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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 등록 2002.07.31(수) 제42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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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민간기업? 공직사회 뺨친다 접대비 남용에 억지대출 공공연… 사주 일가 경영권 승계 위해 계열사까지 희생
“자기 딸이 나이트클럽 가서 쓴 것까지 올라와 있더라고. 가족끼리 외식한 것, 출장 가서 개인적으로 쓴 것도 모두 접대비나 기밀비로 처리되어 있었어. 집에서 쌀판 돈까지 그런 식으로 했으니 말 다한 거지.”
공직자라면 몸이라도 사리지만…
98년 퇴출된 한 중견 무역회사 직원은 법인 청산작업을 하면서 찾아낸 사장의 접대비 전표를 보고 어처구니없던 기억을 떠올렸다. “정확히 계산해보지는 않았지만 사장이 취임해서 회사 퇴출 때까지 4년 동안 그런 식으로 전용한 돈이 1억원 안팎은 되어보였다.” 퇴출 전에도 공공연히 소문은 돌았다. 그러나 사장의 재임기간에 경리과에서 이를 문제삼거나 감사에 적발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는 “사장의 기밀비 남용과 회사 퇴출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회사는 망했다”고 말했다. 공사 구분이 필요한 곳이 공직사회만은 아니다. 민간기업도 공과 사는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민간기업 사정을 웬만큼 아는 사람이라면 “기업이 공직사회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인의 의식이 공직자의 그것보다 떨어진다는 얘기다. 김호섭 아주대 교수(행정학)는 “공직자라면 누구라도 공과 사를 조금은 의식하며 몸을 사리지만 모든 가치가 돈으로 통하는 기업인에게는 그조차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난 봄까지 한 카드회사 사장을 지낸 김아무개씨는 얼마 전 회사를 상대로 퇴직위로금을 추가로 달라는 소송을 냈다. 그가 3년을 일하고 받은 퇴직금은 1억8천만원 정도였다. 그리고 그가 추가로 요구하는 퇴직위로금은 6억8천만원이다. 회사를 주식시장에 상장시키고 크게 성장시킨 공로를 보상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이 회사 직원들은 어이없어 한다. 그가 취임할 때 9%인 시장점유율은 3년 새 4.5%로 떨어졌다. 퇴임 직전에는 미성년자 카드 발급 등을 이유로 금융감독원(금감원)으로부터 제재까지 받았다. 그런데도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는 기업인 기질을 일방적으로 우대한다. 사회 어느 분야에서나 최고경영자(CEO)를 들먹인다. CEO 출신이 공직으로 자리를 옮기면 반드시 ‘CEO 장관’, ‘CEO 시장’, ‘CEO 지사’라는 트레이드마크가 프리미엄으로 따라붙는다. ‘CEO 공직자’는 조직의 낙관적 미래를 상징하는 기호다. 그러나 사적 이익에 밝은 사람이 공조직도 훌륭하게 이끈다는 명제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CEO 출신 이명박 서울시장의 최근 행태는 오히려 정반대의 심증을 굳게 한다. 공사 구분에 대한 요구가 민간기업에 상대적으로 덜한 건 기업 구성원의 부정이 미치는 파장이 공직사회보다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에서 사무실 인테리어 발주업무를 맡은 직원은 회사 몰래 인테리어 시공 협력업체를 세워 이 회사 인테리어 업무를 도맡아 수주해오다 최근 경쟁업체의 반발로 들통나고 말았다. 이 회사 감사과 관계자는 “일반 사원들이 저지르는 비리는 회사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풍조가 만연해 장기적으로 경영에 부담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벌 총수에게 ‘회삿돈은 쌈짓돈’
그러나 민간기업에서도 직위가 올라갈수록 파장은 커진다. 98년까지 ㄷ은행에서 일하다 은행 퇴출과 함께 은행권을 떠난 이아무개(34)씨는 지점장급이 사적 이익에 매달리다 은행이 망했다고 믿는다. “규정에 따라 대출이 나가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실무자의 의견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지점장이 대출해주라고 하면 심사기준을 바꿔서라도 어떻게든 대출을 해줘야 했다.” 물론 지점장이 ‘특별대출’을 요구한 경우는 지점장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이거나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람이었다. 이 은행은 신용조사를 거쳐 100점 만점에 60점이 넘으면 기업대출을 해주도록 규정을 두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평가항목은 대차대조표와 자금흐름이었다. 여기서 나쁜 평가가 나올 경우 원칙대로라면 대출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사업 전망과 기업인 평가 등 다른 주관적 평가항목 점수를 파격적으로 높게 주면 60점을 넘길 수 있었다. 지점장의 지시를 어기는 사람은 결제라인에서 배제되었고, 대신 그자리에 고분고분한 사람이 앉았다. 그는 당시엔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었다고 말한다. “워낙 그런 풍토가 만연해 있었다. ‘은행 불패’라는 믿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내가 보기에도 심하다 싶은 일이 공공연하게 일어났다. 심지어 제3자를 세워 억지대출을 해주게 하고 그 돈을 자기가 가져다쓰는 지점장도 있었다.” 여러 해 실직자로 지내다 지금은 한 외국계 자산유동화 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구조적으로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새로 일하는 회사에서는 고위간부가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려고 편법을 쓰는 모습은 전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씨가 은행에서 일하며 지켜본 모습은 90년대 은행권이 한보그룹에 편법대출을 해준 것과 수법에서 다르지 않다. 다른 게 있다면 대출규모와 사후파장, 권력의 개입 정도다. 이씨는 “한 은행의 지점 안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초대형 금융비리를 넘어 외환위기와도 닿아 있다는 사실을 퇴출 뒤에야 겨우 감지할 수 있었다. 기업의 활동이 전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면 우리 사회가 나서서 기업에 공사 구분을 엄격히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재벌기업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관을 능가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재벌 총수에게 회삿돈은 쌈짓돈과 다르지 않았다. 삼성은 사주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계열사를 희생시켜온 대표적 재벌이다.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씨는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확대해가는 과정에서 거의 모든 계열사를 동원했다. 이씨는 계열사 주식을 싼값에 인수하거나 전환사채를 사들인 뒤 주식으로 전환해 최고 10배 가격에 파는 방법으로 재산을 불리고, 주요 계열사의 최대주주로 올라서 사실상 경영권을 승계했다. 지난 94년 이 회장한테서 증여받은 61억원으로 몇해 만에 이뤄낸 놀라운 ‘성과’였다.
수많은 주주들 몫을 가로채는 일
재벌기업들의 계열사를 동원한 총수일가 재산 불리기와 경영권 승계는 수많은 주주들에게 돌아갈 몫을 가로채는 것이다. 그러나 공사를 구분 못하고 남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이들의 행태는 아직 제대로 단죄되지 않았다. 지난 98년 10월 참여연대가 삼성전자 전·현직 이사들에 대한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한 뒤 3년이 지난 지난해 12월 말 이들에게 977억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을 받아냈다. 재벌 경영진에게 경영을 잘못한 책임을 물은 첫 판결이었으나, 그 책임도 재벌 총수가 아닌 그들의 ‘머슴’에게 돌아갔다. 최근 미국에서도 엔론 사태 등 일류 기업들의 회계부정 파문이 잇따르면서 이들 기업 소유주와 CEO들이 비난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에게는 한국 재벌 총수에게서 볼 수 없는 모습이 있다. “95년 미국 휼렛패커드사에 가서 창업주들을 만난 일이 있었다.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직접 운전을 하였다.” 전철환 한국은행 전 총재는 “아무리 일류 기업의 창업주나 대주주라고 해도 회사의 재산을 맘대로 가져다 쓸 수 없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그런 미국에서도 기업 비리가 판치는 걸 보면 그렇지 못한 한국의 미래가 더욱 두려워진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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