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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가슴으로 가자 16강! 최고의 조건 속에 분출하는 승리의 기운… 성공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이유가 있다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세계 최고의 기량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질주한다. 한번 넘어지면 다시 4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가야 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흙탕물에 젖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숫타니파타’) 달려가야 한다.
홈경기, 선수들 호르몬의 변화
희망의 받침대, 그 첫째는 세계가 허용한 ‘안마당의 힘’이다. 홈어드밴티지, 개최국의 이점이다. 지금껏 세계는 모두 16번의 월드컵을 치렀다. 개최국이 16강에 오르지 못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94년 제15회 월드컵의 개최국 미국도 약체라는 평가를 비웃으며, 16강이 겨루는 2라운드에 진출했다. 개최국이 우승컵의 주인이 된 경우도 6번(38%)에 이른다. 준우승 2번, 3위 2번을 더하면 개최국이 세계 3강 안에 오른 것은 무려 63%가 된다. 통계의 증언에서 17번째 한·일월드컵이 예외일 수는 없다. 무엇이 안마당의 힘을 가능케 하는가. 전문가들은 “거의 모든 것”이라고 답한다. 안방 관중의 열광적인 환호는 첫손가락에 꼽힌다. 전 국가대표 김주성 문화방송 해설위원은 “거대한 환호를 받으면 선수들은 힘이 절로 나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반면 원정팀은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에 90분 경기 내내 시달려야 한다. 응원이 바로 산삼보약이다. 과학도 선수의 투지와 기량을 끌어올리는 안방의 힘을 입증해냈다. 영국 노섬브리아대의 샌디 울프슨 스포츠심리학 교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산하 19살 이하 팀을 대상으로 선수들의 타액샘플을 채취해 호로몬량의 변화를 측정했다. 그 결과 원정경기에서는 보통 수준을 보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홈경기를 앞두고 크게 높아진 것으로 밝혀졌다. 테스토스테론은 대표적 남성호로몬으로 지배력·자신감·공격성과 직결되는 성분이다. 연구팀은 테스토스테른 수치는 ‘텃세’, 곧 홈어드밴티지와 관련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홈경기에서 선수들은 자신의 영역을 지켜야 한다는 본능적인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포지션 가운데선 특히 골문을 지키는 골키퍼의 수치 증가가 가장 크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홈팀 편애, 심판들의 인간적 한계
경기의 운영을 좌우하는 심판의 영향력 또한 안방효과의 한 고리를 이룬다. 국내 첫 여성 축구심판 임은주씨는 “월드컵대회의 국제심판들은 나라가 아닌 대륙을 대표한다”며 “1라운드 심판의 평가에 따라 2라운드 심판배정이 결정되는 조건에서 심판의 부당한 영향력을 기대할 순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공연한 편파판정이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는 홈 텃세의 영향에서 심판이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심판도 기계가 아닌 인간인 것이다. 영국 울버햄프턴대 앨런 네빌 연구원의 심판 판정에 대한 최근 연구는 이를 증명한다. 그는 40명의 심판들을 A·B 두 집단으로 나눈 뒤, 47개의 태클 장면을 비디오로 보여주고 판정을 내리도록 했다. 홈팬의 거대한 함성이 담긴 테이프를 본 A조의 심판들은 홈팀에 무척 관대한 판정을 내렸다. 홈팀에 내려진 파울 건수는 원정팀보다 15%가 적었다. 반면 경기장의 음향을 없앤 B조에선 홈팀의 태클 전체에 대해 빠짐없이 파울을 선언했다. 네빌 연구원은 “A조의 관대한 판정은 홈팬의 열광적인 응원이 펼쳐진 실제 경기에서 내려진 판정과 거의 비슷한 결과였다”며 “홈 관중의 함성에 주눅이 든 심판들이 상황을 빨리 전환하기 위해 홈팀의 반칙은 무시하고 지나가는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종종 불거진 심판들의 홈팀 편애는 거대한 음모의 산물이라기보다 이처럼 너무나 인간적인 한계에서 비롯된다. ‘개최국의 이점’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오랜 비행과 시차에 시달릴 필요도 없다. 언어적 장벽 없이 최적의 조건에서 경기를 준비할 수 있다. 유럽과 남미의 강팀들은 낮과 밤이 바뀌는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생체리듬을 정상으로 돌리기까지 경기력 저하는 불가피하다. 잔디마저도 홈팀의 편이다. 홈팀은 잔디 관리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상대팀의 경기 스타일에 맞춰 잔딧길이나 잔디에 뿌리는 물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 그에 따라 공의 바운드 강도와 체력 소모가 달라지게 된다. 미국팀과 뛸 때는 잔디를 축축하게 적시는 것이 유리하다. 푹신해진 그라운드는 평균연령이 높은 미국선수들을 한층 빨리 지치게 할 수 있다. 최은택 축구협회 연구위원장은 “홈은 선수들이 일상적으로 생활해온 곳”이라며 “환경적으로 익숙해져 있다는 점은 아주 유리한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홈어드밴티지만으로 16강을 꿈꾸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축구팀은 일방적인 홈관중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3전3패로 예선탈락했다. 개최국의 이점에 힘입어 높아진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결국 철저히 준비된 선수단의 힘과 기량이다. 이 점에서도 한국팀은 어느 때보다 높은 고지에 올라 있다.
“족집게 과외효과가 드러난다”
그에겐 지난해 1월부터 월드컵 기간까지 감독활동의 대가로 모두 145만달러(약 18억8500만원)가 건네진다. 16강에 오르면 25만달러(약 3억1250만원)가 보너스로 지급된다. 우승 때는 무려 20억원이 약속돼 있다. 신문선 SBS 해설위원은 “지금 우리는 월드컵이라는 입시를 앞두고 집중 고액과외를 시킨 셈”이라며 “족집게 과외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역대 최고의 투자와 그에 바탕한 역대 최고 강도의 평가전도 이뤄졌다. 대한축구협회는 올해 경기력 향상비로만 58억여원의 예산을 마련했다. 지난 2월 우루과이, 3월 튀니지·터키·핀란드 등과의 해외원정 경기와 3월 스페인 전지훈련을 포함한 국내외 훈련과 연구비에 27억여원이 들었다. 이 달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프랑스와의 친선경기를 위해서만 무려 31억여원을 쏟아부었다. 친선경기 직전 제주도 서귀포 전지훈련에선 최고급 파라다이스 호텔을 통째로 전세냈다. 선수단 50명의 하루 숙박비만 1850만원이었다. 선수 1인당 6만7천원의 하루 밥값 등 보름 동안의 전지훈련에 들어간 돈은 무려 4억원에 이르렀다. 투자는 열매를 맺었다. 유럽 강팀들과의 평가전을 통해 선수들은 유럽팀만 보면 약해지는 마음을 추스렸다. 열광적인 축구팬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고원정씨는 “강팀들 앞에서 당당하게 맞서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다”고 말했다. 김명환 서울대 수학과 교수는 “분명한 수학적 근거를 댈 수 없어 아쉽다”면서도 “16강 진출의 확률은 어느 때보다 높다고 직감한다”고 말했다.
16이라는 숫자 속에 감춰진 행운
16강 진출의 기운이 무르익으면서, 16과 관련한 한국팀의 온갖 기연들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회사원 안영균(37)씨는 “히딩크는 82년 첫 코치생활을 시작해 16년 만에 월드컵 4강에 진출했고, 한국에 온 지 16개월 만에 월드컵 개막을 맞는다”며 “무엇보다 이번이 월드컵 연속 진출 16년째인 만큼 4전5기의 신화를 기필코 이룰 것”이라고 높은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불안 또는 우려가 없을 수 없다. 월드컵조직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토대가 아직 탄탄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기대가 높아져 부담스럽다”고 털어놓았다. “16강의 목표로만 몰아가는 사회적 광기가 두렵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 모든 불안과 우려를 가름할 것은 결국 현실의 승부일 수밖에 없다. 김찬호(연세대 강사·사회학)씨는 “한국팀의 16강 진출은 월드컵대회 성공의 토대”라며 “그 꿈을 한껏 즐기자”고 제안한다(00-00쪽-사이드3 페이지 표기-참조). 열정을 담은 팬들의 희망은 신명나는 축제의 밑그림이다. 그들은 말한다. 혼자 꾸는 꿈은 몽상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곧 활시위가 당겨진다. 그러나 지금은 마지막 기도의 시점이다. 더 이상 두려움에 떠는 자의 기도는 아니다. 그것은 도전의 팽팽한 ‘떨림’이 담긴 기도일 터이다. “나를 위험으로부터 피하게 해주십사 기도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두려움 없이 위험을 직면하게 해주십사 기도하렵니다/ 내 고통을 잠재워 달라고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마음을 구할 겁니다”(타고르, ‘기도’).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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