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2년05월08일 제408호
갈비세트 또는 비누세트

가스누출 경보음 울려도 작업 계속해야 했던 그들의 절망적 차별

지난해 말 현대자동차 제3공장. 야간작업 중에 갑자기 가스누출 경보음이 울렸다. 가스냄새가 심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판국이었다. 정규직 노동자는 서둘러 대부분 공장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회사 쪽이 기계를 멈추지 않은 탓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불안에 떨며 하던 일을 계속해야 했다. 저임금을 벌충하기 위해 잔업, 야간노동을 마다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비정규 노동자로 산다는 것’이 주는 절망감을 혹독하게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정규직이 기피하는 일을 떠맡는 게 비정규직 노동자이지만 하청 노동자는 울산공장 안에 있는 산업보건센터를 이용할 수 없다. 정규직 조합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장 바깥의 병원을 이용해야 한다. 노조설립일, 회사창립일이 직영한테는 유급휴일이지만 하청 노동자는 나와서 일해야 하고, 여름휴가 때도 정규직은 하청 노동자보다 하루 먼저 휴가를 떠나고 하루 늦게 복귀하기 일쑤다. 작업복도 정규직의 것은 공장에서 빨아주지만 하청 노동자는 기름때가 범벅인 작업복을 집에 가져가 손빨래해야 한다. 회사 출입증부터 정규직과 다른 하청 노동자는 출근부터 퇴근까지 노동의 일상이 팍팍하기만 하다.

얼마 전까지 따로 지급된 ‘정규직은 갈비세트, 비정규직은 비누세트’의 명절선물은 비정규직 차별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비누세트를 받은 하청 노동자들은 들고 나갈 때 ‘외주협의회’라고 적힌 선물 포장지를 떼버리기 십상이었다. 연말에 “이번에 현대차에서 보너스 많이 탔죠” 하고 택시기사가 속없는 말을 하면 “내가 압니까? 얼마나 받았는지” 하고 받아넘기며 절망을 곱씹어야 하는 게 하청 노동자의 서글픈 노동이다. 현대자동차노조 조합원인 ㅂ아무개씨는 “하청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에 정규직의 고용안정이 보장되는 게 엄연한 현실”이라며 “저 사람들의 정규직화를 위해 우리가 싸워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울산=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