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에서 에든버러까지 세계의 축제…제도화된 규범 일탈하는 무한사고가 진정한 축제정신
너나없이 축제라고들 했다.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축구가 파죽지세로 내달리고 거리에 붉은 물결이 굽이치면서 축제가 회자되었다. 축제를 백안시하던 이전 상황과 비교하면 바로 너와 내 곁에서 혁명적 변화가 움트고 있다.
근대적 축제를 경험하지 않은 탓에 우리는 축제라면 으레 여유 있는 서구의 전유물로 여긴다. 먹고 마시고 실컷 떠들어대는 것이 축제의 필요조건일지언정 충분조건은 아니다. 벨기에에서는 철따라 축제를 걸쭉하게 벌인다. 이 와중에 몇해 전 어린이 성추행 사건에 이어 고위 공직자 살해범이 체포되었다. 신명난 축제가 벌어지는데도 인성은 왜 이 모양인지 탄식이 쏟아졌다. 축제라고 다 순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대 자랑하는 뮌헨의 ‘10월축제’
사진/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 한해 줄잡아 10만개의 축제가 벌어지는 스페인은 축제에 홀린 땅이라고 불린다.(E. Vandevile)
스페인은 축제에 홀린 땅이라고 한다. 한해 줄잡아 10만개의 축제가 벌어진다. 종교축제는 물론이고 소몰이축제, 토마토축제, 물세례 맞는 물축제, 불 위를 달리는 축제 등 축제 속에서 날이 새고 진다.
축제는 집단성·주기성·공간성을 갖는다. 이 점에서 사실 축제로 치기에는 좀 막연한 거리응원을 사람들은 서슴없이 축제라고 하였다. 축제의 외형에 매이지 않고 그 정신을 주목한다면 거리응원은 6월의 축제로서 손색이 없었다.
축제를 움직이는 축제정신은 무엇인가? 대체로 축제는 집단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다지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것이 축제의 일차적 정신이자 기능이다. 무엇보다 축제는 집단 정체성을 위해 공동체 구성원이 몰입할 계기가 있어야 한다.
독일 뮌헨의 ‘10월축제’(옥토버페스트)는 관람객 규모에서 세계 최대의 축제로 일컬어진다. 이 축제는 1810년 바바리아의 황태자 루트비히의 결혼식을 기념해 닷새간 벌인, 부어라 마셔라 잔치에서 비롯되었다. 이제는 9월 하순에 보름 남짓 650만명을 끌어들이는 맥주축제로 정착되었다. 바바리아 지역민뿐 아니라 맥주, 족발, 소시지와 바비큐 등이 서로 잘 궁합을 이루었기에 뮌헨 중심지의 대규모 천막지대는 세계 최대 축제장이 될 수 있었다.
축제의 열기로 치면 리우축제가 으뜸이다. 브라질 제1도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2월이나 3월에 1주일 정도 진행되고 삼바와 노래가 주도하는 삼바퍼레이드가 백미를 장식한다. 퍼레이드는 리우 시내 70곳의 삼바학교에서 선발된 14개팀의 경연으로 이뤄진다. 팀마다 온갖 장식을 한 예닐곱대의 거대한 수레차에 공연자들이 나눠타고 3천∼5천명이 가장행렬을 한다. 1984년 5만명을 수용하는 축구장만한 크기의 삼바드롬(sambadromo·입장료 최고 박스 1천달러)이 삼바퍼레이드용으로 건설되었다. 사나흘 동안 거대한 퍼레이드를 벌이고 난 뒤 평시에는 학교 교실과 콘서트장으로 쓴다.
사진/ 브라질의 삼바 춤판은 브라질 국민 모두가 참여하길 갈망하는 국민 축제다. (SYGMA)
브라질의 국민 리듬인 삼바는 사탕수수밭에 끌려온 아프리카 앙골라 노예들의 사연을 담고 있다. 기독교 세계의 보편적 축제라지만 카니발은 예로부터 이교도의 축제들에서 기원했고, 사순절 직전의 긴장을 푸는 사육제로서 난장이 뒤따른다. 브라질 카니발은 19세기 전반 포르투갈에서 유입되어 서민층과 상류층 간의 타협을 거쳐 지금의 형태로 정착되었다. 저녁 7시부터 새벽 6시까지 릴레이 마라톤 같이 이어지는 삼바퍼레이드와 리우 시내 곳곳의 거리 카니발, 삼바 춤판은 사실 브라질 국민 모두가 참여하길 갈망하는 국민 축제이자 계층을 초월한 한여름밤의 민주적 스펙터클로 받아들여진다.
에든버러 축제의 경제적 효과 1500억원
2월 초 1주간 관람객 220만(1971년 405만명)을 동원하는 삿포로 눈축제는 낮에는 담백하고 밤에는 휘황찬란하다. 눈축제는 1950년 삿포로를 상징하는 시내 중심지 공원에 중고생들이 눈조각상 여섯점을 설치한 데서 비롯했다. 삿포로가 위치한 홋카이도는 메이지유신 이래 개발되기 전엔 척박한 땅이었다. 눈축제는 74년부터 국제 눈조각상 제작 경연대회를 병행해왔고, 72년 삿포로동계올림픽과 함께 홋카이도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마쓰리라고 하여 연중 축제가 끊이지 않고 여름에 축제가 집중된 일본에는 눈과 얼음을 소재로 한 축제가 여럿 있다. 눈축제는 눈과 얼음조각을 전시한 3곳에서 진행된다. 올해 한국의 광화문, 지난해 중국의 사찰 이외에 눈축제는 전통적으로 동서양의 유명한 건축물들을 해마다 15점 정도 실물처럼 거대하게 재현해왔다. 이들 눈건축물과 시민들, 각 직장 단체들이 참여한 조각상을 포함해 모두 150점 남짓의 출품작들이 전시된다. 1955년부터 일본 자위대가 참가하여 출품작도 내고 채설작업에 협력해왔다. 거대한 눈건축물 제작을 비롯해 해마다 재료로 쓰이는 눈이 5t 트럭 8천대분이라니 자위대의 역할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축제 전시장 가운데 한 곳도 자위대 연병장이다. 이상의 축제를 세계 3대 축제라고 한다.
축제는 비일상을 지향하므로 많든 적든 축제를 풍부하게 할 기량을 필요로 한다. 그리스에서 기원전 6세기부터 해마다 1천명의 출연진이 참가한 디티람보스 가무극경연대회는 서양 공연예술사의 초석이 되었지만 원래는 디오니소스 축제의 일환이었다. 예술의 기원을 축제나 굿에서 찾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며, 아무튼 예술만의 예술축제는 근대 이래 예술이 분리된 결과 성립한 현대적 현상이다. 오늘날 예술축제를 심지어 축제의 최정상으로 여기곤 한다.
국내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무수한 예술축제 가운데 프랑스 아비뇽 축제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축제가 손꼽힌다. 똑같이 1947년에 사회 변화를 겨냥해서 시작하여 이제는 한여름에 3주간씩 열리는 두 축제는 전 세계의 크고 작은 공연예술 전시장이다. 1400여 공연물이 출품되는 에든버러 축제는 아비뇽의 두배 규모로서 가히 세계 최대의 예술축제다. 축제 기간에는 비상사태를 연상시킬 정도로 시끌벅적하다. 50만 인구의 소도시 아비뇽에서는 축제가 다가오면서 손바닥만한 골목조차 공연 공간이 되고, 중심가의 일반 강당들은 일제히 임시 공연장으로 변신한다. 잘된 예술축제는 개최도시의 경제 유발효과, 이미지 제고, 정체성 강화 등의 면에서 해당도시의 상징으로 내세워진다. 에든버러 축제가 에든버러와 인근 지역에 일으킨 수입 효과는 2000년 기준 15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그리고 두 축제는 100점가량의 공식 공연물 외의 비공식(프린지 또는 오프) 공연물, 즉 실험성이 강하거나 대중취향적인 공연물들 때문에 더 알차다.
서로에게 스펙터클을 제공한다
예술축제를 비롯해 대개의 축제는 정체성 확인에 주력하는 현실지향성을 보여준다. 근래 우리의 축제를 꾸리는 주체들의 기획 마인드에도 이런 경향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축제가 비일상을 화두로 새 현실을 즐겁게 노니는 스펙터클이고, 새 정체성을 창조하는 힘이 있다는 점은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새 현실을 꿈꾸자면 기존의 것을 문제삼을 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진정한 축제정신은 제도화한 규범을 일탈하는 무한사고와 동의어다.
축제는 서로에게 스펙터클을 제공함으로써 집단 상상력의 구체적 토대를 제공한다. 현실을 초월하는 집단 상상력은 변화를 재촉한다. 2002년 6월, 우리는 세계 지형 속에 팽배하던 패배주의와 함께 군사문화마저 날려버렸다. 거리응원이라는 자발적인 즉석 축제는 디지털 전광판, 사이버 게시판과 질박한 인정을 모태로 계층과 지역과 나이를 넘은 새 상상력의 무대였다. 세계에서 드문 미래지향적인 한국형 축제가 태동하고 있는 것이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