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07월04일 제416호 

서울의 심장을 광장으로!

세종로와 시청을 일상적 축제의 공간으로 만들어 한달에 한번씩 도로를 뒤덮고 놀자


사진/ (박승화 기자)·컴퓨터그래픽/ (장광석)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너비가 수십m나 되는 광장이 정부종합청사 앞부터 광화문 네거리까지 펼쳐진다. 길 건너 미대사관 앞길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계단을 타고 이순신 장군 동상에 올라가 어루만진다. 광장 한편에는 운치 있는 거리카페들이 자리잡는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깔깔거리고,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차를 마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빨리 일 끝내고 나도 저기서 차 한잔 해야지’라고.

우리는 숨막히게 살아왔다

걷는 사람들이 있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광장 여기저기서 펼치는 이런저런 공연을 즐긴다. 세종문화회관에 오페라를 보러 들어가던 사람들이 잠깐 거리공연을 기웃거린다. 인근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나오던 사람들도 바닥에 주저앉아 박수를 치고 어깨춤을 춘다. 이런 일이 날마다 이어진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쯤은 찻길까지도 광장으로 변한다. 광화문 앞부터 시청 앞 광장까지 온통 사람들로 메워져 거대한 축제가 열린다.

붉은 축제는 끝났다. 작은 축구공에서 출발한 스포츠축제가 거대한 생활축제로 막을 내렸다. 연 인원 2193만명의 운집은 전례없는 일이었다. 앞으로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다. 되돌아갈 일상은 한달 전과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나 통제불능의 가공할 에너지는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다. 축제의 기억은 오랫동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치미 뚝 떼고 일상으로 돌아가기에는 우리의 상상력이 너무 커버렸다.

언론에서는 거리의 태극기 물결을 보고 대한민국의 저력이라 칭송했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 들린 태극기는 기미년 3월1일의 태극기가 아니었다. 박정희 시대 태극기는 더욱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오랫동안 한번도 거리낌없이 놀아보지 못했고, 한국축구팀의 승승장구에서 마침내 그 기갈증이 폭발했을 뿐이다. 거리의 함성은 국민통합의 메시지가 아니라 놀 공간과 놀거리를 요구하는 외침이었다.


사진/ 특별한 일이 일상처럼 벌어질 때 축제는 살아난다. 인사동 거리축제. (한겨레 이종찬 기자)


축제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축제는 비일상적이다. 축제의 비일상성은 일상성과 서로 짝을 이루는 음양적인 관계다.” 강신표 인제대 교수(문화인류학)는 “사회는 일상성과 비일상성이 일상적으로 교차하면서 굴러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동안 일상성이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억압된 구조였다”고 지적했다. 축제가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숨막히도록 억압받으며 살아왔다는 얘기다. 억압받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

애초 축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강 교수는 5일장이나 단오·백중 따위가 전형적인 한국식 축제였다고 설명한다. “장날 장터는 평민들의 지배공간이었다. 그날만큼 장터는 양반이 지배할 수 없었다. 장날이면 양반들은 장터로 질러갈 수 있는 길을 일부러 다른 길로 멀리 돌아가야 했다. 백중날 상전은 양반이 아니라 머슴이었다. 단오날 성황당에서 열린 엄격한 의례는 양반이 지배했지만, 군데군데 벌어지는 평민들의 굿판에서 하이라이트로 치달았다.” 그러나 축제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축제를 없앤 새마을운동

축제를 없앤 주범으로 강 교수는 새마을운동을 지목했다. 새마을운동은 농촌을 농번기와 농한기의 일상적인 교차를 없애고, 1년 365일 농번기만 지배하는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새마을운동은 한국식 근대주의의 대표 상징물이다. 군부권력은 조국근대화의 이름으로 비일상성과 축제를 비난하고 억압했다. 박정희 정권 때의 박스컵 축구대회나 전두환 정권 때의 ‘국풍81’ 행사는 축제가 사라진 자리에 대체투입한 관제 사이비축제였다. 하지만 그건 비일상성의 교차가 아닌 일상성의 강화였다.

가장 먼저 필요한 건 공간이다.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문화연대)는 지난 6월25일 ‘세종로를 문화광장으로’라는 이름의 성명을 내어 “시민의 자발적 에너지는 월드컵을 넘어 광장과 축제에 대한 우리의 문화적 열정에 다름 아니다. 세종로 일대를 서울의 대표적 문화거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걷고싶은 도시만들기 시민연대(도시연대)도 “교통섬과 차선만 있는 시청 앞을 시민들이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교류와 만남의 장소, 상징성이 있는 문화공간, 보행자 광장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사진/ 지난 5월 프랑스와의 축구평가전 때 거리응원 모습. 거리의 함성은 놀 공간과 놀거리를요구하는 외침이었다. (김종수 기자)


왜 광장일까. “사람들은 좋은 일이 있으면 집에 처박혀 있지 않고 밖으로 튀어나온다. 다른 사람에게 그걸 확인받고 싶어 사람들이 몰리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정기용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객원교수(건축학)의 해석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세종로이고 광화문일까. 정 교수는 “사람들이 영등포나 가리봉동이 아니라 시청 앞과 세종로로 몰리는 것은 기쁠 때 중심공간을 점유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상징광장을 세종로와 시청 앞에 꾸려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세종로와 시청 앞은 오래도록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기쁨을 나누기 위한 목적으로 편안하게 이곳을 점유할 수 없었고,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들만이 공권력과 거센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며 겨우 한순간 점유할 수 있었을 뿐이다. 이곳을 일상적으로 점유한 것은 자동차였으며, 자동차는 사람들의 비일상적 점유를 거의 허락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세종로나 시청 앞 교통광장에 들어서는 건 질주하는 자동차에 목숨을 내맡기는 일이다.

세종로와 시청 앞은 통치의 공간이기도 하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는 “청와대를 시작으로 경복궁,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미대사관, 동아·조선일보, 시청, 재벌기업 본관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세종로와 태평로 일대는 거대한 통치의 상징 거리”라고 규정했다. 홍 교수는 “외국의 유명한 광장에 서 있는 동상들처럼 우리 아이들이 이순신 장군 동상에 올라가 맘놓고 놀 수 있게 해야 한다. 세종로를 문화광장으로 바꾸는 것은 통치의 공간을 놀이와 축제의 공간으로 바꾸는 걸 뜻한다”고 강조했다.

그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사진/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울 것인가. 시청 앞과 세종로 쪽의 주인이 사람(왼쪽)과 차로 바뀐 모습. (박승화 기자)


문화연대는 지난해 말 ‘문화도시-서울을 위한 문화공간 기획에 관한 연구’를 발표해, 세종로 일대를 문화지구로 조성하는 구상을 제안했다(30쪽 기사 참조). 이 구상에는 세종로의 도로 너비를 줄여 양쪽의 여유공간을 광장화하고 주변 건물을 문화공간화하는 구상이 담겨 있다. 이상헌 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느 나라에나 대표적인 도시에는 중심적인 문화의 거리가 있는데 서울에는 없다. 국가적 상징성과 역사적 상징성이 있고, 세종문화회관 등이 있는 세종로 일대는 문화지구로서의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평가했다.

시청 앞을 보행자 광장으로 바꾸는 구상은 이미 1996년부터 제안되었다. 도시연대 김은희 사무국장은 “당시 구상은 자동차 중심의 거리를 보행권이 보장된 거리로 바꾸기 위한 사업의 하나로 시청 앞 전체가 아닌 일부의 찻길을 없애고 횡단보도를 설치해 보행자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걷고 싶다’라는 건 ‘걷기 편하다’라는 의미 이상의 것이다. 도시연대는 이제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 문화와 관광이 연계된 상징 가로축을 만드는 구상의 하나로 시청 앞 광장화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잠깐이나마 도시의 중심거리를 점유한 일탈의 체험은 소중하다. 문화연대와 도시연대는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세종로와 시청 앞 광장화 사업이 어느 때보다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도 시청 앞을 보행자 광장으로 조성하는 일에 적극 나섰다. 서울시는 서울시민의날인 오는 10월28일 이전에 시청 앞을 녹지광장으로 꾸미고, 2단계로 광화문과 남대문 일대에 광장이나 시민 접근로를 설치하는 등의 환경개선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그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느냐는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일이다. 한국축구를 응원하는 인파는 손뼉과 함성 하나로 전국의 거리를 열광으로 몰아넣었다. 문화연대 정책위원장인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문학)는 “자동차가 독점한 세종로 거리를 비우고 통치의 거리를 문화공간이 다양하게 자리잡은 광장으로 만들면 차츰 자생적인 행사가 열려 일상적으로 축제가 열리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시민이 평등하게 참여하고 일상적으로 즐거운 일이 벌어지는 공간에서 창의성 있는 온갖 아이디어가 쏟아져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축제는 계속되어야 한다

축제가 지속되기 위해 최소한의 작위는 필요할지 모른다. 김채현 한국종합예술학교 무용원 교수는 “세밀하고 정교할 것까지는 없지만 문화예술인들은 거리를 메운 10∼20대의 무한한 상상력을 빨리 흡수해 다듬어 축제의 공간을 채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3·1절이나 광복절 때 일반인들이 월드컵 때처럼 모여 놀 수 있는 정례적 프로그램을 만들면 시민들의 자율적인 몸짓이 축제와 광장의 문화로 표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곳에 가면 날마다 특별한 일이 일상처럼 벌어지고, 한달에 한번씩 도로 전체를 사람으로 뒤덮고 놀 수 있는 행복한 꿈은 이제 실현되어야 한다. 축제는 계속되어야 한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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