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06월20일 제414호 

노풍이여, 다시 한번…

대선후보 재경선 제시한 노무현 후보… 안팎 변수 많아 격랑에 휩싸일 수도


사진/ "대통령후보 경선을 다시 치를 수도 있다." 노무현 후보가 당내 사태 관련 가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정용 기자)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8·8 재보선 이후 대선후보 재경선’을 해법으로 제시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지방선거 참패로 맞은 위기국면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후보와 대표, 지도부 등 책임론의 소재를 놓고 갑론을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질 테니 재신임이든, 재경선이든 일단 8·8 재보선 이후에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그가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누구든지 입당해 국민경선을 하는 것도 수용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국민경선을 통해 다시 한번 ‘노풍’을 일으키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재경선이라는 비상 처방전을 통해 지방선거에 대한 후보 재신임론, 후보 사퇴론, 대표 책임론 등 당내 분란의 불씨를 한꺼번에 끄겠다는 것이다. 아직 큰불이 아니지만 대형화재로 번질 위험이 있으므로 소화기를 찾기보다 소방차를 불러 진화하겠다는 것으로 비유된다. 여기엔 지방선거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가파른 속도로 하락하는 데 대한 위기의식도 작용했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는 14.6%(동아일보 여론조사), 12.6%(중앙일보)까지 벌어졌다. 경선 당시 이 후보를 20% 이상의 차이로 따돌렸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당내 분란 잠재울 특단의 조처 있나


사진/ 노무현 후보는 위기국면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지난 6월 17일 열린 민주당 연석회의장에 들어서는 노 후보. (이정용 기자)


사실 노 후보가 경선을 다시 한번 치를 수 있다고 밝힌 것은 오래 전이었다. 그는 지난 3월 민주당 경선이 시작되기 이전에 이미 “경선에서 이기더라도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의 영입을 위해 후보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다시 한번 경선을 치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엔 김덕룡·이부영 의원 등 자신과 정체성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판단한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과의 결합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그런데 지방선거 참패로 당내에서 후보교체론이 불거지자 이 카드를 다시 꺼내든 것이다. 노 후보가 재경선을 들고 나온 것을 즉흥적인 상황 회피용 깜짝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그는 “만일에 시간벌기나 전당대회 회피용이라는 의구심이 있다면 지금 당장 전당대회를 해도 좋다”고 의지가 확고함을 부연했다.

앞서 노 후보 비서실의 이광재 기획팀장도 “노 후보가 획기적인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결단을 한번 내리면 무섭게 추진할 것이다”라고 말해 노 후보가 모종의 비상처방전을 숙고하고 있음을 예고했다. 노 후보는 이 문제를 몇몇 핵심 측근들하고만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친 노무현 성향의 의원들 사이에선 한때 무책임하고 즉흥적인 발상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리더십을 발휘해 당을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인 상황에서 재경선을 들고 나온 것은 느닷없다는 지적이었다. 천정배 의원 등 쇄신파들의 생각은 다른 대안이 없는 만큼 후보 재신임은 당무회의 등에서 속전속결로 치르고, DJ와의 차별화와 정책적인 선명성 확보, 참신한 인물공천 등을 통해 8·8 재보선을 정면으로 돌파하자는 생각이었다.

애초 노 후보가 생각한 위기국면 타개책은 당의 자생력 함양과 체질개선을 통한 지구전 전략이었다. 그가 “내부를 개혁하는 과정으로 환골탈태해야지, 당을 그대로 놓아두고 인기 있는 방법 몇 가지로 얼키설키 가려 해선 안 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러나 전략이 바뀌었다. 당내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게 전개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후보교체론의 목소리가 불거진 상황에서 미봉책만으론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김기재·조재환·송석찬 의원 등 이인제 의원 쪽은 후보교체론을 합창하는 등 본격적으로 ‘노무현 흔들기’에 나섰다. 원래 노 후보의 재신임 약속은 영남 광역지역 단체장을 1석도 건지지 못할 경우 후보자리를 내놓겠다는 것이었다. 선거결과는 노 후보를 할말이 없게 만들었다. 노 후보는 이 문제에 분명하게 대답하지 않을 경우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노 후보는 애초 밝힌 것과 달리 8·8 재보선도 자신의 주도 아래 치르겠다고 밝혔다. 자신이 공천권을 행사하되 그 이후 재경선을 통해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참모진 일각에선 8·8 재보선에서마저 밀릴 경우 노 후보의 위상이 더욱 심하게 흔들리면서 회복불능의 상태로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재보선에서 노 후보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젊고 참신하고 능력 있는 인물을 포진해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어려워도 재보선에서 반전의 기회를 노려야 대선에서 일합을 겨눌 수 있다.” 노 후보와 가까운 재선 의원의 얘기다. 노 후보를 지지하는 쇄신파 의원들도 대부분 이와 비슷한 견해다.

DJ와의 차별화는 정책적 대안으로

노 후보는 김홍일 의원 탈당 등을 통해 DJ와의 차별화를 확실히 매듭지어야 한다는 당내 요구에 대해 6월17일 연석회의에서 분명한 태도를 밝혔다. 그는 “정치부패 청산은 단순히 단절과 차별화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민주당이 주도하는 정책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별화가 능사가 아니라는 견해다. 고민은 그를 지지하는 당권파 성향의 의원들이 이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노 후보가 민주당의 대선후보로서 확실한 검인을 받기 위해선 또 하나의 험한 고갯길을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갯길이 어떤 길이 될지, 만나게 될 적수가 이인제 의원인지, 또 다른 외부 경쟁자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17일 연석회의에서 친이인제 의원 성향의 의원들이 노 후보를 공격하고 나선 것은 민주당이 다시 한번 격랑 속으로 빠져들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




↑Back to th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