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07월31일 제420호 

황당하다 공무수행!

술을 마셔도 공무, 공을 차도 공무… 공사 구분 짓밟는 고위 공직자 백태



공무원은 공을 차도 공무고 술을 마셔도 공무고 집안일이 생겨도 공무다?

비판과 자조가 뒤섞인 얘기이다. 부패방지위원회가 지난 7월22일 내놓은 ‘공무원 행동강령 권고안’에 상당수 중하위직 공무원들이 시큰둥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 정부기관의 공무원(7급)은 직장협의회 게시판에 “직위를 빙자해 가족까지 호가호위할 수 있고, 부당한 업무지시를 내릴 수 있으며, 영리업체에서 불러주는 사람들은 중하위직 공무원이 아니라 고위공무원이다”라고 꼬집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중하위직 공무원들의 원성은 ‘공무원의 꽃’이라고 하는 4급 이상 고위공무원들을 겨냥하고 있다.

최근 유엔개발계획(UNDP)이 내놓은 ‘인간개발보고서 2002’에 따르면 한국은 정치체제 등 민주주의 발전 정도를 재는 항목에서는 상위권(1∼53)의 중간그룹에 속했으나 정부의 효율성과 공직자 부패항목에서는 하위그룹에 속했다. 또한 공직자에 대한 향응제공, 기업의 장애가 되는 부패, 부정기적 뇌물상납 등을 평가한 항목에서도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는 불법사례와 예방구조를 종합해 매긴 점수다.

비리의 주인공들은 누구나 힘이 있는 이들이다. 이들은 공적 지위를 사적 용도로 쓰고, 사적 관계로 공적 업무를 훼방놓는다. 대신 ‘운이 나빠’ 들키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법으로 걸러지지 않는 수많은 일들이 편법의 언저리에서 난무하고 있다.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얼마 전 이명박 서울시장의 아들과 사위가 시의 공식행사 도중 히딩크와 기념사진을 찍은 일로 장안이 시끄러웠다. 아버지의 권력에 기대어 호가호위한 대통령 아들들, “총리가 될 줄 알았으면 아들의 미국 국적을 포기했을 것”이란 새 총리서리. 고위 공직자 세계에서 공사의 경계는 너무도 흐릿하다. 상식과 판단력이 있는 보통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상한 공무’를 유형별로 정리해보았다.

<막무가내형>
“아, 나무는 어제 심었어!”

직위에 따른 혜택을 제멋대로 ‘확대강화’해 누리는 경우이다. 이들의 특성은 남의 눈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것과 본인의 행위에 대해 아무런 판단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용감하다.



얼마 전 한 국가기관 종사자가 일요일날 관용차를 타고 가다 추돌사고를 냈다. 사고 원인은 운전사의 졸음운전. 윗분을 공무로 모시느라 피로한 게 아니라 윗분의 개인 일로 너무 많이 시달린 탓이다. 이날도 윗분은 성당에 가는 길이었다. 한데 마침 들이받은 차가 영등포 일대 유명한 조폭세력의 부두목이었던 것. 싸우거나 직위를 이용해 무마할 수 없어 결국 400만원의 보상비를 물어야 했다. 그런데 이 용감무쌍한 윗분, 한술 더 떴다. 보상비마저 운전사와 총무과에게 각각 200만원씩 나눠서 내라고 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일부 직원들이 발끈하자, 결국 기관장과 본인이 반씩 나눠 360만원을 내고 기사와 총무과 담당이 20만원씩을 채워넣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총무과가 책임을 진 이유는 만 25살에서 몇달 모자라는 기사를 고용해 보험혜택을 못 받게 했기 때문이다.

1급 이상이거나 그에 준하는 고위공직자에게 나오는 관용차는 때론 사모님 쇼핑용으로 때론 공직자의 건강관리용으로도 이용된다. 지난 4월5일 한 대도시 인근 골프장에 렌터카임을 알리는 ‘허’자 번호판의 검은색 체어맨 차량이 목격됐다. 지방검찰청 지검장의 관용차였다. 이날은 일반 휴일이 아니라 전 국민에게 나무 심기를 독려하기 위한 식목일이었다. 공직자가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도 공무라면 할말이 없지만, 취재하는 지역 방송사 기자에게 그가 내뱉은 일갈은 이랬다. “아, 나무는 어제 심었어!”


사진/ 부성이냐 특혜냐. 이명박 서울시장은 시의 공식행사 도중 아들과 사위를 히딩크와 사진 찍게 한 일로 시민들의 지탄을 받았다. (오마이뉴스)


관용차와 함께 관사는 공직자에게 공무를 더 잘하라는 취지로 국민이 빌려준 국민의 재산이다. 그런데 이대엽 경기 성남시장은 당선되자마자 계약기간이 1년 넘게 남아 있는 55평짜리 관사가 낡고 좁다며 새 관사를 구하도록 지시했다. 직원들은 개발제한구역에 있는 시가 12억원의 200평짜리 저택을 알아보고 다녔다. 이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자 시장 쪽 해명은 “밤에 오는 민원인을 잘 만나기 위해서”였다. 밤에 조용하고 넓은 집에서 만나야 할 민원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시청 직원들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얌체형>
업무추진비는 용돈이더라

부당이득을 챙기고도 지탄받을 걸 알고 교묘하게 감추거나 알건 모르건 몸에 밴 습관대로 밀어붙여 여러 사람 힘들게 하는 경우이다. 이들은 보통사람들보다 머리가 빨리 돌아가거나 조금 더디게 돌아간다.

한 광역시 국장이 최근 술집에서 200만원을 긋고 와서 업무추진비로 갚으라고 부하직원에게 시켰다. 이 국장은 평소에도 업무추진비를 제 용돈처럼 쓰는데 이번에는 조금 튄 셈이다. 부서별로 몇십만원씩 배당되는 업무추진비나 직책에 따라 개인에게 나오는 업무추진비와는 달리 시책·국책 업무추진비는 ‘천의 얼굴을 가진 눈먼 돈’으로 불린다. 원래 용도는 정책결정을 위한 간담회·세미나에 들어가는 소모성 경비(장소 대여료, 참석자 밥값·교통비 등)로 카드 결제가 원칙이지만, 부서 책임자가 개인 접대용으로 전횡하는 일이 많은 탓이다. 앞서 국장에게 명령을 받은 부하직원은 한꺼번에 갚으면 티가 나는 까닭에 사흘에 한번씩 그 술집에 가서 10만∼20만원씩 카드 결제를 해야 했다. 대신 지급목적은 시책간담회 준비모임으로 적어냈다.

7월15일 전주 월드컵 경기장. K리그 일정이 없는 날인데도 경기가 열렸다. 전북지역 판사와 검사들이 친선축구대회를 한 것이다. 판·검사들은 친선이라는 공무를 위해 휴일인 아닌 평일을 택했다. 그런데 경기장 사용료를 안 냈다. 월드컵 경기장 사용에 대한 조례를 준비하는 전주시는 잠정적으로 체육행사 50만원, 일반행사 100만원을 기준으로 정해 시민들의 의견을 구하고 있는 참이다. 규정이 정해지지 않아 시 공무원이 돈을 달라고 하지 않은 것이었는지, 판·검사들이 공무에 바빠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은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2년 전 서울지방법원 소속 직원들이 공무원 연수관을 빌려 연예인 축구단과 친선경기를 했을 때 사용료는 물론 청소비, 주말 추가요금까지 고스란히 낸 것에 비춰보면 법원 사람들이 경기장 사용료를 안 내도 되는 것으로 모두 알고 있는 건 아닌 듯하다.

관용차는 이 경우에도 빠지지 않는다. 몇해 전 출퇴근용 전용차가 나오는 부장판사들이 차량을 오토차량으로 바꿔달라는 요구를 한 일이 있다. 필요할 때 기사 없이 쓰려는 게 목적이었다. 깐깐한 대법원 행정처장(현 대법원장)이 거절해 수포로 돌아갔지만, 관용차를 휴일용으로 쓰려 한 이유는 휴일에도 법원 밖에서 공무를 보기 위해서였을까?

<뻔뻔형>
도배까지 새로 해주라!

부당이득인지 알면서도 취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거나 심지어 하급자들을 당당하게 부려먹는 유형이다. 조폭 신드롬이 끝났는데도 “배째라”를 원칙으로 삼는 전통형·복고풍 공직자들이 이에 속한다.

지방의 한 대도시에서 한정식집을 하는 ㅇ씨. 가까운 기관의 종사자들이 주고객이고, 인사철이면 일손은 바쁘지만 매상은 쑥쑥 오른다. 그런 ㅇ씨가 최근 남모르는 고민을 안고 있다. 올 봄 단골이던 한 부서의 담당자가 찾아와 “회식을 한 것으로 하고 카드 결제를 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어왔다. 그리고 “수수료·세금·사례비를 뺀 나머지를 현금으로 내달라”고 요청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단골을 잃을까봐 응해줬더니 그 뒤로도 두어 차례 그런 요구를 했다. 들리는 소문으로 그 돈은 새로 바뀐 부서 상급자에게 상납됐고, 그의 아들 보험비용으로 지불돼 가족 모두가 고마워했다고 한다.

한 공립대 전 총장은 임기를 마친 뒤 개인 사무실을 냈다. 그리고 학교 직원에게 자기가 쓰던 비품을 옮겨달라고 요구했다. 전임자에 대한 예우차원이나 경로자에 대한 우대차원에서 충분히 도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전 총장이 이런 요구를 해왔다. “책·걸상, 책장도 새로 오는 분이 쓰기에는 낡았는데 그냥 주면 안 되느냐.” 고민 끝에 실무자는 비품 관리 책임자와 의논을 했다. 전 총장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민망한 꼴을 당하면 서로 좋을 게 없으니 ‘도의적 차원’에서 그렇게 해주자는 쪽으로 결정이 났다. 그 뒤부터 요구내용이 점입가경이었다. 스탠드, 컴퓨터, 정수기, 하다못해 재떨이까지. 가능한 것은 최대한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다음날 “옮겨드리겠다”고 알리자 이번에는 새로운 요구사항이 떨어졌다. “내가 사무실을 급하게 구하느라고 돈도 좀 무리해서 썼는데, 벽지가 더러워. 도배도 새로 해주면 안 되겠나?”

<파렴치형>
공주님 비서만들기

이 유형의 공직자들은 누가 봐도 잘못한 일이고 알려지면 크게 망신당하거나 법에 걸릴 일을 맘대로 저지른다. 단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는 사회적 체면도 자존심도 내팽개친다는 저돌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사진/ 허경만 전 전남도지사가 관급여권을 발급받을 목적으로 딸을 6급 비서로 채용하고도 변명을 일삼자 지난 5월 전남지역 공무원들이 1인 시위를 벌이며 항의했다.


허경만 전 전남도지사는 지난해 말 자신의 셋째딸을 6급 별정직 정무비서에 앉혔다. 그러나 딸은 도청에 한번도 출근하지 않고 관용여권을 발부받아 손쉽게 비자문제를 해결했다. 도청 내부에서 논란이 일자 허 전 도지사는 한달 만에 딸의 직위를 해제했다. 그러나 이미 딸은 미국으로 떠났으니 목적한 바는 다 이룬 셈이었다. 이 사실이 도청 밖으로 알려지자 지난 4월 지역의 각 언론사에 해명문건을 돌렸다. “비서실에 결원이 있어 공무원 채용관련 규정에 따라 딸을 임용한 것이다”, “관용여권은 자매결연을 한 미국 오리건주와 교류 확대를 위한 출장 때문에 발급받은 것이다”, “딸의 관용여권을 외교통상부에 직권 무효조치하도록 요구하겠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공채도 아닌 특채로 딸을 채용하고 수습기간을 거치지도 않은 딸에게 외국 출장을 보내려 했다는 설명은 진위 여부를 떠나 앞뒤가 안 맞는다. 해명서 어디에도 공직을 이용해 가족의 사적 이득을 취한 사실에 대한 시인이나 반성의 뜻은 없었다. 다만 허 전 도지사는 “딸에게 급여는 지불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안상수 인천시장은 지난해 5월 거동이 힘든 부인과 공동명의로 체어맨 승용차를 구입해, 1급 장애인 차량으로 등록했다. 각종 세금이 면제됐고 차량 이용에도 이득을 봤다. 그러나 이 차량은 부인의 거동을 돕는 데 쓰인 게 아니라 안 시장의 선거운동에 이용됐다. 게다가 일년 사이 과속과 갓길주행을 일삼아 모두 67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됐다.

<나홀로 공무형>
소방헬기 타고 발등의 불 끈다?

본인은 선의를 주장하나 행위 그 자체로 공공선에 도리어 피해를 주는 경우다. 부지런하고 국가관도 뚜렷하지만 국민에게 자신의 행위를 설득할 수 없어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사진/ 판공비로 불리던 업무추진비는 기관장이나 부서 책임자의 용돈처럼 쓰여 지탄받았다. 최근에는 관리기준이 엄격해졌으나 여전히 '눈먼 돈'으로 불린다. 99년 참여연대의 시위장면.


이기준 전 서울대 총장의 판공비가 문제됐을 때 정부부처 공직자인 부인 장아무개씨가 서울대 법인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한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장씨는 당시 <한겨레21>과의 전화통화에서 “나에게도 법인카드를 주기에 남편을 도우는 일에 썼다”고 해명했다. 구체적으로는 “바쁜 남편을 대신해 서울대 여교수들을 만나고 교수 부인들도 만나고 여학생들도 만나 얘기를 듣고 나중에 남편에게 전해줬다. 그들을 만날 때는 집 근처 커피숍 등을 이용했는데 주로 찻값·밥값 등에 썼다”고 밝혔다. 당시 총장 비서실 쪽은 “총장 부인에게 법인카드가 나가는 규정은 없지만 총장실에 몇개 있는 법인카드 가운데 하나를 쓴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유종근 전 전북도지사는 재임 기간 특히 ‘억울한’ 일을 많이 겪었다. 가장 억울한 일은 외환위기 직후 대통령의 경제고문 직함을 달고 전주에서 서울까지 소방용 헬기로 수차례 ‘출동’한 일이 지탄받은 것이다. 기차나 자동차로도 3시간 남짓이면 오가는 거리를 굳이 소방용 헬기로 오가야 했는지, 대통령에게 고문역할을 하는 일이 불끄는 일보다 더 위급한지 의견이 분분했으나, 여론은 유 전 도지사가 ‘오버’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천용택 전 국정원장 역시 집안잔치가 열리는 고향 진도에 헬기를 타고 다녀와 공무와 사무의 경계를 놓고 한바탕 소란이 일기도 했다.



때만 되면 논란이 일지만 바뀌지 않는 철옹성은 국회의원들의 외유방식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7월16일 ‘15대 국회의원 외교활동 보고서 분석결과’를 발표했다. 4년 동안 의원들의 해외활동을 위해 지급된 예산은 39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대체 왜 갔는지 모르는 친선활동이 주를 이뤘다. 예를 들면 97년 한국-모로코·세네갈 친선을 위해 네명의 의원이 떠난 일을 보자. 단 두 나라를 방문하기 위해 경유한 나라는 6개국으로 총 18일이 걸렸다. 그러나 보고서에 기재된 공식외교활동은 5건으로 각각 30분가량의 의례적인 접견이었다. 같은 해 통상산업위 시찰단은 13일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를 방문했다. 미수금문제 해결을 지원하고 진출업체 현황을 파악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전혀 경유할 까닭이 없는 케냐와 영국을 거쳤고, 4일 동안 모두 8시간의 외교활동만 보고했을 뿐 나머지 9일간의 일정은 아예 적어내지도 않았다. 경실련은 16대 국회의원들의 외유현황을 요청했으나 국회 사무처는 “공개되면 국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며 거절했다. 경실련이 행정소송을 내 이겼으나 국회 사무처는 별다른 설명없이 응하지 않고 있다.

저지르는 것도 문제, 봐주는 것도 문제

“저지르는 것도 문제지만 봐주는 것은 더 문제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 김석 부장의 말이다. 공무원노조(www.gongmuwon.or.kr)의 공개·비공개 고발센터에는 수많은 하소연들이 쏟아져들어온다. 한 광역시의 공무원(7급)은 “‘당신 실장이야? 나 주사야!’라고 당당히 맞서고 싶지만 조직사회 전체에서 왕따당할 일이 걱정된다”면서 공직사회 자체 정화를 위한 방침들을 조목조목 짚기도 했다. 공무원노조는 공직자의 불법비리와 함께 함께 편법사례를 접수해 공개할 예정이다.

공무원노조 서울시지부 하재호 지부장은 “위계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묵과돼온 행태들은 거대한 부정부패와 불법비리를 기르는 토양이다”라고 말했다. 업무추진비를 뒤로 챙기는 심리가 뇌물수수나 공금횡령으로 발전할 수 있고, 관용차를 자가용처럼 타고다니는 습관은 더 큰 유혹에 자리를 내주기 쉽다는 것이다. 공직자의 사적 이해관계가 인사에 반영되고, 업무를 흔들 때 공직사회 내부는 좀먹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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