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09월11일 제426호 

오락가락 ‘주택대계’

철학없는 정책이 주기적 땅투기 부추겨… 실거주자 위주 대책 세워야 투기 막아

땅은 아무리 많은 노동을 들여도 한평도 늘릴 수 없다. 그런 땅을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분배해야 공평하고, 땅의 이용이 효율적으로 이뤄질까?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힌 이 문제에 대해 지금도 딱 부러지는 해답은 없다. 구약성서 시대의 유대인들은 “땅은 하느님의 것이고, 인간은 단지 땅에 대한 관리와 이용 및 보전의 책임을 위임받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땅은 누군가가 영구적으로 소유해 사고팔 수 있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땅은 농사짓는 사람에게 적절하게 나눠줘야 하고, 일시적인 이유로 땅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고 해도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에는 다시 돌려주도록 했다.

땅의 불균등 분배는 비윤리적


사진/ “외부효과에 의한 불로소득은 세금으로 환수하라!” 최근의 부동산 과열은 조세정의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박승화 기자)


땅이 사적으로 소유되고 매매 대상으로까지 합리화된 것은 근대부터다. 그러나 근대의 어떤 소유권 사상도 오늘날의 불균등한 땅의 분배를 매끄럽게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존 로크는 “도토리를 거둬들인 노동이 도토리의 소유를 정당화하는 것처럼, 땅도 노동을 통해 그것을 개간한 사람의 소유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은 계속 늘어나는데 땅은 한정돼 있다는 점이 문제다. 개간할 땅이 없는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빈 땅에 울타리를 치고, 돌멩이를 치우고 소유권 등기를 하는 며칠간의 노동이 다른 사람이 앞으로 더 많은 노동을 투입해 그 땅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박탈해도 과연 되는 것인가. 땅값이 물가보다 빠르게 올라갈 때 사태는 한층 심각해진다.

이론적으로 땅값은 그 땅을 이용해 얻을 수 있는 미래수익을 모두 현재가치로 환산한 것이다. 그러므로 땅값은 땅 주인이 추가로 노동을 투입하지 않아도 그 땅의 이용가치가 높아질수록 급격히 올라간다. 땅값 상승에 땅 주인의 노력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에 힘입은 것이다. 그런데도 땅 주인이 모두 차지하면, 그것은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보상을 훔쳐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경제학 서적 가운데 가장 많이 팔렸다는 <진보와 빈곤>(1879)을 지은 헨리 조지는 “땅의 사적 소유는 허용하되, 소유자의 노동이 아닌 외부효과에 의해 가치가 높아진 불로소득은 세금으로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해 한때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는 심지어 그런 세금을 걷으면 다른 세금은 모두 폐지해도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한 사회당의 원용수 후보가 제안하기도 한 토지단일세 제도는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제안은 현대의 부동산 정책과 부동산 조세제도가 어떤 원칙에 바탕을 둬야 하는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헨리 조지의 주장을 요약하면, “농지는 농사를 지을 사람이, 집은 그 집에 살 사람이 소유해야 하며, 부동산의 가치가 자신의 노동이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해 올라가는 데 비례해 소유자는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60년대 이후 주기적으로 반복된 땅투기는 90년대 초까지 노동자들의 성실한 노동의 대가를 땅 주인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줘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땅값 총액(공시지가 기준)은 지난 90년 국내총생산의 무려 9배나 됐다. 대개의 선진국이 1배 안팎인 것과 견주면 비정상적으로 높다. 그러나 어쨌든 90년대는 땅값이 매우 안정되면서 외환위기를 겪은 뒤인 99년에는 그 수치가 3.07배까지 낮아졌다. 문제는 그 이후다.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값이 다시 급등했다. 지난 한해 동안 전국의 집값은 물가상승률을 빼고도 5.8%, 서울은 8.8%나 올랐다. 특히 올해 1분기 서울지역 아파트값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2%나 올랐다. 정부가 경기부양 정책의 일환으로 쏟아낸 부동산 대책이 그 주범이다.

정부 경기 부양책이 투기꾼 양산


사진/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책은 실거주자 위주 주택정책에 찬물을 끼얹었다. 서민들은 재개발로 오갈 데가 없게 됐다. (강재훈 기자)


건설경기 부양책은 경기조절에 효과가 크기 때문에 경기불황기에는 늘상 있는 일이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아파트 투기가 재현된 것은 정책 바탕에 깔린 철학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역대 정부가 표면적으로 내세운 “실거주자에게 집이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을 드러내놓고 저버렸다. 정부는 “미분양 아파트를 해소하고, 건설업체들이 아파트를 더 짓게 하려면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다 보니 집을 누가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지는 사소한 문제로 취급됐다. 분양권이 자유롭게 전매되고, 양도소득세에 대한 각종 감면혜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부동산에 대한 건전한 투자를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건전한’ 투자는 없었다. 아파트는 돈 있는 사람들의 투기수단이 됐고, 저금리에 엄청나게 풀린 돈에 힘입어 집값은 급등했다.


사진/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박승화 기자)


정부는 주택보급률의 증가를 내세우지만, 주택정책 결과는 중산층 서민의 주거안정과는 정반대 결과를 낳았다. 주택보급률은 99년 93.3%에서 2000년 96.2%, 지난해 98.3%까지 높아졌다. 반면, 도시 근로자 가구의 주택보유 비율은 57.89%에서, 57.48%, 56.99%로 오히려 떨어졌다. 한 회사원은 “정부가 중산층을 지원한다며 깎아준 세금이래야 연간 20만∼30만원가량에 지나지 않는데, 주거비 부담은 수백만원이 늘었다”고 말했다.

노영훈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의 대량 주택공급 정책은 가구수 대비 주택의 총량을 늘리는 데 치중했지 공급된 주택이 실제 거주하기를 원하는 실수요자들에게 제대로 공급되도록 유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주택공급을 통해 주거 서비스의 안정을 기대할 수 있으려면 사람들이 자기가 들어가 살 집을 구입하고 소유하게 하는 방향으로 조세정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땅값총액이 국내총생산보다 몇배나 되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공통점이 부동산에 대한 보유과세가 미약하다는 것은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냉온탕 넘나들기는 이제 그만하라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가 급랭하자 98년 5월22일,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통해 신축주택 구입시 5년간 양도세 면제를 뼈대로 한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해 5월23일 신축주택 양도세 면제대상을 수도권 신축주택에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주택수요 촉진 세제지원안을 발표하기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건설경기를 활성화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올 들어서는 확 달라졌다. 지난 1월8일 일부 지역의 투기과열 억제를 위한 대책을 발표하는 등 이후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내놓기에 바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주택정책을 경기조절 수단으로만 보는 근시안적 사고로는, 냉수와 뜨거운 물에 번갈아 몸을 내맡기는 ‘샤워장의 바보’ 신세를 결코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집은 투자의 수단이기에 앞서 모든 인간에 필수적인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라는 원칙에 충실하지 않는 한, 지금의 부동산시장 안정화 대책은 언제든 다시 투기심리를 부추기는 정책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




↑Back to th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