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08월14일 제422호 

구태는 여전하고 힘은 세지고…

방탄국회·장외집회·폭로전…국회 장악했다고 달라질 수 있을까

과거 행적은 주장이나 약속보다 미래를 예측하는 확실한 잣대다. 정치인이나 정당이 앞으로 보여줄 정치행태도 이 잣대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틈만나면 '방탄국회'를 소집해 국회의 권위와 기능을 훼손했다. 98년 2월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2000년 5월 15대 국회가 끝날 때까지 11번이나 방탄국회를 소집했다. 모두 그럴듯한 명분이 따랐다. 하지만 본질은 강경식·이신행·서상목·정형근 등 각종 비리연루 의혹을 받는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검찰에 체포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서상목 방탄국회’는 많은 후유증을 남겼다. 98년 9월, 서 의원이 97년 대선 당시 국세청을 동원한 대선자금 모금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나라당은 무려 7개월 동안 다섯 차례나 방탄국회를 소집하며 그를 보호했다. 오랫동안 국회 기능은 마비됐다. 90년 4월 어렵사리 제출된 서 의원 체포동의안마저 부결시켰고, 정치혐오증은 더욱 커졌다. 지난해 1월에도 강삼재 의원을 위한 방탄국회를 소집했다. 강 의원은 97년 대선 때 안기부 예산을 이회창 대통령 후보 선거자금으로 유용한 주역으로 의심받고 있었다.

폭로전 반대하면 정치 모르는 소리?


사진/ 8월9일 열린 민주당 정치공작 규탄대회. 한나라당은 원내 1당 지위를 계속 유지함에도, 영남 특정지역에서 장외집회를 열었다. (이정용 기자)


국회를 놔두고 장외로 뛰쳐나가는 일도 반복했다. 한나라당은 98년 9월 ‘판문점 총격 요청 사건’이 불거지자 장외집회로 맞섰다. 정기국회 참여까지 거부한 채 “김대중 정권이 고문조작으로 야당탄압 파괴공작을 벌이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지난 4년 동안 김대중 정권 국정파탄과 부당 빅딜 규탄대회(99년 1월), 언론장악 음모 저지 투쟁(99년 10월), 김대중 독재정권 범국민 규탄대회(2000년 9월), 언론탄압 저지 투쟁(2001년 7월), 정권비리 규탄대회(2002년 4월) 등 대규모 장외집회가 끊이지 않았다. 야당이 정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없을 때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장외집회를 열 수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계속 원내 1당 지위를 유지했다. 특히 지난해 10·25 재보선 압승 이후에는 원내과반에서 1석 모자란 힘을 가졌다. 국회에서 의사를 관철할 통로가 상당 부분 열려 있었다. 더욱이 대부분의 장외집회를 부산·대구 등 영남 특정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열었고,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도 잇따랐다. 이회창 후보는 항상 “3김식 정치를 타파하고 정치를 선진화하겠다”는 대의명분을 내걸었다. 하지만 실제 정치에서는 ‘방탄국회’, ‘장외집회’, ‘폭로전’ 같은 구시대적인 모습을 여전히 답습했다.

당론을 관철하기 위해 개별적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소신표결을 억누르는 일도 일어났다. 지난 99년 10월 이수인·이미경 두 의원을 출당한 것이 대표적 사례. 이수인 의원은 당론을 어기고 노사정위원회법 표결에 찬성했고, 이미경 의원은 민주당이 발의안 동티모르 파병동의안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한나라당에서 쫓겨났다. 지난해 12월 김홍신 의원을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강제사임한 것도 소신표결 원칙을 침해한 사례다. 김 의원은 당시 한나라당이 제출한 건강보험 직장·지역 재정분리 법안(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에 반대했다. 당 지도부는 그를 강제사임시킨 뒤 표결을 진행했고, 김 의원은 헌법소원을 제출한 상태다.

물론 김대중 대통령이나 민주당도 국회 안에서 비슷한 행태를 반복했다. 야당인 한나라당이 입법권을 장악한 국회에서는 더 이상 이런 구태가 재현되지 않을까. 8·8 재보선 직후 만난 이회창 후보의 한 소장 참모는 넋두리를 늘어놨다. “더 이상 폭로전이나 네거티브 공세로는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그런데 아직 당 안에는 그런 방법이 실제 선거전에는 큰 도움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나 같은 의견은 정치를 잘 모르는 얘기로 폄하된다. 정말 답답하고 걱정스럽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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