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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오만한 미국을 알았다” 의정부 고등학생 현구의 어머니가 반미를 외치는 까닭은
“효순이와 미선이가 죽은 다음날 현구가 장례식장에서 밤을 새우고 온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날 학교에 가야 하니 밤은 새우지 말라고 당부했다. 현구가 새벽 2시쯤 택시를 타고 들어오더니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미군들이 장례식장에 찾아왔는데 통역을 들어보니 ‘자신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하더라는 거였다. 현구는 너무 화가 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도 그랬다. 마음만 아픈 게 아니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도무지 참을 수 없어 첫 집회부터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이 일이 있기까지 반미감정 같은 건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미군부대가 있어 늘 마주치지만, 같은 하늘 아래 어울려 사는 사람쯤으로 여겼다. 예전에도 미군이 좋은 건 아니었다. 의정부에 살면서 “미군차가 오면 무조건 비켜라”, “미군과 시비 붙지 말고 피해라”, “미군이 잘못했어도 우리만 피해본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별 생각 없이 살았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게 효순이와 미선이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자책이 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활동을 반공이나 안보논리와 연결해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의 자주권을 되찾아 억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마음뿐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6·25 때가 아니라 2002년이다. 언제까지 미국 눈치만 볼 건가.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사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는 한국 정부가 부시 미 대통령에게 당당하게 사과를 요구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그는 “같이 아파해야 우방이지 저렇게 오만하게 굴어서야 어디 우방이냐. 부시 대통령이 사과하고, 한미 소파가 개정될 때까지 계속 싸우겠다”고 했다. 그는 이미 현구의 어머니가 아니라 미군의 위험에 노출된 모든 청소년들의 어머니 같았다. 한국의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나 무섭게 변하는지 미국 정부가 알까 모르겠다. 그의 이름은 유순득(44)이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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