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06월26일 제415호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패배는 좌절이 아니고 승리는 우연이 아니었다… 한국이 세계 최고의 강팀으로 조련받기까지


사진/ (박승화·김종수) 사진합성/ (장광석)


한국축구는 폭주기관차였다. 태풍이 반경 수백km 안의 수분을 빨아들이며 엄청난 에너지 덩어리가 되어가듯, 달리면 달릴수록 가속도가 붙는 무서운 운동체였다. 제동장치는 처음부터 없었거나 도중에 고장난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거침없이 전 구간을 주파한 한국축구는 마침내 종착역으로 치닫고 있다. 우승이든 4위든 남은 결과는 종이 한장 차이일 뿐, 일곱 경기를 모두 치르는 극소수 선택된 존재라는 사실 앞에서 4강을 돌파한 팀들의 능력은 모두 평등하다. 한국축구는 이미 세계 최고다.

숨가쁜 질주는 지나온 길의 잔영을 빠르게 지운다. 한국축구가 폴란드를 상대로 월드컵 출전사상 첫 승을 거둔 때가 6월4일이다. 하지만 20여일밖에 지나지 않은 그날의 기억은 벌써 아득하다. 그날 경기의 위대한 역사성은 다음에 쏟아진 새로운 역사들에 의해 가리고 말았다. 한국축구가 경기를 새로 치른다는 건 곧 한국축구의 역사를 새로 고쳐쓰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국축구는 한달 내내 신화와 역사의 경계를 허물어왔다.

한국축구는 두려움을 잊은 전사와도 같았다. 이름세 높은 강호들 앞에서 헛발질해대던 주눅든 모습은 어느새 흔적조차 없다.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유독 강력한 우승후보들과만 맞닥뜨려온 험난한 경기일정은 한국축구의 변신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된 기획처럼 보였다. 패자들만이 한국과 조우한 불행한 운명을 저주했을 뿐 어느새 전 세계는 한국축구의 승승장구를 당연시했다. 승리는 사람의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패배하지 않는 건 철저히 사람의 몫이었다.

파워축구, 정신력+체력


사진/ 폭주하는 기관차, 한국 축구. 경기를 거듭할수록 경기력에 무서운 가속도가 붙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무엇이 한국팀을 이토록 두려움 없는 강팀으로 바꿔놓았을까. “한국은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출중한 경기력으로 세계축구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한국축구의 힘은 단단하고 균일하며 파괴할 수 없는 ‘팀정신’에서 나온다.” 98프랑스월드컵 우승의 명장인 에메 자케 전 프랑스대표팀 감독은 <르몽드>에 기고한 글에서 “그들은 뒤진 상황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음으로써 공격을 서두르거나 상대팀에 틈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축구=정신력’이라는 등식은 이미 우리에게 낯익은 것이다. 옛부터 “정신력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평가했던 건 다름 아닌 한국 자신이었다. 그러나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축구의 정신력은 어제의 정신력이 아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지난 1월 “선수들의 열성은 99점이지만, 경험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극복에서는 30점”이라는 뜻밖의 평가를 내놓았다. 비장하지만 짓눌려 있는 한국선수들의 정신력을 히딩크는 어떤 강팀과도 당당하게 맞붙을 수 있는 자신감으로 재무장시켰다.


사진/ "사랑해요. 붉은악마". 스페인전에서 승리해 4강 진출을 확정한 히딩크 감독이 관중들에게 답례하고 있다. 그는 한국 축구를 강철로 단련시켰다. (SYGMA)


강한 정신력은 강한 체력을 만나 비로소 강한 경기력으로 구현되었다. 이제 외신들은 정신력과 체력이 결합한 한국축구를 ‘파워축구’라는 새로운 유형으로 규정한다. 독일 축구전문지 <키커>는 한국-이탈리아전을 “빗장수비 대 파워축구가 맞붙어 체력이 승리한 경기”로 규정했다. <르몽드>는 한국이 폴란드를 누른 뒤 일찌감치 “히딩크 감독이 한국식 토털사커를 발명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프랑스 축구전문지 <레퀴프>는 “한국은 팀플레이·프레싱·열정·헌신 등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선수 23명의 몸값 총합이 데이비드 베컴 한 선수의 몸값에도 못 미치는 한국축구의 ‘검박함’은 승리의 걸림돌이 아니라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스타플레이어 한두명이 이끄는 팀의 승리는 스타플레이어의 컨디션과 몸짓 하나하나에 종속된다. 그러나 기본기에 정신력과 체력까지 갖춘 선수들이 팀플레이를 통해 직조해가는 경기에서 승리는 우연일 수도 이변일 수도 없다. 한국축구는 승리할 만했고, 승리에 대한 기대는 합리적 예측에 기반했다. 지금 세계가 두려워하는 건 한국축구의 거센 돌풍이 아니라 예측가능한 경기력이다.


사진/ 히딩크 감독 아래서 한국 선수들은 멀티플레이어로 변신했다.


폭주기관차 한국축구의 기관사는 거스 히딩크다. 히딩크 감독은 경기마다 정확한 판단력과 용병술로 한국팀의 경기력을 극대화했다. 미국전에서 후반 안정환을 투입하지 않았다면 한국축구는 16강 언저리에서 위기를 맞았을 것이다. 패색이 짙던 이탈리아전에서는 후반 수비수 2명을 빼고 공격수 2명을 추가하는 4-1-5 전술을 구사해 경기를 뒤집었다. 그러나 도박에 가까운 이날 전술은 ‘준비된 도박’이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미드필더 유상철·송종국·이영표 등은 어느 포지션도 완벽히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로 키워졌다.

이렇듯 한국축구의 90분, 또는 120분 경기는 히딩크가 한국대표팀을 조련해온 1년6개월의 축약판이었다. 그의 1년6개월에는 비단길보다는 가시밭길이 훨씬 길었다. 그는 대표팀간 경기에서 거듭 패했고, 잇따라 패했다. 그러나 그와 한국팀의 패배는 좌절이 아니라 성장통이었다. 그는 뜨거운 햇살과 퍼붓는 빗줄기를 피하지 않았다. 그는 강호들만 골라서 상대했다. 한국팀은 깨지면서 차츰 단단해져갔고, 월드컵을 앞두고 무서운 강철이 되었다.

붉은 물결, 붉은 함성…


사진/ 한국축구 성공의 밑거름 붉은악마. 이제 붉은악마는 거대한 국민 전체가 되었다. (김종수 기자)


히딩크는 1년6개월 만에 한국축구를 눈부시게 도약시켰을 뿐 아니라, 세계축구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건 합리적 노력과 이에 대한 합리적 기대였다. 그런 면에서 히딩크는 승부사라기보다는 우직한 대장장이었다. 화려한 공연의 기획자라기보다는 정직한 들판의 착실한 농사꾼이었다. 월드컵 개막 이후 한국축구의 한달은 단단하게 날선 낫으로 들판을 가득 채운 곡식을 차곡차곡 거둬들이는 수확의 과정이었다. 한국축구의 승리는 자연의 이치와 같았다.

히딩크가 농사꾼이었다면 붉은악마는 거름이었다. 2002월드컵을 붉은 축제로 물들여버린 붉은악마는 전 세계로 중계되는 눈요깃거리가 아니었다. 1995년 PC통신 축구동호회원들이 처음 구성한 붉은악마는 더는 형태를 갖춘 조직이 아니다. 한국팀의 12번째 선수는 운동장 관중석에도 가득 찼고, 온 나라 거리거리에도 넘쳐났다. 거름이 흙 속으로 흩어져 식물의 뿌리로 스며들듯이, 붉은악마는 이제 해체되어 거대한 국민 전체가 되었다. 4800만명의 선수와 싸워야 하는 외국팀들은 붉은 물결과 붉은 함성에 질식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땅을 갈아엎고 다시 농사일을 준비하듯이, 월드컵이 끝나면 한국축구는 새로운 출발에 나서야 한다. 한국축구의 나아갈 길은 지나온 1년6개월 속에 이미 이정표로 제시되어 있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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