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09월04일 제425호 

세계는 부시에 등을 돌린다

이라크 확전의지 노골화로 우방들까지 발끈 … 힘자랑 말고는 내세울 치적도 없어


사진/ 이라크 공격은 9·11 이후 숨죽이는 중동계 테러조직에 전면전을 선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식량을 배급받는 바그다드 시민들. (SYGMA)


일방주의, 신제국주의, 신고립주의, 신보수주의….

국제사회가 미국 부시 정권에 붙여준 꼬리표들이다. 오늘날 미국의 외교행태를 잘 설명해주는 상징어들인 셈이다. 하나같이 ‘미국=독불장군’을 연상케 하는 개념들이다. 9·11 이후 나온 부시 대통령의 대외정책은 한마디로 브레이크 없이 고속 질주하는 자동차와 다름없다는 평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우리 편에 줄서지 않으면 무조건 테러리스트 편”이라고 줄서기를 강요하더니, 급기야 북한을 비롯해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언제든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행정부 내부적으로는 이라크 후세인 정권부터 무너뜨린 뒤 북한, 이란 순으로 손을 보겠다는 입장을 세워놓고 있다. 동맹국들도 안중에 없다. 테러지원 국가를 징벌하기 전에 동맹국들의 견해 정도는 들어보겠지만, 반대해도 개의치 않겠다고 되레 큰소리친다. 유엔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를 들러리로 세우고, 여러 국제조약의 구속력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다. 부시 정권은 다자기구를 이용한 협력은 테러전쟁의 명분을 쌓기에는 좋으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반기지 않고 있다.

9·11 테러 이후 국제사회가 정작 관심을 기울였던 대목은 부시 정권의 중동정책 변화 여부였다. 전문가들은 당시의 테러가 친이스라엘 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는 안팎의 지적에 대해 좀더 귀를 기울일 것으로 기대했다. 부시는 전임자인 클린턴이 이뤄놓은 업적들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다. 중동정책도 마찬가지였다. 클린턴이 임기 말 막판까지 공을 들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정착 노력에 대해 그는 보는 앞에서 찬물을 끼얹듯 불개입 노선을 천명했다. 부시 행정부가 갑자기 손을 떼자 이 지역의 세력균형은 급격히 이스라엘쪽으로 기울어졌고, 이에 대한 아랍계의 분노와 갈등의 폭발이 9·11 테러로 이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미국 내 혹평 갈수록 커져

하지만 정작 부시 정권은 요지부동이다. 테러의 원인을 제공한 친이스라엘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유혈테러의 악순환은 더욱 심화되고, 중동전체의 긴장 파고는 더욱 높아진 상태다. 여기에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 임박설이 흘러나오면서 중동 전역의 반미감정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제2, 제3의 미국 테러의 뿌리가 깊고도 넓게 내려지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섬뜩한 대목이다. 부시 정권은 대량살상무기 보유는 곧 테러국가라는 논리를 내세워 이라크를 군사적 수단으로 응징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라크 공격은 곧 9·11 이후 숨죽이고 있던 중동계 테러조직에 전면전을 선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국이 진정 테러를 뿌리뽑기 원한다면 친이스라엘 정책을 주변 아랍국가들이 수긍할 정도로 바꾸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핵심은 건드리지 않고 주변만 맴돌다 보니 부시의 대외정책에 대해 혹평하는 미국 내 목소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마이클 허시 전 <뉴스위크> 편집인은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최신호에 기고한 글에서 “1년이 지난 지금 미국 외교정책이나 대테러 전쟁의 방향이 분명치 않다. 우리 편이 이기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또 미국 편엔 누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존 아이켄베리 조지타운대학 교수는 “과거 역사적 경험으로 미뤄 미국의 일방적 행태는 미국을 더 적대적으로 여기는 저항에 부딪히게 하고 세계를 분열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승승장구 지지율 경제문제로 발목

서방국가들도 부시 정권에 등을 돌리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중동지역 국가뿐 아니라 미국의 우방인 독일과 영국에서도 나오고 있어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같은 이는 아예 대놓고 미국의 일방적인 이라크 공격 시도에 제동을 걸고 있다. 그는 8월22일 “독일은 이라크 군사행동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고 재정적인 지원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일방적인 공격은 테러에 대항하는 국제공조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을 1년 가까이 지켜보면서 이제 더는 미국의 들러리로 서지 않겠다는 유럽 나라들의 각성이 점차 노골화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이 이처럼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것은 이라크가 주변국에 대해 명백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부시는 지금 큰소리칠 처지가 아니다. 나라 안팎으로 무수한 악재들이 그들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지지율도 예전 같지 않다. 50∼60% 수준이다. 9·11 테러 이후 신속한 군사 보복작전으로 탈레반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축출하는 데 성공한 뒤 지지율은 80∼90% 수준을 꾸준히 유지해왔다. 하지만 지난 5월 기업 회계부정 스캔들이 터지고, 그 여파로 증시가 폭락장세를 보이자 7월30일께 부시에 대한 지지율은 52%까지 곤두박질쳤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는 “부시의 경제관리 능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진 결과”고 분석했다.

도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군사행동에 대한 국민적 지지율이 아프간 테러전 승리 직후 80∼90%를 넘나들었으나 이제는 40∼50%로 떨어져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고 전했다. 전쟁 덕에 승승장구하던 지지율이 경제문제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부시의 친기업적 성향이 속속 드러나면서 당분간 신뢰성 위기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제2의 테러 가능성도 주식시장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투자자들은 기업 회계부정 스캔들이나 냉각된 경기는 일시적일 수 있지만, 테러 위협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추가 테러 우려가 투자자들의 마음 한구석을 여전히 차지하고, 주식투자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요소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급기야는 경기침체로 97년 이후 처음으로 재정적자까지 안게 됐다. 미 의회예산국은 8월27일 “경제 상황의 악화로 세수가 줄어든 반면 군사비를 포함한 지출이 크게 늘어 다음달 말 끝나는 2002 회계연도에 1570억달러의 재정적자를 낼 전망”이라고 발표했다.

최대과제, 2004년 재선을 위하여


사진/ 부시 정권의 수뇌부들은 우방국은 물론 유엔의 결의. 심지어 의회 동의 절차도 무시한 채 이라크 확전을 꾀하고 있다. (SYGMA)


부시는 취임 뒤 군사력을 통해 힘 자랑하는 것을 빼고는 내세울 치적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방주의적 외교정책과 경제정책에 대해 공화당 안에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최근 한 내부문건에서 “부시 대통령이 전시지도자 이미지만으로는 경제로 인한 어려움을 돌파하기 어렵다”며 “테러와의 전쟁과 본토방어 위주 정책에서 기업부패 척결과 교육·의료 등 국내 민생경제 문제로 관심을 옮길 것”을 촉구했다. 이런 충고에도 불구하고 부시 정권의 이라크 확전의지는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라크를 칠 명분이 충분히 쌓인 것 같지도 않다. 부시 행정부는 여전히 단골메뉴인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만 언급할 뿐이다. 이런 무기들이 아랍계 테러조직과 연계돼 있다는 구체적 단서가 잡히지 않았음에도 부시 정권은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부시 정권의 수뇌부들은 이라크를 치는 데는 우방국은 물론, 유엔의 결의, 심지어 의회 동의절차도 필요 없다고 강변한다. 갑작스레 서두르는 까닭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부시의 최대 과제는 2004년 재선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올 11월5일 열리는 중간선거에서 이겨야 한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4개월 만에 민주당 지지율이 공화당을 3% 차로 앞선데다, 응답자 절반이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반응을 보여 공화당 정권에 대한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부시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부시는 최근 미국 전역을 도는 강행군을 벌이고 있다. 낮에는 미국은 여전히 전시상태라며 국민에게 이라크를 겨냥한 테러전 동참을 호소하는 한편, 밤에는 중간선거에 출마하는 공화당 후보들을 위한 선거자금 모금행사를 열어 부지런히 돈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라크가 부시의 권력욕을 채워주는 제물로 쓰일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부시가 ‘테러’와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를 찾기 쉽지 않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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