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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 등록 2002.08.28(수) 제42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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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값만 하면 몇배를 더 줘도 좋다” 월급쟁이간 임금격차 벌어지면서 일부 소외감도… 핵심인재 차등대우의 빛과 그림자
월드컵 축구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가 바꿔놓은 것은 축구만이 아니다. 그는 우리 사회의 보상 시스템에 대한 인식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그의 연봉은 100만달러(약 12억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이끌던 대표팀이 한때 유럽팀과의 평가전에서 나쁜 성적을 내자 많은 축구팬들은 실력도 없는 사람을 데려오느라 너무 많은 돈이 들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가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를 4강까지 끌어올리자 그는 일거에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가 올린 성적은 “연봉이 문제가 아니다. 그 값을 하기만 하면 된다”는 인식을 널리 확산시켰다.
삼성의 파격적인 핵심인재 대우
인재 양성과 확보를 강조하면서 기업들이 히딩크를 자주 거론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재경영은 기존의 연공서열식 보수체계를 뿌리째 흔들어놓고 있다. 형식적인 연봉제를 넘어, 능력·성과에 따른 보상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핵심두뇌로 분류한 400여명의 연봉은 같은 직급 내 임직원보다 3배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기업은 핵심인재를 붙잡기 위해 프로스포츠 선수들처럼 계약금 비슷한 성격의 보상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의 주주나 경영진의 관점에서 볼 때 그만한 값을 하는 사람에게 그에 맞춰 보수를 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이른바 시장논리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요즘처럼 다른 기업으로 이직이 쉬워진 상황에서 모든 사람을 비슷하게 대우하면 꼭 필요한 인력부터 먼저 회사를 떠나게 된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체계를 유지해온 우리나라에서 월급쟁이들 간 보수격차는 아직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그 사이 연봉제가 확산됐다고 해도 여전히 외국기업에 비하면 작다. 고려대 신수식 교수(경영학과)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연봉제 도입이 성과보상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차등보상을 통한 효율성 제고를 위해서보다는 총인건비를 줄이려는 뜻에서 연봉제를 도입하는 경향이 더 강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가장 좋은 대우를 받는 최고경영자와 일반사원 간의 임금을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10배가량 차이가 난다. 능력과 성과를 중시하는 미국의 경우, 지난해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이 받은 연봉은 일반 공장 노동자들의 평균 411배에 이르렀다고 <비즈니스위크>(5월6일치)가 보도했다. 최근의 인재경영 강조는 한국에서도 월급쟁이 간 임금격차를 본격적으로 벌려놓는 시발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효율성 증대를 위한 차등대우가 과연 어느 정도 수준까지 정당화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비즈니스위크>는 피터 드러커의 말을 인용한다. “어떤 간부도 해당업체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보다 20배 이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 이상의 보수격차는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충정을 모욕하는 것이라는 논리다.
아주 뾰족한 ‘소득격차 피라미드’
사실 논란의 소지가 많은 것은 최고경영자와 최저임금자의 격차는 아니다. 그것보다는 비슷한 연령대, 비슷한 근무 경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격차다. 격차가 커질수록 핵심인재로 취급받지 못하는 다수 직원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 대기업의 인사담당자는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핵심인재를 붙잡기 위해서는 최고의 보수를 주는 업체와 비교해 보수를 줘야 하지만, 사원간 보수 격차가 지나치면 원활한 업무협조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업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이유말고도 최근의 핵심인재 확보 움직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모두에게 기회가 충분하게 부여되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핵심인재로 분류된 사람들이 그만큼 기업의 실적 향상에 도움을 주느냐는 지적이다. 한 대기업의 중견간부는 “검증도 없이 해외 석·박사들을 경쟁적으로 영입하는 것은 또 다른 학벌주의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또 지금 같은 기업지배구조 아래서는 기업 자체보다는 오너(총수)의 이익을 위해 큰 기여를 하는 사람이 핵심인재로 먼저 꼽힐 수도 있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금융·증권 전문가를 고액의 연봉을 주고 스카우트해다가 총수 일가의 재테크를 맡기는 경우도 눈에 띈다”고 말했다. 개별 기업의 처지에서는 직원 간 임금격차가 기업의 경영성과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경제 전체의 효율성과 국민의 행복도를 계속 높여갈 수 있는지는 따져봐야 할 대목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근로자 가구의 소득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상위 계층은 소득이 큰 폭으로 증가한 데 반해 하위 소득 계층의 소득은 그다지 늘지 않았다. 지난 2분기 근로소득의 분포를 보면, 소득 하위 10% 계층은 월평균 소득이 100만원 이하이고, 하위 10% 이상∼50% 미만 계층이 200만원대, 50 이상∼80%의 계층은 300만원대에 속해 있다. 소득 9분위 계층만이 354만원으로 300만원대, 상위 10% 계층만이 월평균 500만원가량의 근로소득을 얻고 있다. 아주 뾰족한 피라미드 구조다. 앞으로 소득격차가 더 벌어질 경우,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가뜩이나 취약한 현재의 사회복지 시스템으로 다 치유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셈이다.
잠재적 인재 도태시킬 수도
기업들이 인재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이를 위한 사회적 기반이 매우 취약해져 있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은 신입사원 채용을 크게 줄였다. 대신 경력사원을 채용하거나 해외에서 공부한 특별한 인력들을 채용하고 있다. 그동안 이뤄지던 그룹 단위의 공채 시스템은 기업이 일단 기본 자질을 갖춘 사람을 채용한 뒤 추가적인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자체 부담하는 방식이었지만, 이제는 그 비용은 물지 않는다. 대신 소수의 검증된 인재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교육비용을 부담하겠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이에 대해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변화된 기업환경에 맞는 인재를 제대로 양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잠재력을 가진 인재들이 성장할 기회마저 제대로 갖지 못한 채 도태될 수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7월 현재 20대의 실업률은 5.8%로, 전체 실업률 2.7%의 2배가 넘는 실정이다. 삼성그룹이 총수와 계열사의 출연으로 5천억원 규모의 장학기금을 만들기로 한 것은 그런 점에서 재계 안팎의 관심을 끌고 있다. 삼성의 장학기금을 지원을 받은 사람은 삼성 계열사에서 일정기간 근무하는 등의 방식으로 빚을 갚아야 할 의무가 없다. 그냥 지원을 받을 뿐이다. 삼성 관계자는 “광범한 인재풀의 존재는 장기적으로 볼 때 삼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한 대기업 간부는 “기업들이 내부의 인재 육성과 관리에만 머물지 말고, 사회 전체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 육성에도 비용을 분담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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