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06월20일 제414호 

더도 말고 요즘만 같아라!

지방선거 압승에 잔뜩 고무된 한나라당… 대선 고지 선점해 유연한 승부수 띄워


사진/ 지방선거 개표방송을 보며 환하게 웃는 이회창 후보. 이 후보의 최대 현안은 한나라당 지지도를 개인 지지도 상승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이정용 기자)


6·13 지방선거 이후 한나라당 분위기는 확 살아나고 있다. 수도권 압승과 52.2%의 정당 지지율을 근거로 벌써 대선 승리를 장담하는 사람도 있다. 이회창 후보의 한 핵심 참모는 “지방선거 이후 이 후보가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을 앞서는 등 상황이 우리 쪽으로 계속 기울고 있다”며 “지금 추세를 잘 이어간다면 연말 대선 승리는 문제 없다”고 자신했다. “노풍이 완전히 소멸됐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이회창 후보와 서청원 대표는 겸손과 책임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 후보는 단체장 당선자와 당직자들에게 “선거기간에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뛰었던 마음으로 살아달라”고 역설했다. 계속 낮은 자세로 임하라는 것이다. 당선자들도 축하연을 취소하는 등 이에 화답하고 있다. 서청원 대표는 몇몇 기자들에게 “민심이 얼마나 무섭냐. 난 기쁘지 않고, 오히려 겁이 난다”며 “우리도 정신을 빠싹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25 재보선 압승 직후 “넥스트 프레지던트, 이회창”을 외치며 대세론에 안주하다 빌라파문과 국민경선으로 침몰한 악몽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연함마저 느껴진다.

대세론 안주 경계… 몸 낮춰 변수 대비

한나라당의 관심은 어떻게 현재의 상승 분위기를 올 12월 대선까지 지속시키느냐로 집중된다. 몸을 낮춰 국민 속으로 파고드는 것은 기본이다. 이 후보는 전국 16개 시도에서 민생투어를 벌이기로 했다. △지역 현안에 대한 정책 대안 제시 △지역 경제 활성화 및 균형 발전 대책 수립 등 현지 주민이 피부로 느낄 정책을 선보여 한나라당에 기운 민심을 좀더 확실히 묶어놓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승세를 살리고 경쟁자인 노무현 후보를 확실히 압도하는 수준에 이르려면 낮은 자세 이상의 묘책이 필요하다. 당직자들은 이 후보가 3가지 핵심 과제를 넘어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확보한 유리한 지위를 안정적으로 뿌리내리는 것이다. 이 후보 쪽 핵심 참모들은 충청권은 자민련 무력화, 수도권은 민주당 정권의 부패와 무능에 대한 반사이득 성격이 강한 불완전한 승리라고 분석한다. 한 측근 의원은 “한쪽 상대인 민주당이 급격히 무너지면 국민은 한나라당과 이 후보에게 지금까지와 다른 차원의 기대와 주문을 내놓을 것”이라며 “이 열망을 충족하지 못하면 지방선거 지지 유권자들 사이에 한나라당에 대한 불신감이 급속히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언제든 변심할 뿐 아니라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참모들은 수도권과 충청권 민심의 요구를 수권정당다운 안정적 이미지 확립이라고 믿는다. 이 후보도 신임 단체장들에게 인사정책 등 민감한 사안은 겸허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라고 주문한다. 곧 당차원에서 광역·기초단체장, 광역의원 워크숍을 열고 인사보복 금지와 마구잡이 선심정책 수립 자제를 결의할 예정이다.

파행 중인 국회 원구성을 원만히 매듭짓고 민생현안 적극 처리, 권력형 비리청산 약속 실천으로 수권정당다운 책임과 비전을 보여준다는 계획도 세웠다. 당장 원구성이 쉽지 않은 게 문제다. 위기의 민주당이 원구성을 지렛대로 삼아 상황 반전을 노릴 가능성도 높다.

고심하던 한나라당은 일단 강온양면 전략을 통해 현재 교착상태를 돌파하기로 했다. 당장 하반기 원구성 때 수적 우위를 앞세운 밀어붙이기는 자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유연한 협상과 국회법에 따른 국회의장 자유투표, 민주당과 자민련에 대한 상임위원장직 일부 양보도 계획하고 있다. 이규택 원내총무가 박관용 국회의장 후보 지명을 철회하고 자유투표로 의장을 선출하겠다고 밝힌 것은 유연전술이 구체화된 것이다.

그러나 선거과정에서 제기한 부패정권 심판론은 양보없이 계속 밀어붙이기로 했다. 한나라당은 6월15일부터 △권력비리 척결을 위한 국정조사·텔레비전 청문회·특검제 실시 △대선 공정관리를 위한 중립내각 구성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방선거 과정에서 꽤 재미를 봤고, 이를 소홀히 하면 선거용이었다는 역공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후보 지지도·소외그룹 포용 등 과제


사진/ 한나라당 수도권 압승을 일궈낸 손학규·이명박·안상수 당선자. 이들은 축하연을 취소하는 등 낮은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정용 기자)


두 번째 과제는 당내 경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형성된 한나라당 내부 소외그룹을 포용하는 것이다. 이회창 후보는 시간을 두고 선대위 구성과 당직개편을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소외그룹을 포용하기 위해 당내 역학관계 조정 등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 안팎에서는 7월10일께 마무리될 선대위에 최병렬·김덕룡·이부영 의원 등 비주류인사를 중용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다. 최고위원 경선과정에서 측근 배제 여론에 밀려 찬밥신세가 된 민정계 의원 일부도 주요 당직에 다시 기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든 노력은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 상승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결국 이 후보의 최대 과제는 지방선거에서 표출된 52.2%의 한나라당 지지도를 개인 지지도로 연결하는 것이다. 한 비주류 인사는 “당 지지도는 50%를 넘었지만 이 후보 지지도는 여전히 36% 안팎에 머물러 있다”며 “겨우 40%대 투표율로 표출된 민심을 잣대로 대선 승리를 장담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말했다. 대선전은 투표율이 80%를 넘어서고, 당보다는 후보 개인에 대한 투표 성향이 강한 만큼 이 후보의 대중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모든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참모들도 이런 지적에 공감한다. 그러나 계속 낮은 자세로 임하는 것말고 당장 묘책은 없다. 이 후보 쪽은 최근 안정적인 리더십을 보여주면서 노무현 후보와 차별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모든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느냐는 향후 정치상황과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이 후보만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이 후보의 다른 한 측근 의원은 “지방선거 결과 민주당 내분이 가시화하고, 자민련 해체가 시작되는 등 우리가 그토록 우려했던 정계개편이 시작된 느낌”이라며 “앞으로 어떤 정치지형이 형성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노무현 후보가 DJ와 차별화를 통해 정면돌파를 시도할 수도 있다. 민주당이 정몽준·박근혜 의원 등 제3의 후보를 영입해 대선주자를 다시 추대하는 상황도 가능하다. 아예 민주당 간판을 내리고 신장개업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이 후보 쪽은 당장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찾기보다 내부를 추스르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다만 여전히 노무현 후보가 가장 우력한 상대라는 의견이 주류를 이룬다. 한 핵심 참모는 “정치세력의 이합집산을 통해 국민적 지지도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또 민주당 판이 이미 노무현 쪽으로 너무 기울어 있다. 정몽준·박근혜로 후보교체나 이인제 복귀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특히 노 후보가 이른바 ‘노무현다움’을 회복하는 상황을 가장 경계한다. 노 후보가 동교동 구파 등 당내 반발세력을 억누르며 DJ를 효과적으로 밟고 일어설 경우 한나라당으로 쏠린 민심이 다시 이동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정몽준·박근혜 등 제3후보 출마 가능성도 물론 주시하고 있다. 다만 이들이 대선에 출마해 다자구도가 펼쳐질 경우 이 후보 쪽 득실이 명확하지 않다. 참모들 사이에도 독인지 약인지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안정적 리더십 강조… “무리수 두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은 별로 급할 게 없다. 이 후보의 다른 한 측근은 “대선은 그 당자체가 정치전쟁이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대비한다. 다만 지방선거에서 압승했고, 50%를 넘는 정당 지지도를 확보한 만큼 어느 쪽이든 절대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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