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hani.co.kr/h21

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등록 2002.07.24(수) 제419호

[표지이야기] ‘자존심 회복’의 카타르시스

신경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이 보는 김남일 신드롬

장안에 화제가 된 배칠수의 패러디방송 엽기DJ에 따라붙은 멘트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국의 대통령에게 해줬으면 하는 말”이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속내를 반영해주는 사람과 사건에 열광한다. 자신이 갖고 싶은 외모, 성격, 능력, 명예 또는 부…. 그 요소들은 시대와 가치관에 따라 바뀌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를 투영시킬 우상을 찾는다. 월드컵이 끝나고 후폭풍처럼 김남일 신드롬이 몰아쳤다. 그라운드에서 보인 능력과 특성이 작용했지만, 지금처럼 인기가 증폭되는 까닭은 그가 대중의 감성과 기호를 충실히 담아내는 지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마음과마음 원장은 김남일이 작동하는 사회심리적 코드를 세 가지로 나누어 짚었다.

첫째는 자존심이다. 김남일은 사람들에게 심리적·역사적으로 상처받은 자존심이 회복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줬다. 미국전 때 상대 선수들과 9 대 1로 맞붙어 승강이를 하고, 동료를 때리는 이탈리아 선수를 맞받아치고, 지단이 다쳤을 때 몸값 운운하는 기자들에게 “내 연봉에서 까라고 하세요” 하는 등 그의 행동과 말에서는 직설적이고 주눅들지 않는 배짱이 묻어났다.

둘째는 자아의 명확성이다. 김남일은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대면한다. 우리 사회에서 누구든 ‘자아의 경계’를 지키고 살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도 어리고, 매니저가 특별히 관리해주지도 않는데 당당하게 자아중심적인 태도를 보이는 김남일에게서는 ‘본능의 힘’이 느껴진다. 자아에 대한 갈망이 있는 이들에게 이런 태도는 근원적 만족감을 준다.

셋째는 자기 조절 능력이다. 사람들은 그의 솔직함이 성장배경과 성격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것이 지나치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는 까닭은 솔직함의 수위를 조절하는 심리적인 성숙함을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폼 잡는 거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타일은 중요하게 생각한다”거나 “사람들 앞에 설 때는 옷을 잘 갖춰입어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정혜신 원장은 ‘김남일다움’에 열광하는 것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중의 거대한 욕구가 표출된 것이라 본다. 10여년 전 X세대가 “내 멋대로 한다”고 외치며 등장했을 때 기성세대와 가치관의 충돌을 겪었다면, 시간과 함께 그 충돌들은 뒤섞이고 다듬어졌다. 사회적 훈련기를 거친 것이다. 그 결과 기성세대마저 자아 욕구에 집중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정서를 갖게 됐다. 최근 쏟아지는 외도·불륜은 그런 세태의 일부다.

또한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사회나 권력, 역사나 관습에 내맡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쥐어주는 대로 보여주는 대로 따르지 않고 스스로를 중심에 놓고 싶어한다. 단적인 흐름이 노사모나 붉은악마였다. 권력 앞에서 무력했던 개인들이 권력을 대상으로 동등한 힘을 발휘하며 의견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정 원장은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고 세상과 만나는 수위를 조절하는 김남일의 특성이 이런 대중의 욕구나 사회적 흐름과 맞아떨어졌다”고 분석한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21003000/2002/07/021003000200207240419004.html



The Internet Hankyoreh copyright(c) webmaster@new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