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07월24일 제419호 

김남일, 날 것 그대로!

김남일 신드롬의 키워드를 찾아서… 그의 전복적 매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진/ (스포츠투데이)


승리의 기쁨과 응원의 열기로 메워졌던 거리에는 분주한 일상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때의 흥분과 열기는 월드컵 4강진출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하나의 사회현상을 만들어냈다. 월드컵 대표팀 미드필더 김남일 신드롬이다.

이미 인터넷상에서 1천개를 돌파한 그의 팬 사이트는 지금도 하루 4,5개씩 꾸준히 추가되고 있고,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의 ‘베스트 MF 김남일’의 가입자 수는 47만명을 넘어섰다. 인터넷에는 김남일을 주인공으로 한 ‘팬픽’(좋아하는 스타를 주인공으로 팬들이 쓰는 소설)까지 등장해 날마다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지난 7월14일 안철수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스, 나모인터렉티브가 벤처업계 직원들을 상대로 올 여름 휴가계획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휴가를 함께 가고 싶은 유명인 1위에 김남일이 올랐다.

안정적인 재활치료에 지장을 받을 만큼 언론사의 취재경쟁과 팬들의 추적이 심해지자 그는 지난 7월8일 합동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언론접촉을 거부하며 한동안 모습을 감췄다. 구단 쪽은 7월 말이나 8월 초쯤 김남일이 경기장에 복귀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스포츠 신문은 연일 김남일 관련기사를 경쟁적으로 내보내고 있으며, 팬들은 김남일 없는 경기장으로 몰려와 그의 이름을 목청껏 외친다.


사진/ 김남일과 팬들의 시선이 스파크를 일으킨 지점은 기존의 팬덤현상과 일정하게 거리를 두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스포츠투데이)


최근 일고 있는 김남일 신드롬은 또래집단에서 전염성이 매우 강한 팬덤현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김남일과 팬들의 시선이 스파크를 일으킨 지점은 기존의 팬덤현상과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최근 김남일을 둘러싸고 벌어진 에피소드를 통해 김남일 신드롬의 키워드를 찾아본다.

"남일아 부킹 들어왔다”
“남일아 불 꺼라”
“남일아 셋만 낳자”

K리그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응원방법은 혼자 들고 다니기 편할 만큼 작은 종이에 적은 소규모 피켓팅이다. 10대 소녀들이 경기장에서 ‘각자’ 펼치는 피켓에는 이처럼 노골적인 구호들이 적혀 있다. 방송국 객석에 자주 등장하는 “오빠, 사랑해요.” 정도의 ‘약한’구호는 명함을 내밀기 힘들 정도다.

섹스어필은 스타에 대한 열광에 녹아 있는 중요한 코드다. 조성모의 여성적인 섬세함을 좋아하고, 김재원의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남성성’은 오빠 부대를 모이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이 된다. 그러나 피켓에 적힌 구호에서 드러나듯 김남일을 향한 팬들의 환호에는 다른 스타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달리 육체적 관능에 대한 노골적인 욕망이 담겨 있다. 이것은 물론 솔직하고 장난기 가득한 김남일 ‘따라하기’의 짓궂은 표현이기도 하다.

김남일이 드러내는 육체성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터프가이’이미지를 가진 대다수 연예인들이 갖추지 못한 것이 있다. “김남일에게는 완성된 상품이 아니라 각본 없이 90분을 그라운드에서 뛰어야 하는 운동선수이므로 원초적이고 순수한 육감적 매력이 있다”는 문화평론가 정윤수씨의 지적처럼 김남일은 조작되거나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라운드를 누빌 때 드러나는 근육질의 몸이나 상대방과 몸싸움을 할 때의 거침없는 행동을 보며 팬들은 매니지먼트사에 의해 만들어지고 관리되는 ‘터프가이’들과 달리 김남일의 ‘맨 얼굴’, ‘벗은 육체’를 보는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상대선수를 향해 내뱉는 쌍욕조차 친근함을 주는 매력으로 작용한다. 팬들의 반응 역시 직접적이고 대담해질 수 있는 것이다.

선후배 간의 거리를 없애기 위해 존칭을 쓰지 말라는 히딩크 감독의 지시가 떨어지자 선수들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때 김남일이 정적을 깼다. “명보, 밥 먹자.”

셔츠를 흠뻑 적시는 땀과 상대방을 제압하는 거침없는 몸놀림 등 꾸밈없는 육체적 매력은 김남일만의 것이 아니다. 실은 그라운드에서 뛴 모든 선수들이 보여준 모습이다. 그러나 왜 김남일일까. 믿거나 말거나의 ‘카더라’ 통신이기는 하지만 김남일이라면 능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런 행동들은 오로지 김남일만의 것이다. 김남일은 1990년대 말부터 남성 아이돌 스타의 주된 흐름이 된 ‘바른생활 꽃미남 소년’ 계보와는 한참 떨어져 있다. god는 어린 아기를 키우며 팬들의 사랑을 쌓아갔고, 유승준은 담배 피우는 청소년을 선도하면서 ‘아름다운 청년’의 이미지를 구축해갔다. 월드컵 대표선수 가운데 대규모 여성팬 부대를 거느린 송종국 역시 고운 피부에 선량하고 겸손한 태도의 바른생활 소년과에 속한다.

굳이 캐릭터로 범주화한다면 김남일은 마음도 순수한 꽃미남 주인공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조역인 ‘불량소년’에 가깝다. 고등학교 시절, 선배들의 지나친 체벌에 축구부를 뛰쳐나가 가출까지 한 그의 전력이 말해주듯이 그는 착하고 말 잘 듣는 후배나 홍명보처럼 우직하고 듬직한 선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권위나 위계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이는 그의 태도는 ‘반항한다’기보다는 ‘개긴다’는 속어가 어울린다. 결연히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김남일은 ‘고독한 반항아’가 아니라 ‘쿨한 양아치’ 계보에 속한다.

문화평론가 이동연씨는 10대들에게서 주로 드러나는 김남일의 “의리 있어 보이는 양아치” 이미지에 대한 열광이 하위문화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잘생기고 똑똑하고 상냥한 스타는 좋아할 수는 있지만 좀처럼 동일시되지는 않는 데 비해 평소에 자신들이 금지당한 것을 툭툭 내뱉고 저지르는 김남일에게는 쉽게 동일시되는 즐거움을 느낀다”라는 것이다.

프랑스와의 마지막 평가전 때 그가 마크한 지단이 부상으로 결장하자 기자들이 “지단 연봉이 얼만데” 하고 걱정스레 물었다. 김남일 왈 “아,제 연봉에서 까라고 하세요.”

“지단이나 핀투, 토티같이 쟁쟁한 선수들 앞에서 실력으로나 눈빛으로나 주눅들지 않는 모습이 좋았어요.” 직장인 김애경(24)씨가 김남일을 좋아하는 이유다. 축구를 좋아해서 예선전부터 김남일을 눈여겨본 그가 김씨를 뛰어난 축구선수에서 ‘오빠’로 모시게 된 데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미국전에서 한 선수와 시비가 붙자 몰려온 8명의 다른 선수들과 그 큰눈을 부라리며 ‘맞장뜬’ 모습을 본 순간이었다. 김씨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미국전 에피소드는 김남일이라는 존재가 일개 선수에서 ‘국가적 자존심’의 상징이 된 사건이었다.

포르투갈전과 이탈리아전, 스페인전으로 이어진 판정시비는 한동안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가 됐다. “판정이 편파적이었다”는 비판에 대한 반박은 “개최국으로 대접받는 수준 이상이 아니었다”, “상대편이 우리보다 잘하는 팀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비하하는 꼴”이라는 내용들이었다. 나보다 ‘우월한’ 상대방에 주눅들어 있다는 불만이었다. 김남일이 ‘터프가이’나 ‘불량소년’ 이미지로 10대 소녀들에게 매력을 끄는 것 이상으로 폭넓은 지지층을 확보하는 것은 세계적인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기죽지 않는 모습 때문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의 지적대로 김남일의 모습은 위계나 서열이 아닌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인된 약체라는 불리한 조건 속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강팀이 자연스럽게 행하는 파울마저도 눈치를 보며 해야 하는 서러움에서 그는 자유롭다. 상명하복과 위계질서가 내면화된 기성세대로서는 노력해도 해낼 수 없는 당당함이 나이를 불문한 지지층을 형성한 셈이다.

미국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한 이을용 선수에게 위로의 말 한 마디하라는 기자의 주문에 대한 김남일의 답변 “위로할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욕 좀 먹어야 돼요.”

웬만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 이런 대답을 하진 못할 것이다.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만약 홍명보나 황선홍이 이런 말을 했으면 대표팀 내 분위기는 썰렁해졌을 것이고 시청자들은 “너무 심한 거 아냐?”라고 반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남일의 이 코멘트는 너무나 ‘김남일다워서’시청자들의 웃음을 한번 터뜨리게 할 뿐이었다. 김남일 자신이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그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김남일은 언론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스스럼이 없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다른 선수들처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거나 “팬들의 성원에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는 전형성이나 상투적인 겸손의 미덕을 보여주지 않는다. 인터뷰에서 나온 질문에 “방송용 멘트로 할까요? 솔직하게 말할까요?” 하고 장난스럽게 물어보거나 좋아하는 여성상을 대답하면서 “내일 (스포츠)신문 1면에 나오겠네”라고 말한다.

팬사이트에는 거의 날마다 김남일 어록이 추가된다. 환영행사가 있던 부평의 모교에서 사인을 해달라고 한 팬이 던진 티셔츠가 얼굴에 맞자 “너, 죽을래요?” 말했다거나 재활치료병원에서 만난 사람이 “김남일 선수 맞죠?” 하고 물으니 “아닌데요, 김넘일인데요”라고 했다는 식의 에피소드들이다. 솔직함과 버무려진 그의 즉흥적인 유머감각은 텔레비전쇼에서 연예인들이 준비해온 개인기와는 다르다. 자신을 대상화하는 시선들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듯한 태도다. 그러나 그는 매우 영리하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의 지적처럼 그가 툭툭 내뱉는 말은 근엄한 사람들에게는 건방지게 보일 수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는 않는다. 의식적인 준비 없이도 자신의 튀는 발언의 수위조절을 할 줄 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가 남기는 말들은 거칠고 가볍지만 준비된 농담이나 진지한 비판보다 오히려 세련되게 느껴진다.

7월2일 월드컵성공 국민대축제에서 다른 선수들에 이어 마이크를 받은 김남일이 자신을 소개했다. “나이트에 가고 싶은 미드필더 김남일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최근 불고 있는 김남일 신드롬에서 늘 지적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그가 겪은 시련과 극복이다. 축구를 그만두고 돈을 벌고자 했을 만큼 어려웠던 가정환경과 나이트 웨이터라는 ‘바닥생활’을 딛고 일어나 세계를 놀라게 한 축구선수가 되었다는 것이 그의 성공을 한편의 드라마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감동적이지만 이런 드라마는 진부하다. 망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대박을 터뜨릴 소재는 결코 아니다. 게다가 설기현도, 이천수도 운동화 한 켤레 사기 힘든 역경을 딛고 일어선 드라마의 주인공이긴 매한가지다.


사진/ 월드컵 미국전에서의 김남일. 한 선수와 시비가 붙자 몰려온 8명의 다른 선수들과 그 큰눈을 부라리며 ‘맞장뜨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김남일은 자신의 ‘성공시대’를 묵직한 감동버전이 아니라 경쾌한 코믹버전으로 바꿔놓아 대박을 터뜨렸다. 감동버전이라면 그는 가출한 뒤 했던 나이트클럽 웨이터 생활을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나이트클럽 근처에도 어슬렁거리지 않는 결론이라야겠지만, 그는 경기 끝나고 가장 가고 싶은 곳이 “나이트”라고 웃으며 고백했다. 공중파 3사의 전파를 통해 방송되는 국민대축제에서, 대통령을 뒤에 세워놓고 “좋은 하루 되십시오”라고 버젓이 테이블 앞 웨이터류의 멘트까지 날린다. 이런 김남일 앞에서 그의 과거를 동정하는 것은 바보짓이 된다.

<나는 미소년이 좋다>의 지은이 남승희씨는 “과거의 불쾌한 일들에 대해 김남일이나 가족이 보여주는 태도는 통쾌한 느낌을 준다”고 말한다. 흠결이 될 수도 있는 과거전력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을 넘어서 스스럼없이 농담거리로 삼을 수 있는 ‘쿨함’이 김남일 드라마가 가진 전복적 힘이다.

한국의 축구가 월드컵 4강신화를 만들어내지 않았더라면, 김남일이 빼어난 수비수가 아니었더라면, 또한 그에게 준수한 외모가 없었더라면 김남일에 대한 환호성은 지금까지 전국에 메아리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런 전제에 여느 인기인이 보여주지 못한 김남일의 개성이 화학작용을 해 환호성을 신드롬으로 바꿔놓았다.

의학용어인 신드롬은 어떤 공통성이 있는 일련의 병적 징후를 총괄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두산대백과사전). 김남일 신드롬은 월드컵 첫골 기록시간을 깬 한국-터키전 첫골만큼이나 우발적이고 돌출적으로 보이지만, 브라운관을 통해 쏟아져나오는 스타들로는 메우지 못한 대중의 갈증이 빚은 작품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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