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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슬픔을 녹일 수 있다면… 한인 유족들의 추모사업, 장학재단 만들고 합동묘역도 조성할 계획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과 함께 아들 강준구씨를 묻은 강성순씨. 뉴욕 서니사이드에 살고 있는 강씨는 칠십 노구를 이끌고 아직도 2주일에 한번씩은 어김없이 그라운드 제로 현장을 찾아 슬픔을 삭인다. 이곳이 아들의 무덤이려니 하면서. 강씨뿐만이 아니다. 한인 희생자는 모두 21명. 이 가운데 현장에서 뼈 한 조각이라도 찾은 유족은 아무도 없다. 다 키운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실의에 빠져 대부분 생업도 놓아야 했다. “허탈감을 뭐라고 말할 수 없지요.” 뉴욕 맨해튼의 할렘가에서 흑인들을 상대로 세탁소를 운영하는 한인 유족회장 김평겸(61)씨는 ‘땅의 꺼짐’이나 ‘기진맥진해 축 처진 상태’를 뜻하는 영어단어 ‘sag’로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다. 김씨의 아들 앤드루(한국명 재훈, 당시 26살)씨는 고액연봉을 받는 투자자문회사에 근무하다 변을 당했다. 김씨는 아들이 모아놓은 돈과 각종 보험금 등 50만달러를 출연해 아들 이름을 딴 장학재단 ‘앤드루 김 추모재단’을 설립했다. 김씨는 “기금을 아들이 나온 컬럼비아대 한인 학생들과 지역의 교민들을 위해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들 재훈씨는 아버지가 일하는 세탁소에 걸린 큼직한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유족들은 다달이 한 차례씩 모임을 연다. 서로를 위로하고 하소연도 하다 보면 조금이나마 슬픔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유족회는 한인 희생자들의 추모비를 세우고 합동묘역을 조성하기 위한 추모공원 터를 물색 중이다. 자금이 문제인데, 미주한인이민백주년기념사업회와 함께 추진하고 있다. 희생자들의 1주기인 9월11일엔 뉴욕 한인회관에서 추모식을 연다. 한인 희생자 가운데 유일하게 현지 거주민이 아니라 LG화재 뉴욕지점장이던 구본석(당시 42살)씨의 부인 조윤호(38)씨와 두 딸은 아직도 뉴저지에 계속 머무르고 있다. 조씨 가족은 아직도 미국 정부의 영주권을 받지 못한 채 주재원 가족 비자로 불안정한 체류를 하고 있다.
뉴욕·위싱턴=글·사진 임석규 기자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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