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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효과, 미완의 신화 한국 축구의 절망을 씻어낸 1년6개월, 그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2002 한·일 월드컵의 휘슬은 이미 울렸다. 그는 이번 지구촌 축제기간에 한국 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그의 성공예감은 월드컵 개막이 다가오면서부터 빠르게 구체화하고 있었다. 주목받는다는 건 어쩌면 그에게는 일상과도 같은 일인지 모른다. 그는 과거부터 주목받는 인물이었고, 특히 월드컵은 축구감독으로서 그의 값어치를 드높이는 특별무대였다. 이번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하지만 아무리 주목받더라도, 그는 축구감독이다. 성공했을 때도, 드물게 실패했을 때도 그는 축구감독일 뿐이었다.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그럴 것이다. 그가 축구감독이라는 사실은 마치 움직일 수 없는 정언명제와도 같다. 그러나 ‘축구감독 히딩크’이라는 이름은, 적어도 한국 국민에겐 너무 작은 이름이거나, 또는 너무 건조한 이름이다.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뒤부터 그는 축구감독일 수만은 없는 운명으로 접어들었다.
한국의 해결사로 떠오르기까지
2000년 11월, 한국 축구는 깊은 위기에 빠져 있었다. 시드니올림픽 8강 진출 실패에 이은 아시안컵 3위. 한국 축구의 위기는 객관적 ‘위기’라기보다는 주관적 ‘위기감’에 가까웠다. 아시안컵 3위는 순위로만 볼 때 형편없는 성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월드컵 공동개최국이자 영원한 라이벌이던 일본이 압도적인 실력차로 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4위에 그쳤지만, 영원한 먹잇감이던 중국은 조직력에서 한국을 능가했다. 월드컵이 1년6개월 뒤로 다가온 시점에서 한국으로서는 인정하기 어려운 ‘사태’였다. 그때부터 외국인 감독 영입론이 급부상했다. 한국인 지도자로는 도저히 세계 축구의 수준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주장이 대세로 자리잡아갔다. 월드컵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축구를 모르는 외국인 감독보다는 토종 감독이 낫다는 주장이 일부 있었으나, 맹목적인 ‘축구 국수주의’쯤으로 치부됐을 뿐이다. 그만큼 한국 축구의 심리적 위기감은 컸고, 빼어난 외부 해결사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었다. ‘해결사 히딩크’. 그는 그렇게 한국 국민에 의해 ‘고용’되었다. 그러나 한국 축구가 그를 고용했다고 생각하는 한국 국민은 없었다. 그는 고용된 게 아니라 모셔졌다. 이를 금액으로 표시하는 건 의미가 없다. 18개월 총연봉 18억원(연봉기준 12억원, 월급기준 1억원), 16강 진출시 성과급 3억2500만원. 기타 부수입까지 합쳐봐야 20억원대. 그가 한국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럽의 프로축구팀을 맡았다면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었다. 올 초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가 그에게 연봉 2억엔을 제시하면서 영입교섭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의 한국행은 돈문제만은 아니었다. 한국 축구는 삼고초려했다. 거액을 주고 그를 고용할 수는 있지만, 적은 돈을 주고는 고용할 수 없다. 모셔올 수 있을 따름이다. 적어도 ‘한국적 가치’ 또는 ‘아시아적 가치’로 볼 때 그렇다. 히딩크는 “월드컵 개최국 대표팀을 맡는 것은 큰 영광”이라며 명예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한국 축구와 히딩크의 관계는 이처럼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그가 한국팀을 5 대 0으로 짓밟은 적장이었다는 악연까지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섣부른 기대와 예정된 실망
보도대로라면 밑바닥을 기던 한국 축구는 이 푸른 눈의 ‘구세주’가 출현하면서 순식간에 하늘로 유체이동하고 있었다. 그를 ‘젊은 오빠’로 떠받드는 인터넷 팬클럽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다만 명장은 진중했다. 그 사이 히딩크는 “느낌이 좋다”고만 했을 뿐이다. <축구공 위의 수학자>를 펴낸 강석진 고등과학원 교수는 “히딩크가 부임하면서 언론은 그가 즐겨 써온 4-4-2 전형이 마치 한국 축구를 선진축구로 끌어올려줄 새로운 패러다임인 것처럼 떠들어댔지만, 이 전형은 이미 우리나라 여러 팀에서 써오던 것이었다”고 말했다. 어떠랴. 본디 언론은 국적을 불문하고 호들갑스러운 법이거늘. 월드컵은 시작되고, 한국 축구는 마침내 일을 낼 조짐을 보이며 ‘떠오르고’ 있다. 한국팀이 16강에 오를 확률을 묻는 여론조사 결과는 국민의 경이적인 기대수준을 보여준다. 한국 축구가 “성적과는 별개로 눈부시게 실력이 성장했다”는 여유까지 보일 기회가 언제 또 있었던가. 다소 성급했을 뿐, 히딩크 부임 직후 한국 언론의 보도는 결과적으로 맞아떨어지고 있다. 이제 그의 가치는 축구를 넘어서 기업경영 따위에도 벤치마킹되고 있다(24∼25쪽 참조). 그가 조련해놓은 한국대표팀의 모습은 눈부시다. 그러나 히딩크는 지금 한국 사회에 이렇게 얘기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지난 1년6개월 동안의 과정은 모두 잊어버렸느냐”고. 그의 감독 취임 뒤로 한국 축구는 영광보다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거듭되는 부진. 히딩크의 시도는 한국 국민에게는 모든 게 낯설었고, 이 낯선 시도들은 부진한 성적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해가 바뀌어서도 히딩크호는 진로를 찾지 못하는 듯했다. 여론은 그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나 있었다. 올 초까지의 악전고투를 생각하면 히딩크호가 지난 3월 스페인 전지훈련부터 거두기 시작한 성과는 뜻밖의 사건전개로 비쳐진다. 대표팀은 유럽원정에서 강호들과 겨뤄 1승2무의 성적을 냈다. 그리고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스코틀랜드-잉글랜드-프랑스로 이어진 세계 최강호들과의 마지막 국가대표팀 평가전에서 눈부신 성적(1승1무1패)을 냈다. 대표팀의 경기력은 어제와 오늘이 달랐고, 한편의 극적인 드라마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한국 국민은 변화를 느낄 수는 있었으나,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들 눈에는 갑자기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히딩크는 모진 학대를 받는 부엌데기에서 어느 날 갑자기 왕자님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신데렐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적어도 한국 국민 대다수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거듭되는 패배 속에 ‘오대영’이라는 한국식 별명을 얻었던 그는 이제 ‘히 감독님’, ‘딩크형’이라는 옛 애칭으로 복권되었다. 히딩크호의 지난 1년6개월은 탄탄한 서사구조를 가진 소설이 아니라 비약과 우연이 지배하는 깜짝동화였을까.
대하소설이었나, 깜짝동화였나
“그의 성공에는 이유가 있다.” 적어도 최근 한국 사회가 보여주는 히딩크에 대한 ‘과학적인’ 평가에서, 그의 성공은 논리적이고 필연적으로 해석된다. 다만 관객들이 그 과정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 히딩크는 러닝타임 1년6개월짜리 영화를 잘 짜인 시나리오에 따라 연출해왔다는 얘기다. 플롯의 기·승·전은 결말을 철저히 감추고 진행되었다. 눈썰미 좋은 관객만이 그가 의도적으로 깔아놓은 희미한 복선을 알아챌 수 있었을 뿐, 대반전은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돌이켜보건대, 한국 국민의 두려움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낯섬에서 오는 두려움이었는지 모른다. 한국 축구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등장하는 박종환 전 감독은 지난 2월 “한국 축구를 모르는 상태에서 거듭하는 테스트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한국은 선수들의 개인기가 뒤져 1진을 정해 조직력과 전술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며 “베스트11을 빨리 정해 조직력과 전술을 가다듬는 길만이 승리를 거두는 해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히딩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히딩크는 북중미 골드컵 경기 전날 밤까지도 체력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대표팀 훈련을 몰고갔고, 베스트11을 확정하지 않고 선수들끼리 주전경쟁을 부추겨 기술향상을 유도했다. 그는 강팀만 골라 경기했다. 대륙간컵에서 프랑스에 5 대 0으로 참패하고도 “많은 걸 배웠다. 우리는 계속 강팀과 붙어 경험을 쌓아갈 것이다”라고 큰소리쳤다. 기초를 탄탄히 하고 깨지면서 배우는 단련과정을 거쳐 대표팀은 차츰 단단해져갔고, 어느 날 아침 강철이 되어 있었다.
끝없는 담금질, 마침내 강철이 되어…
정씨는 히딩크의 성공에는 어느 정도 우연적인 행운도 작용했다고 본다. “네덜란드 문화의 특징은 자유분방하고 대화를 좋아하는 것이다. 반대로 격식에 얽매이는 걸 대단히 싫어한다.” 히딩크가 한국 축구문화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미덕뿐 아니라 그의 조국인 네덜란드의 문화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정씨는 “스파르타식 지도방식을 고수하는 유고 출신 밀루티노비치 감독은 중국 축구에 적합했고, 이미 새로운 틀을 요구하는 한국 축구의 현실에는 히딩크가 잘 맞아떨어진 셈”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성공을 세속적 성공, 특히 경제적 성공으로만 변주해내는 한국 사회의 영감은 ‘축구감독 히딩크’라는 간단명료하고 무미건조한 이름의 뉘앙스보다 가난하다. 선수들에게 마지막까지 경쟁을 하게 만드는 그의 노회한 리더십말고는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게 그토록 없을까. 소설가 고원정씨는 “네덜란드 문화가 그렇듯 히딩크는 자유분방한 면모를 보이면서도 실리에도 밝은 이중적인 모습”이라며 “우리가 눈여겨볼 건 원칙을 세우고 이를 지켜나가는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히딩크의 성공은 인문학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지식사회에도 메시지를 보낸다.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는 “그가 선수들에게 기초체력과 전방위 역할을 요구한 것은 마케팅론 같은 응용학문적 특성이라기보다는 인문학적 특성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기능이나 포지션에만 매몰되지 않고 경기 전체를 읽고 전후 리듬을 이해할 것을 요구하는 대목이 전방위적이고 전인적 이해, 삶 전반을 통찰하도록 요구하는 인문학과 공통점이 많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히딩크는 한국 축구가 자기 비하에 빠져 있을 때, 한국 축구에서 한국적 가치와 효용을 발견하는 열린 시각을 보여주었다. 한국 사회가 그의 성공을 사대적으로 해석할 때 그는 한국 축구를 문화상대주의로 이해한 것이다. 그는 한국 스스로 기술의 한계를 탓하고 있을 때 올 초 “한국 축구의 기술은 이미 85점”이라고 치켜세웠다. 그가 한국 축구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도 낯선 ‘축구의 변방국가’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당신도 우리처럼 행복했길 바라노라”
“지금이야 하는 말이지만 한국팀의 첫인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전력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한국 선수들의 열정을 말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다. 그런 점에서 한국 선수들은 세계 어느 나라 선수들보다 우월하다. 그런 한국 축구의 기본 잠재력은 일찍이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으며, 나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한국 선수들을 대단히 사랑한다. 그들의 순수함은 나를 들뜨게 한다.”(최근 네덜란드 유력지 <텔레그라프> 인터뷰를 <프레시안>에서 재인용) 한국 국민은 지금 그런 히딩크를 주목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16강에 들든 들지 못하든, 그가 한국대표팀 감독으로 계속 남든 떠나든, 월드컵이 끝난 뒤 한국 국민이 한 이방인 축구감독에게 가장 확실하게 건넬 수 있는 인사말은 다름 아닌 이런 것이 아닐까. “우리와 한국 축구는 당신을 만나 더없이 행복했노라”고, “당신도 우리처럼 행복했길 바라노라”고.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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