 월급 수준에 대해 공론화된 경험도 없었다.

각 정당들, 선거 때만 생색내기


사진/ 수해복구는 차라리 반갑다? 넘치는 사병들을 불필요한 사역에 동원하는 식의 방만한 병력 유지구조를 뜯어고치자는 목소리가 높다.


다음은 무슨 돈으로 올리느냐는 문제다. 우리나라의 국방예산 가운데 경직성 경비인 운영유지비는 방위력 개선에 쓰이는 돈보다 많다(99년도 기준 70:30 수준). 또 운영유지비의 절반이 넘는 돈을 인건비에 쏟아붓는 형편이다. 사병들의 인건비는 전체 인건비의 2%도 되지 않는 상태지만 노동자 최저임금 수준이 되려면 20∼30배는 높여야 하는 등 예산책정은 만만치 않다.

방법은 하나다. 과감한 다이어트다. 병력의 수를 줄이고 복무기간을 단축하는 것이다. 이미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했거나 전환과정에 있는 다른 나라들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가장 간단한 문제로 보이는 이 내용이 사실상 가장 어려운 코스다. 사병 수는 곧 국방력이라는 낡은 논리를 국방부가 고수하고 있는 탓이다.

지난 2000년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이 내건 공약에도 의무복무기간 단축은 빠짐없이 들어 있었다. 당시 민주당은 징병제와 모병제를 혼합하는 형태로 의무복무기간을 단축하면서 직업 기술병을 확대하겠다고 했고, 한나라당은 당장 24개월로 줄여도 방위력 손실이 없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그러나 각 정당과 국회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다는 소식은 그 뒤 단 한번도 들려오지 않았다.

병력 수와 복무기간 문제를 풀 ‘마감시한’은 이미 코앞에 다가왔다. 출산율 저하에 따라 병력자원이 자연적으로 준 것이다. 9월10일 국방부는 2003년에는 7천명가량, 2007년에는 7만명가량 병력자원이 모자란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단계적으로 대체복무자들의 수를 줄여 현역의 수를 채울 방안을 내놓았으나, 젊은층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병력 수를 언제까지 고집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대체복무제도는 군의 필요인력에서 남은 병력자원에 병역의무를 지우기 위해 만든 제도다. 병력규모를 조절하는 장기적 방안 대신 징집대상자의 머릿수를 이리저리 돌리는 안일한 방식으로 형평성 시비를 피해갔다는 지탄을 받는다. 대체복무의 내용 역시 행정관청 등에서 싼값에 맘껏 부릴 수 있는 임시노동으로 짜여졌다. 그 결과 “군인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병영문화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고, 국가·공공기관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인력관리를 부추겼다.

대만은 97년부터 국방부가 나서 군 병력 감축과 장비 현대화를 추진했다. 섬나라의 특성과 현대전의 특성을 고려할 때 비대한 육군 대신 공군과 해군력에 집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뒤다. 국방비를 줄이지 않은 상황에서 감군을 하며, 절약된 돈을 장비 마련과 기술교육에 투입했다. 불과 3, 4년 만에 60만 병력을 45만으로 줄였고, 대체복무제도도 실효성 있게 시행하게 됐다. 가족수당이 지급되고 교육기회가 확대되는 등 사병들의 처우도 개선됐다.

해·공군 내부에선 ‘병력감축’지지 많아

우리나라의 해군과 공군 내부에서는 병력 감축을 지지하는 세력이 많다. 그러나 지금처럼 사병의 월급이 터무니없이 낮은 상황에서는 병력 수를 줄인다고 곧바로 장비 현대화에 쓸 돈이 마련되지는 않는다. 사병들의 낮은 처우는 개개인의 인권을 넘어 군의 첨단화에도 역기능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국방 정책결정권자들이 손놓고 있는 가운데 사병들의 인권보장과 안보력 증대라는 과제를 풀 길은 점점 멀어진다.

서울 강남 일대에서는 “아들을 군대 보내면 친부모가 아니다”는 말이 파다하다. 부유층과 고위층의 병역기피는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거듭 부추긴다. 이런 가운데 “군에 안 보내려고 돈 쓰고, 보낸 다음에 맘 졸이느니 차라리 세금 더 내는 쪽이 낫다”는 ‘보통부모들’의 육성은 큰 무게로 다가온다.

공동체를 위해 젊음을 저당잡히는 아들들을 위해 공동체가 할 일은 이들의 땀방울에 적절한 보상을 하는 일이다. 병역의무는 그때 진정으로 신성한 것이 된다.

글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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