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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등록 2002.07.24(수) 제419호

[표지이야기] '꽃미남’을 뛰어넘다

여성들의 노골화된 욕망을 진원지로 한 김남일 바람… ‘오빠의 계보학’을 말한다

1930년대 후반 서울 동양극장 앞은 연일 인산인해를 이뤘다. 동양극장 간판스타인 황철을 보기 위해 장안의 여성들이 아침부터 차려입고 몰려든 탓이다. 황철을 향한 여성들의 마음은 반세기 뒤 속옷을 벗어던지며 ‘오빠’에 까무라친 여성들의 심정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표현방식이 다르고 표현주체가 한정됐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당시 내놓고 황철을 사모할 수 있던 이들은 기생과 신여성들뿐이었다.

‘오빠들의 코드’는 무엇이었나

어느 시대나 ‘오빠’는 있었다. 그리고 누구나 ‘오빠 신드롬’의 효시는 자신의 우상인 ‘오빠’로부터 출발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의 바탕에는 자신의 ‘오빠’를 절대화하고 자신의 욕망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 속성이 깔려 있다. 따라서 오빠를 향한 열광은 한 시대의 욕망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김남일을 향한 뜨거운 바람은 과거보다 광범위하고, 훨씬 노골화된 우리 시대 여성들의 욕망을 진원지로 하고 있다.

감정을 감추는 게 미덕인 시대를 벗어나면서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오빠’를 찾아냈고, 이들의 뜨거운 사랑 속에 수많은 ‘오빠들’들이 명멸했다. 6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이들에게는 ‘낭만파’ 배호 오빠가 있었다. 그 뒤를 이은 남진·나훈아 오빠는 ‘씩씩한 사나이’의 기상을 내보이며 가는 곳마다 여성팬들을 몰고 다녔다. 조용필 오빠는 ‘비범함’으로 지존의 자리에 우뚝 서서 80년대를 열었다. ‘이단아’ 서태지는 80년대와 90년대를 결별시키며 전복적 쾌락을 안겨줬다. 금기된 욕망의 빗장을 연 90년대에는 터프가이·섹시가이·쿨가이·꽃미남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나오며 단독자가 아닌 ‘군’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서로 뒤섞였다. 그 결과 터프가이의 변종인 사고뭉치 악동들과 꽃미남의 변종인 미소가 아름다운 착한 소년들까지 스펙트럼은 넓어졌고 항목들은 빠르게 분화됐다. 그 아찔한 속도감 속에서 김남일이 등장한 것이다. 문화평론가 이영미씨의 표현에 따르면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나 본인도 “어리둥절하다”는 김남일 신드롬은 대를 이어 발전해온 사회적 감성을 벗어나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오빠의 계보학’은 여성들의 욕망과 함께 한 시대의 감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해방 전 새로운 문물이 대중에게 확산될 때 여성들은 가수 남인수의 깔끔함에 목을 맸다. “남인수는 잘 때 머리가 흐트러질까봐 목침을 베고 잔다더라”는 소문에 수많은 여성들이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을 돌아보며 한숨지었다. 깔끔함은 곧 세련됨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때였다. 해방과 전쟁이라는 아수라장을 뒤로 하고 여성들은 갈증을 달래듯 낭만을 찾았다.

요절한 가수 배호는 벽에 기대어 노래를 할 정도로 야리야리한 매력을 풍겼다. 노래 부르고 쓰러지길 반복하던 그는 뭇 여성들의 가슴을 뻥 뚫어놓고는 안개처럼 떠났다. 그 상처 때문인지 여성들은 야성미를 물씬 풍기는 남진·나훈아에 열광했다. 수많은 여성들이 도회로 몰려오면서 남성을 향한 욕망이 노골화되던 시대였다. 도회 지향이냐 고향 지향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남진·나훈아가 작동한 강력한 코드는 성적 매력이었다.

계산되지도, 기획되지도 않았다

조용필이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오빠 신드롬을 업그레이드하기 전, 오빠 신드롬에는 중요한 실험무대들이 있었다. 천편일률적인 트로트가 아닌 자기 목소리를 내건 다양한 포크가수들이 쏟아져나온 것이다. 그룹 ‘어니언스’가 ‘양파들’로 ‘코인즈’가 ‘엽전들’로 ‘바니걸스’가 ‘토끼소녀’로 강제개명되는 시절에도 이미 감성의 변주를 맞본 대중들의 취향까지 ‘오와 열을 맞춰’ 줄세울 수는 없었다. 이런 배경을 딛고 등극한 조용필은 트로트에서 록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대중의 높은 눈높이와 넓은 취향을 만족시켰다.

90년대는 서태지가 열었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계에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힌 뛰어난 뮤지션인 동시에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가려서 보여주는 발군의 기획자이기도 했다. 서태지가 스스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유례없는 신드롬을 낳았다면, 그 뒤의 스타들은 제2의 서태지 신화를 꿈꾸는 다른 이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때부터는 결과로서의 신드롬이 아니라 목적이나 목표로서의 신드롬이 자리잡았다. 치밀하고 정교한 스타시스템에 따라 외모나 실력으로는 모자라 분위기까지도 차별화된 스타들이 속속 등장한 것이다. ‘만들기 좋은’ 까닭에 오빠들의 연령대는 급속도로 낮아졌다.

그러나 김남일이 몰고온 파장은 ‘오빠의 계보학’만으로는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의 인기는 최근의 스타시스템과는 달리 계산되지도 기획되지도 않은 탓이다. 문화평론가 이영미씨는 “축구선수이기 전에 모델로 먼저 알려진 안정환이 그라운드에서의 생생한 땀방울로 이미지를 바꿨다면, 김남일은 예고없이 드러나 충격을 준 경우다. 이미지가 아닌 현실에서 튀어나온 까닭에 오히려 김남일 신드롬이라는 현상은 그 시작과 끝이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화려한 태극전사들의 플레이를 보며 팬들은 이미지가 아닌 실체로서의 스타에 눈을 떴다. 그러나 다수의 여성들이 선택한 대상은 안정환이나 홍명보나 송종국이 아니라 말 많고 탈 많은 김남일이다. 아름다운 꽃미남도, 듬직한 큰오빠도, 바른생활 소년도 아닌 ‘말썽꾸러기 옆집 소년’ 같은 김남일에게 빠져든 것이다. 이를 두고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이동연 사무차장은 “월드컵 4강진출이라는 신화적 성적과 노는 맛을 일깨워준 응원문화가 강력한 기폭제가 된 것 같다”고 진단한다. 지난 98년 월드컵이 끝나고 이동국·고종수·김은중 등이 수많은 여성팬을 확보했지만, 지금의 김남일 신드롬과는 거리가 있었다. 김남일은 축구가 좋고, 이기는 게 좋고, 노니까 좋다는 지난 6월 한달 대중의 눈을 번쩍 뜨게 한 ‘세 가지 발견’을 고루 만족시킨 존재다.

불안하지만 도발적 매력

월드컵 직전까지 여성들의 욕망과 대중의 감성은 꽃미남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미소년이 좋다>를 쓴 남승희씨는 그 까닭을 “여성들의 주체성·독립성이 커지면서 자신이 리드할 수 있는 남성에게 강한 매력을 느꼈다. 보기에 좋아 품기 좋고 자신의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착한 미소년들이 당연히 관계의 대리만족 대상이 된 것이다”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김남일은 꽃미남 퍼레이드의 방향을 틀었다. 그 효과는 ‘미남’에 ‘근육질’을 더한 정도의 진전이 아닌 듯하다. 네티즌 김주은씨는 여성들의 새로운 욕망에 방점을 찍는다. 그는 ‘김남일과 꽃미남이 다른 점’이라는 글에서 “김남일은 함께 모험을 할 수 있는 상대”라고 설명한다. “김남일은 결혼 상대로서의 안정감을 주지는 않지만 함께 휴가를 떠나고 싶은, 불안하지만 도발적인 매력이 있다. 그와는 유쾌한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김남일은 재미있고 의리 있으면서도 나를 묶어두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러한 관계에 대한 욕망은 여성팬들이 들고 나오는 “남일아 불 꺼라”, “남일아 나이트 가자”는 노골적이고 용감한 미니 플래카드의 문구에서 도드라진다.

7월21일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 4만2천여명의 관중이 몰리는 등 월드컵에 이어 K리그의 열기가 끝간 데 없이 치솟고 있다. 공연장을 찾아 오빠를 외치던 여성팬들이 앞다퉈 축구장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연예계 스타의 사인 여러장을 축구선수 사인 한장과 바꾸려는 거래의 열기도 식을 줄 모른다. 연예스타의 매력이 이미지 조작으로 ‘관리’될 수 있다면 축구스타의 매력은 관리될 수가 없다. 그라운드는 선수의 실력을 정직하게 내보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김남일 신드롬이 자리잡고 있는 ‘위태롭고도 자극적인’ 지점일 것이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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