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05월29일 제411호 

열망하되, 폭발하진 말라

16강 염원은 돼지꿈 꾸고 산 복권… 꽝 되더라도 복권을 저주하지 말자

당신은 어느 날 밤 돼지꿈을 꾼다. 다음날 아침 당연히 복권가게로 달려간다. 지갑을 털어 복권 10장을 산다. 그리고 1등에 당첨돼 집도 옮기고, 차도 바꾸고, 아니 무엇보다 가난한 가장의 어깨를 짓누르는 빚을 말끔이 털어버리는 미래를 그린다. 그 순간 당신은 행복하다. 그런 당신에게 누군가 “사행심에 빠졌다”라고 질타한다면 당신은 기꺼이 고개를 숙일 것인가. 그 꿈에 등장한 동물이 비록 돼지로 둔갑한 개일지라도 말이다.

살인과 전쟁까지 불렀던 그 ‘염원’


사진/ 폴란드팀 입국을 환영하는 '코리안 서포터즈'. 외국팀을 응원하는 이유가 월드컵을 축제로 이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한국팀의 객관적 실력을 감안하면, 16강 진출을 바라는 국민의 기대는 이성적 판단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국제축구연맹(FIFA) 순위로만 따지면 이만저만 헛물켜기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 대고 ‘국가주의 동원체제’니 ‘집단적 주술’이니 하고 주홍글씨를 써서붙이는 건 적절하지 않다. 그런 엄밀함을 요구받는 건 국가대표팀 관계자가 아니면 축구 도박사들 정도로 이미 충분하다. 무엇보다 축구는 과학자들의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우리가 언제 우승, 아니 4강이나 8강을 바란 건 아니지 않은가. 얼마나 많은 팀들이 우승을 열망하고 있는가. 그들도 우승컵이 단 하나뿐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어느 팀이나 자기 수준에 맞춰 목표를 정하고 순수한 열정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문화평론가 정윤수씨는 “우리가 16강을 열망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노릇”이라며 “이 열망을 ‘친절월드컵’이나 ‘경제월드컵’ 같은 경기외적인 다른 등가물과 바꿀 수는 없다”고 말했다.

물론 16강이 월드컵의 경기내적 성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김찬호 연세대 사회학과 강사는 “우리에게 16강은 대표성과 상징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16강을 꿈꾸는 건 일차적으로 16강 벽을 한번도 넘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6강은 일종의 국민적 자존심이 되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하다 보니 자존심 경쟁이 더욱 세질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문제는 염원 자체가 아니라 철저히 염원에만 매달리는 데 있다. 그러다 보면 다른 중요한 것들을 잊어버린다. 1969년 7월13일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유명한 ‘축구전쟁’을 벌였다. 두 나라는 1970년 멕시코월드컵 예선전을 치르다 폭력사태를 빚고 국교까지 단절하더니, 마침내 전쟁까지 벌여 수천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자살골을 넣은 콜롬비아의 수비수 엔드레스 에스코바르는 귀국 뒤 괴한들에게 총격을 받아 숨지기도 했다.

16강 염원의 제물, 차범근

유혈사태를 빚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16강 염원이 오히려 축제 분위기를 망치는 경우도 많았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는 멕시코전과 네덜란드전에서 진 차범근 감독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월드컵 기간에 중도하차하기도 했다. 이진경 수유연구소 연구원은 “우리는 16강이 보인다고 야단법석을 떨다 지고 나면 때려죽일 듯이 해왔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한국축구는 한심한 쳇바퀴 돌기만 거듭해왔다”고 꼬집었다.

당신이 돼지꿈을 꾸고 산 복권이 모두 ‘꽝’이 되더라도 꿈을 원망하거나 복권을 저주하지는 않는다. 월드컵 16강의 염원은 복권을 사는 것과 같다. 우리는 지금 역대 최강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거기에는 16강 진출을 향한 ‘히딩크호’의 착실하고 체계적인 준비와 이를 다른 때보다 여유 있게 바라보며 월드컵을 준비해온 국민의 성숙한 태도에 힘입은 바 크다. 그래서 16강에 대한 예감은 어느 때보다 좋다. 남은 건 불 같은 염원을 품고 뜨겁게 축제를 즐기는 것뿐이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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