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06월05일 제412호 

로봇축구에 인공지능을…

한국 축구문화의 근본적 체질개선 미흡… 낡은 방식에 의존하는 몸통을 바꾸라


사진/ 강압적 로봇축구를 벗어나 '즐기는 축구'의 토대가 만들어질 때 한국 축구의 미래가 열린다. 고교축구 선수들이 경기를 하고 있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히딩크 이후에도 한국 축구는 월드컵 16강을 ‘현실적으로’ 꿈꿀 수 있을 것인가. 히딩크는 분명 한국 축구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물음의 답은 한국 축구가 그 충격을 일대 전환의 원동력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히딩크 효과는 아주 냉정하게 보자면, 그저 한국 최고 엘리트 선수들의 기량과 팀워크를 최일류급으로 다듬어냈다는 정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100억원의 거액을 들여 1년6개월여의 집중적인 ‘족집게 과외’를 통해 이뤄낸 성과다. 23명의 ‘태극전사’들을 제외한 한국 축구의 전반적 토대에는 아직까지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히딩크는 상부구조의 극히 일부분을 뒤흔들어 놓았을 뿐이다.

엘리트의 변신만으로는 안 된다

그러나 때로 상부구조의 충격은 토대의 붕괴와 격렬한 전환을 재촉할 수 있다. 히딩크가 한 일은 그 충격의 결절점을 찾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낡은 토대를 새롭게 바꿔놓기 위해 필요한 ‘최초의 일격’을 가한 것이다. 체육시민연대 고광헌 고문은 “한국 축구는 억압이 억압을 낳고, 기계적 행동을 낳고, 상상력과 창조적 플레이를 막는 구조였다”며 “히딩크가 엘리트 23명에 대해 이것을 깬 것”이라고 이를 풀이했다.

전환을 위한 첫 과제는, 무엇보다 그가 싹틔운 창발적 상상력의 가능성을 대표팀 울타리 바깥 전체 축구계로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가의 문제다. 사회학자 김찬호씨는 “히딩크 감독은 서열문화에 찌든 사고방식을 바꾸고 즐기는 축구를 강조하는 등 축구문화의 변화를 시도했다”며 “그의 메시지가 축구계 전반으로 번져나갈 때 한국 축구의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바라봤다. 고광헌 고문은 “고정화된 스파르타식 훈련과 상명하달식 정보의 일방향적 흐름을 극복하고 수평적 의사소통을 통해 경기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신적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클럽의 활성화를 통한 유소년 축구의 양성은 미룰 수 없는 핵심 과제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학교 대항 중심의 엘리트 양성에 치우친 지금의 체제로는 축구의 저변 확대는 물론 창조적 축구문화의 확산조차 요원하다고 입을 모은다. <축구공 위의 수학자>를 펴낸 강석진 고등과학원 교수는 “한국 축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엘리트 위주의 학원 축구에 편중되어 선수층이 엷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명구유소년축구교실 황명구 원장은 “학교팀은 당장 대회 성적이 좋지 않으면 상급학교 진학이 어려워지고 코치는 문책을 당한다”며 “이 때문에 장기적인 기본기 향상에 관심을 기울이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어려서야 강압에 의한 기술습득이 효과를 발휘할지 모르지만 커서는 창의력 없는 로봇축구에 머물게 된다”는 얘기다.

유소년 축구 밑거름 삼는 토대 변화 시급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축구 강국들은 대개 프로구단이 중심이 돼 학교팀 바깥에 다양한 유소년 클럽을 육성하고 있다. 잔디코트와 프로 출신의 우수한 지도자를 갖춘 프로구단이 직접 나서 축구 새싹들을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지도하고 기른다. 황명구 원장은 “일본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이런 클럽축구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이뤄냈다”며 “히딩크가 강조하는 ‘즐기는 축구’도 이런 체제 아래서야 빛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월드컵은 축구의 한 정점이다. 중국인들이 ‘세계배(世界盃) 족구대회’라고 부르는 월드컵 뒤에도 축구공은 계속 잔디를 굴러갈 것이다. 그 일상의 축구가 풍요로워질 때 비로소 월드컵 16강은 특별한 무엇이 아닌 현실의 목표물로 자리잡게 된다. 김찬호씨는 “히딩크가 던진 충격을 원동력 삼아 한국 축구의 낡은 허물을 벗고 토대를 다질 때 이번 월드컵의 의미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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