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07월10일 제417호 

북은 남쪽과 마주앉으라

미국만 설득하면 NLL 해결된다는 건 커다란 오판… ‘꽃게’해법도 함께 찾아야


사진/ 분쟁의 불씨, 꽃게. 남북 어민들이 사생결단으로 NLL을 넘지 않아도 될 만큼 경제적 지원방안을 찾아야 한다. (김종수 기자)


“기어이 터질 만한 일이 터져버렸다.”
그의 첫 마디는 다소 놀라웠다. 서해교전의 유혈충돌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전반의 군사적 긴장이 상당히 완화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불안정한 평화였다. 그래서 정부는 군사 당국자 회담을 열기 위해서 무진 애를 써온 것이었다. 북한 군부는 지금도 미국이 자신들을 선제 공격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의 협상에만 매달려온 것이다.”

그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서해교전 사태와 같은 군사적 충돌을 막으려면 북-미간에 평화협정을 맺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남쪽 정부도 어떻게든 북-미간의 대화가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라온 것이다. 문제는 미국으로부터 안심할 만한 체제안정 보장을 받지 않는 한 북한의 군사적 모험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3년 전 연평해전 때와 너무나 비슷해


사진/ 1999년 6월 연평해전에서 승리했다고 찬사를 받았던 남쪽 해군이 이번에는 '기습공격을 당했다'고 몰매를 맞고 있다. (김종수 기자)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가 보는 서해교전의 본질이고 해법이다. 되풀이하기도 이제 지겹지만 사태의 핵심은 또 북-미 관계라는 지적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놓고 북한의 관영 언론매체들이 대뜸 미국 책임론을 들고 나온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들은 6·29 서해 도발사건은 ‘미군’ 관할 아래 있는 남쪽 해군이 북쪽 영해를 침범했으므로 ‘미국의 도발’이라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북한은 그간 민족끼리의 화해·교류협력 문제는 남쪽과, 전쟁이나 평화문제는 미국과 풀어야 한다는 이른바 ‘북한식 정·경분리 원칙’을 견지해왔다. 결국 한반도의 생사여탈권은 여전히 미국이 쥐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한반도가 안고 있는 화약고는 북-미 대치에서 언제든 터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번 서해사건은 앞으로 예상되는 북-미간 첨예한 군사적 대치상태로 말미암아 빚어질 수 있는 사고에 견주면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반도는 말 그대로 전쟁의 완전 종식이 아닌 ‘정전상태’에 있음을 다시 한번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북-미 관계 측면에서 보면, 이번 서해교전은 3년 전 연평해전 때와 너무나 비슷하다. 99년 5월 말 미 대북정책조정관 월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평양을 방문해 한·미·일 세 나라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제시했다. 즉 북한이 핵 및 미사일 개발과 수출을 포기하면, 대북경제 제재조처를 해제하고, 경제적 지원과 체제안정을 보장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유감스럽게도 이 제안에 대해 연평해전으로 간접 답변을 보냈다. 이번 6·29 서해교전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뒤 처음으로 북한에 고위급특사를 보내겠다는 통보를 한 뒤 평양 당국의 최종 응답을 기다리던 순간에 발생했다. 미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대량살상무기 양보를 요구했다. 클린턴 행정부 때는 핵·미사일을 포기하면 그 대가로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한다고 약속했으나, 부시 행정부는 아무것도 내놓지 않은 게 다른 점이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북한의 반응이었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서해상에서의 총격전으로 답변을 대신한 것이다.

99년 연평해전 당시 북한 당국이 보낸 메시지는 분명했다. “한반도 긴장상황의 본질은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전체제의 불안정성과 불합리성에 있다.” 연평해전을 통해 한반도는 여전히 일촉즉발의 분쟁지역임을 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이런 의도를 품고 북한 지도부가 이번에 군사충돌을 유도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북한의 언론매체를 통해 흘러나오는 주장들을 보면, 99년 6월 연평해전 때 보인 속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조선중앙통신>은 7월6일치 논평에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려는 일념으로 미국 쪽 관할하에 있는 연평도와 백령도 등 5개 섬들이 우리 영해 안에 있는 현실을 고려해… 협상의 방법으로 (문제들을)해결해보려고 오래전부터 노력해왔다”고 밝혔다.

미군 사령관이 일방적으로 그은 NLL

서해교전 해결의 당사자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와 미군 당국이고, 따라서 재발방지도 북-미간의 군사당국자 회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친 셈이다.북한 쪽은 이번 사건 해결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북방한계선(NLL) 불법성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단계라는 지적이다. 안보 전문가들은 NLL을 둘러싼 북한의 주장을 무조건 묵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유혈충돌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진지하게 고민해볼 문제라는 것이다. NLL의 본질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여기서 잠깐 1953년 7월 정전회담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미군(유엔군)과 조선인민군은 육상의 군사분계선을 획정하는 데는 합의했으나, 해상의 군사분계선은 견해가 팽팽히 엇갈려 결국 정전협정문에는 넣지를 못했다. “경기도와 황해도 경계선상에서 북서쪽에 있는 모든 섬들은 북이 관할한다. 단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 다섯섬은 예외로 한다.”(정전협정 2조 13-B항) 따라서 정전협정에 포함된 부속지도 22개 가운데 하나인 ‘지도-3’에는 서해 다섯섬들에 대한 관할권이 표시됐지만, 해상분계선은 그어지지 않았다.

당시 미군 사령관(유엔군 사령관도 겸임) 마크 클라크는 정전협정 한달 뒤인 8월30일 미군이 서해상에서 초계활동을 벌이기 위한 11개의 좌표를 이은 선을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으로 정하고 자기 이름으로 이를 선포했다. 북한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애초부터 NLL의 불법성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북한은 그간 NLL을 실질적으로 인정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들은 미군사령관이 일방적으로 NLL을 그은 지 1년 반 만인 1955년 3월5일, 12해리 영해를 선포한 이후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지금의 NLL은 북한 해안에서 불과 3해리 앞쪽에 그으져 있다. 국제법 전문가들도 NLL이 법적 근거가 없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국제법에서도 영해란 주권국가가 3마일 또는 12마일 범위를 설정한 수역인데, 만약 주변국가와 상충되는 수역이 생기면 서로 협의해서 조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북, 미군 영향력 과대평가


사진/ 서해교전이 있었음에도 미 행정부의 특사가 계획대로 7월10일께 방북하기를 희망했던 남쪽 정부는 7월2일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의 '특사 방북 재검토'발언으로 당혹해했다. (AP연합)


미국이나 남쪽 당국도 협의 자체를 마다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북쪽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커보이지 않는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처럼 남북한 무장세력이 팽팽히 대치한 상황에서 북쪽의 요구대로 NLL을 다시 긋는 것은 군사전략측면에서 서해 5도는 물론이고 서울을 거저 내주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 상황에서 이 문제만 따로 논의하는 것은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이는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도저도 아닌 중간 타협선을 그을 수 있는가. 전문가들은 이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는 애초 북쪽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북한도 인정하는 서해 5도가 남쪽의 영해에 포함돼 있고, 북쪽 해안 가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NLL이 분명 법적 근거는 없으나 북한 당국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그 대신에 북한의 NLL 수용에 대한 대가로 경제적 보상을 고려해봄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분쟁의 불씨는 주로 ‘꽃게’가 제공하고 있는 만큼 우선은 여기에 초점을 맞춰 해법을 끌어내야 한다는 얘기다. 북한 어민이나 군인들이 사생결단으로 NLL을 넘지 않아도 될 만큼 경제적 지원방안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북한이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NLL을 새로 긋자고 주장하지 말고 남쪽 군사당국과 마주 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양쪽 어민들의 조업통제, 공동어로, 비무장지대(DMZ)와 같은 완충구역 설정, 우발적인 교전방지를 위한 분쟁조정기구와 군 지도부 간의 핫라인 설치 등 군사적 신뢰구축 조처를 논의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주장의 핵심이다.

북한은 한반도 군사·안보문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NLL만 해도 그렇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만 설득하면 NLL을 새로 그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오판이라고 지적한다.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 민간단체 대표는 “북한은 군사문제만 터지면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는 진부한 주장만 되풀이하는데 솔직히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한다. 한국과 미국이 긴밀히 공조하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는 미국 맘대로 군사적 조처를 취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당국이 NLL 재설정 문제를 굳이 협의하기를 원한다면 미국보다는 한국 정부나 여론을 설득하는 게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주한 미 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유엔사도 해상경계선 문제는 남북한 사이에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상태다. 북한은 NLL은 정전협정과 관련돼 있으므로 당사자인 미군 쪽과 협의해야 한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런 태도를 두고 북한 당국이 겉주장과는 달리 NLL을 이용해 다른 실익을 챙기려 한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실제 NLL 해결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서해상에서 긴장을 임의로 조성해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비판한다.

북한이 챙긴 실익 거의 없었다

북한이 이런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남쪽 당국과 자리를 마주해야 한다. 이번 서해사건에서도 북한이 챙긴 실익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다행히 북한 당국도 사태를 서둘러 수습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도 성명과 정부 비망록 등을 통해 “남북관계를 대결과 전쟁이 아닌 대화와 협력의 관계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이례적으로 강조했다. 오히려 지금이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적기인 셈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 주민이 철천지 원수처럼 미워하고 있다는 미국과 남쪽 수구·보수세력의 편견과 선입관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통큰 정치’를 보일 때다. 서해가 더 이상 피로 물들지 않는 평화의 바다로 거듭 태어날 수 있느냐 여부는 상당 부분 그의 손에 달려 있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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