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05월15일 제409호 

대선가도에 나도 있잖아!

선거 판도에 영향력 발휘할 변수인물 6인… 그들은 과연 무엇을 선택할 건가




김영삼 전 대통령

될 사람 ‘학실히’ 밀어주마



지난 5월10일 상도동을 찾은 정대철 민주당 최고위원에게 YS는 이런 말을 던졌다. “노무현 후보는 내가 발탁해 키운 사람이다. 하지만 서청원·박관용 의원도 좋아한다.” 이 속에는 12월 대선을 바라보는 YS의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정치권에는 한동안 YS의 선택이 임박했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는 항상 상도동을 찾는 정치인들에게 확실한 언질은 주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는 특유의 방식으로 몸값을 올려왔다. 그런 그가 노풍이 불기 시작한 이후 노 후보 쪽으로 기운 듯한 언행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상도동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어른이 노 후보에게 깊은 관심을 가진 게 틀림없고, 속내는 아직도 노 후보에게 기울어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정치 상황이 그를 움직일 수 없게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반DJ, 비이회창 노선’을 표명하며 기회를 엿봐온 그가 “DJ와 노무현은 다르다”는 논리로 노 후보를 지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노 후보가 요구한 박종웅 의원 부산시장 출마 수용 여부는 그 잣대였다. 하지만 DJ의 세 아들 비리로 부산·경남지역 여론이 악화되자 그는 노 후보 요구를 거절했다. 정치적 영향력을 잃어버릴 수 있는 승부수를 띄우기보다 좀더 기다리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박종웅 의원도 “아무리 천하의 승부사인 YS라도 반 타작은 가능해야 손을 들 게 아니냐”고 말했다.

YS는 지방선거 결과를 지켜본 뒤 다시 기회를 엿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당분간 오는 사람 막지 않고, 명시적 답변 없이 권력의 미묘한 기울기를 측정하는 특유의 행보를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한 참모는 “민국당 때 이미 한 차례 실패를 경험한 YS는 이회창이든, 노무현이든 확실히 올 대선에서 이기는 쪽을 도와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그의 선택은 6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인제 민주당 의원

기회 엿보다 재기 노린다



“민심의 흐름을 보고 있다.” 대선후보를 노리다 중도사퇴한 뒤 ‘백의종군’하겠다며 평의원으로 돌아간 그의 요즘 심중을 핵심측근은 이렇게 요약했다.

그는 서울 자곡동 자택에 머물며 주로 미래학과 우주분야에 대한 책을 읽는다고 한다. 그러나 마냥 칩거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5월10일엔 경선 때 그를 지지한 의원과 지구당위원장 20여명과 함께 식사를 했다. 앞서 집으로 찾아온 한화갑 민주당 대표와 만나 지방선거 협력을 다짐하기도 했다. 노무현 후보와의 회동 여부에 대해선 “만나서 할 얘기도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박근혜 의원과의 회동에 대해선 “교감은 없지만 자유로운 몸이니 누구든 만날 수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JP에 대해선 지방선거를 돕는다고 예우했다. ‘정중동’의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는 셈이다.

그가 올해 대선에서 출마할지 여부에 대해선 정치권의 의견이 분분하다. 한 측근은 “이 의원은 이미 마음을 비웠다. 하지만 여러 가능성은 열어둔 것 같다”고 전했다. 정치 지형의 유동성을 주시하며 재기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상황을 봐서 일정기간 외국에 머무를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현재로선 그가 움직일 수 있는 보폭은 일단 충청권에 국한돼 있다. 그가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한화갑 민주당 대표에게 지방선거 지원을 약속한 것도 충청권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의 불씨를 살려둘 필요성 때문이다. 다만 정책구도 재편 등 정치권의 새판짜기가 시도될 경우 그가 발빠르게 움직일 가능성은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영향력이 중부권 이상을 넘어가기는 쉽지 않아보인다. “먼저 국민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이 의원이 직접 후보로 나서려는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그의 보폭이 넓어질 것이다.” 그를 지지하던 수도권 출신 한 의원의 얘기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

지방선거 줄타기로 ‘생존실험’



‘만년 2인자’ JP는 이번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주요 등장인물로 나올 것 같다. 13대 때는 직접 후보로 뛰었고, 14대 때는 민자당 대표로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으며, 15대 때는 DJP연합의 한축을 담당한 그다. 하지만 이제 그를 독립적인 대선주자로 주목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선판도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는 변수인물 정도로 보는 것이다.

“이회창 후보를 밀기엔 감정의 골이 너무 패었고, 노무현 후보를 밀기엔 지향점이 너무 다르다.” 자민련의 한 재선 의원은 “JP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너무 좁다”고 말했다. 어느 일방을 대놓고 지원하기엔 내걸 수 있는 명분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JP가 누구인가. “10월엔 10월의 논리가 있고, 11월엔 11월의 논리가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데 탁월한 재주를 발휘해온 그다. 자민련의 또 다른 재선의원은 “명분은 만들면 나온다는 게 JP의 신념”이라며 “JP는 지방선거에서 힘을 비축한 뒤 대선에선 자신의 도움을 받아야만 집권이 가능한 쪽을 밀어 실리를 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캐스팅보트를 행사해 킹메이커가 되려는 전략이라는 얘기다.

이를 위해선 충청권의 정치적 영향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지금의 그에겐 그럴 힘이 없다. 이원종 충북지사와 김현욱 전 의원, 박태권 전 충남지사 등이 최근 잇따라 자민련을 떠나 한나라당에 합류한 상황이다. 소리 높여 주장해온 내각제는 울림이 없다. 그래서 JP는 이인제·박근혜·정몽준 의원 등 세력 끌어모으기에 가장 적극적이다. 혼자 힘으로는 독립변수조차 되기 어려운 상황이니, 여러 세력을 한줄로 꿰어매는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힘 빠진 그에게 상황은 그리 녹록해보이지 않는다.

정몽준 무소속 의원

월드컵 끝나고 보자고요



‘16강이면 대선 출마, 8강이면 당선’. 한국이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하면 월드컵조직위원장인 정몽준 무소속 의원이 반드시 대선에 출마하고, 8강에 진출하면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얘기다. 정 의원은 최근 한 특강에서 “시중에 이런 말이 떠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우리의 월드컵 성적이 좋으면 감독과 선수들의 인기가 오르지 왜 내 인기가 오르겠느냐”고 되물었다. 이는 한국의 16강 진출이 무산될 경우 자신의 정치적 운신을 제약하는 족쇄로 작용할 것을 경계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설사 16강 꿈이 깨지더라도 괘념치 않고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일정이 빠듯하지만 소리 소문 없이 정치적 행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지난 5월8일엔 환경운동연합을 방문해 최열 사무총장과 간사들에게 점심을 대접했다. 정 의원은 최 총장과 환경재단을 함께 추진하는 사이다. 지난 1월엔 두 사람이 신당을 창당한다는 소문이 나돌기까지 했다. 울산의 지구당 사무실은 100평이 넘는 대규모다. 누가 봐도 통상적인 지구당 사무실 규모는 아니다.

“월드컵이 끝나면 대선에 직접 출마할 것인지, 아니면 누구를 지원할 것인지를 본격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그는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확답을 월드컵 이후로 미루고 있다. 아버지 정주영의 대선 도전과 실패가 그의 정치적 행보를 신중하게 한 것일까. 그러면서도 그는 “대선 구도가 완결된 것이 아니다. 정치권에 또 다른 변화가 있을 것이다”라며 여운을 남겼다. 정치권의 다양한 변화 가능성을 열어놓고 기회가 오면 과감히 뛰어들겠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노무현이나 이회창이 몰락할 경우 대타의 자리를 노릴 것이다. 이도저도 여의치 않으면 ‘제2의 이인제’를 염두에 두고 이번 대선에서 상당한 표를 얻은 뒤 차기를 모색할 수도 있다.” 그와 교류가 많은 민주당의 한 의원은 “정 의원이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출마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박근혜 (가칭)한국미래연합 의원

기대했던 ‘신당 효과’ 꼬이네



요즘 고민이 깊다. 지난 2월28일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석달이 지났지만 앞날은 불투명하다. YS, 이수성 전 의원, 정몽준 의원 등과의 연대는 가시적 성과가 없다. 노풍이 불면서 영남대표성마저 타격을 입었고, 지지율도 하락했다. 최근 이인제 의원에게도 러브콜을 날렸다. ‘반노무현, 비이회창’ 노선의 중도보수주의 신당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의원은 뚜렷한 답이 없다.

기로에 선 박 의원은 5월17일 창당하는 한국미래연합에 모든 공력을 쏟고 있다. 김기덕 공보특보는 “먼저 수도권과 영남 일부 지역에 참신한 보수인사들을 공천해 지방선거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둔 뒤 더 큰 그림을 그리겠다는 게 박 의원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 구상도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이재용 대구 남구청장을 상대로 대구시장 출마를 타진하는 등 돌파구 마련을 꾀하고 있다. 월드컵 뒤 정몽준 의원과의 연대에도 기대를 건다. 북한 방문도 약화된 정치적 기반 복원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한다.

정치권에선 박 의원이 상당 기간 고전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박 의원 쪽으로 사람이 모일 만한 동력을 찾기가 수월치 않기 때문이다. 결국 박 의원은 지방선거 뒤 노무현발 정계개편이나, JP와 이인제 의원의 중부권 신당 움직임이 구체화된 뒤에나 정치적 공간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3세력을 결집해 노무현·이회창 양강 구도에서 캐스팅보트를 쥐는 전략을 택하거나, 독자출마해 ‘넘버3’ 자리를 차지한 뒤 차기를 모색할 수도 있다. 한나라당과 재결합 가능성도 떠돈다. 한나라당 최고위원에 당선된 서청원 의원은 박근혜 의원의 창당 추진작업이 “성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필요할 때 대화할 수 있다”고 문을 열어놨다. 물론 박 의원에겐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김덕룡 한나라당 의원

목하 고민 중 “나갈까, 말까”



그는 요즘 정치 현장에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결단이 임박했다는 얘기가 속속 흘러나온다. 한나라당 안에서 더 이상 비빌 언덕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 타이산을 함께 오르는 등 그와 같은 길을 모색하던 홍사덕 의원은 당 잔류로 마음을 굳혔다. 이회창 독주체제에 함께 브레이크를 걸어온 이부영·최병렬 두 의원도 경선에서 패한 뒤 “정권교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경선을 통해 나름의 지분도 챙겼다. 반면 김 의원 입지는 훨씬 좁아졌다. 한나라당에선 “DR이 떠나도 별 충격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김 의원은 침묵하고 있지만 이회창 후보에게 협력할 뜻이 없다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경선과정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전당대회에도 불참했다. 김 의원의 핵심 측근은 “김 의원은 이미 한나라당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며, 그런 틀로 새 정치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침묵하고 있다. 이제 그의 길을 갈 것”이라고 전했다. 마음은 이미 떠났지만 경선 등 국민적 관심을 모으는 큰 정치행사 때문에 선택을 미뤘다는 것이다.

김 의원 쪽은 “5월17일 민추협 창립 18주년 행사와 20일 후원회 행사에 힘을 쏟고 있다”며 “주목해달라”고 말했다. 이런 언행은 상직적인 의미를 함축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치권 일각에선 그가 이 행사 참여를 계기로 한나라당을 탈당해 노무현 후보와 ‘동서화합’과 ‘개혁세력 연대’를 명분으로 합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돈다. 호남 출신으로 YS계보 중진인 김 의원과 경남 출신인 노무현 후보의 정치적 이해가 상당부분 일치하기 때문이다. 김 의원의 다른 한 핵심 참모는 “노 후보 쪽과 사전 접촉은 없었다”면서도 “물이 흐르다 보면 서로 합치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는 법”이라고 가능성을 열어놨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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