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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등록 2002.04.03(수) 제403호

[표지이야기] 한-미동맹, 자주국방은 없다.

‘디지털 미군’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한국군, 아날로그 군대로 남아야 할 운명이여

“경제 쪽도 그렇지만, 안보면에서의 미국 의존도는 더 심하지. 속된 말로 미국이 기침 한번 하면 우리는 독감이 걸릴 정도라 할까. 내가 한-미연합작전을 많이 해봐서 아는데 미군이 디지털 군대라면, 한국군은 아날로그 군대라고 할 수 있지. 소프트웨어는 물론 하드웨어 모든 면에서 엄청난 격차가 있는 걸 부끄럽지만 인정할 수밖에….”

어느 예비역 육군중장의 고백

ㄱ 전 육군중장. 지금은 민간인 신분으로 옷을 갈아 입었지만 지난 10년 넘게 한-미연합작전분야에서 죽 근무해와 이 방면에서는 손꼽히는 전문가로 통한다. 한-미연합전력의 구조를 누구보다 속속들이 꿰뚫어보면서 나름대로 한국군의 나갈 길을 고민해온 그다. 그는 차기 전투기로 미 보잉사의 F-15K가 내정된 소식을 듣고 예상은 했으면서도 사뭇 착잡한 모양이었다. “사실 F-15K가 아무리 개량형이라고 해도 미국도 이제 더 이상 안 쓰려는 노화무기잖은가. 재고품을 한국군에 떠넘기는 짓이지. 그렇다고 기술이전을 제대로 해줄 것 같지도 않아 보여. 과거에도 죽 그래왔으니까.” 다소 놀라운 발언이었다. 그가 지금도 어깨에 별을 단 군복을 입고 있었다면 차마 이런 노골적인 감정표현을 할 수 있었을까.

자신의 발언이 너무 앞선다고 판단했던지 그는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빠트리지 않았다. “연합작전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지. 현대전은 어차피 따지고 보면 다 연합작전의 성격을 띤다고 봐야지. 사실 우리가 미군과 연합작전을 펴면서 배우는 게 많아. 작전기법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이지. 우리 군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노하우를 미군에게서 배우는 셈이야. 지난 99년에 벌어졌던 연평해전에서 승전보를 올릴 수 있었던 것도 한-미연합작전에서 배운 게 큰 보탬이 됐지. 아까도 얘기했지만 우리 군 독자적으로는 디지털 전쟁을 수행할 수가 없어. 미군이 빠지면 한국군은 다시 아날로그 군대로 남을 수밖에 없어.”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한국군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 “물론 자주국방이지. 가능하면 외국에서 사다 쓰는 것보다는 직접 우리 기술로 첨단무기를 만들어 유사시를 대비하고, 필요하다면 수출도 해서 외화를 벌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지. 투자비용 조달이 문제야. 그래서 경제력을 키워야 해. 미래전에 대비한 각종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갖추려면 역시 나라가 잘 살고 봐야지. 그래야 이 눈치 저 눈치 안 보고 자주국방할 수 있지 않겠어.” 과연 그럴까. 한국군이 자주 국방을 못하는 게 순전히 돈이 없기 때문일까. 한-미군사동맹이라는 강고한 성벽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도 말이다.

F-15K 선정은 지극히 당연했다?

‘자주국방’이란 자기 나라의 국방을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성을 가지고 자기 책임아래 실시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한국군은 자주국방을 목표로 내걸면서도 한-미군사동맹은 통일 뒤에도 영원히 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니 자주국방은 아예 포기한 듯한 뉘앙스가 더 강하다. 2000년 12월에 나온 <국방백서>에서도 “완벽한 자주국방을 달성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므로 현실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못박고 있다. 그러면서 힘에 부치는 국방력를 보완하기 위해 한-미동맹관계를 더욱 공고하게 다져야 한다고 국방부는 주장한다. 군 관계자의 견해를 들어보자. “우리가 미군에 지난해 4억4천만달러 정도를 분담금으로 지원한 바 있지만, 이는 일본 등에 견줘 몇배나 적은 금액이다. 더구나 우리 군의 국방비는 과거 박정희 대통령 때 국내총생산의 6% 수준에서 지금은 2.8%로 내려앉았다. 이런 터에 한-미연합전력은 국방비를 최소화하면서 안보불안을 덜고, 경제발전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인식의 맥락에서 보면 미국산 F-15K 선정은 지극히 당연한 결정으로 보인다. 지금의 한-미군사동맹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더욱 그렇다. 차기 전투기 사업과 관련해 앞으로 남은 2차 평가에서는 △한-미연합작전 등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 △한반도 평화정착 등 대외관계에 끼치는 영향 따위가 최종 기종 선정을 결정한다. 국방부 내 관련자들의 견해는 대체로 하나로 모아진다. “미국 전투기 성능이 다른 나라 것들에 견줘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뒤진다면 아무리 한-미연합작전상 중요하더라도 F-15K의 손을 들어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차이가 좀 나더라도 동맹국의 전투기를 사줘야 하는 것 아니냐. 괜히 섣불리 다른 나라 비행기를 샀다가는 동맹관계에 손상을 입힐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추가비용도 감수해야 한다.” 한국군이 주한미군 당국이 내세우는 무기의 상호 운용성을 외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전시작전권을 가진 미국은 유사시 한-미연합작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지휘통신·통제·정보전달·컴퓨터시스템 등에서 상호소통이 잘 되는 미국 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줄곧 강조해왔다. 한국 공군의 차기 전투기는 미국이 갖고 있는 조기경보기·정찰기·레이더 등은 물론 미사일·통신체계 등과 맞물려 연합작전을 펴야 하나 미국산 전투기가 아닌 경우 작전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비단 F-15 전투기뿐이 아니다. 2조1천억원에 이르는 육군 차기 공격형 헬기(AH-X), 공군 차기 유도 무기(SAM-X) 사업 등도 마찬가지다. 한국군은 아예 처음부터 미국 무기를 모델로 삼고 그에 걸맞은 전력증강 목표를 세워왔다. 무기선정 기준인 군 요구성능(ROC)도 미군 무기의 작전성능과 구성품 규격을 보고 베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군 요구 성능은 기종 결정에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자주국방파와 연합방위파의 대결

국방부가 차기 전투기 사업을 시작하면서 애초부터 F-15K 외 다른 대안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음은 여러 인사들을 통해 확인된다. 무기 도입 사상 최초로 공개입찰로 진행돼 나라 안팎의 관심을 끌었지만 실상은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었던 셈이다. 국방부가 외교적 마찰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다른 전투기들을 들러리로 세운 것은 나름대로 애국심(?)의 발로였다. 다른 나라 전투기와 경쟁을 부쳐 미국에게서 가격이나 기술이전 분야에서 유리한 양보를 이끌어내려 한 것이었다. 미국도 사실 한때는 바짝 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자국산이 아닌 다른 나라 전투기를 살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는 <워싱턴포스트> 3월27일치를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워싱턴의 미 군부와 보잉 후원자들은 한국전쟁 이후 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누려온 미국 군수업체들에 대한 전례없는 다른 나라들의 도전에 당혹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서 미 군부는 지난해 10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전력을 집중 투입해야 함에도, 알라스카에 있는 3대의 F-15E를 서울에 날려 보내 대규모 에어쇼를 선보였다. 이 비용은 보잉사가 댔다.”

사실 차기 전투기 사업은 한국군이 과연 자주국방 쪽으로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시험대였다. 공군은 차기 전투기 사업을 통해 첨단 항공기술을 이전받아 2015년쯤에는 국산 전투기를 개발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술 이전 정도가 야박한 미 보잉사의 F-15K가 차기 전투기로 사실상 내정됨으로써 당초 계획이 상당히 어긋난 것으로 보인다. 자주적인 전투기 개발이 그만큼 멀어진 셈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몇년 안에 국방부에서 또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끄집어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고 예측하고 있다.

한국군 안에서도 ‘자주국방파’와 한-미군사동맹을 더 강화하자는 ‘연합방위파’가 나눠져 있다. 하지만 자주국방파라고 해서 이들이 미군의 안보우산에서 완전히 벗어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한-미군사동맹을 인정하면서 독자적인 작전수행력을 갖출 정도의 충분한 전력 확보를 꾀한다. 특히 거의 통째로 미군에 의존한 정보우산에서 먼저 벗어나고 보자는 생각이 강하다. 정보에서의 독립 없이 자주국방은 요원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들은 21세기 디지털 전장에서의 승패 여부는 정보·감시·정찰능력과 자동화 지휘통제 네트워크(C4I)능력의 상호 결합적 승수작용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C4I체계를 흔히 전장공간에서 인간의 신경조직이나 뇌와 같다고 평가한다. 이 체계를 온전히 갖추려면 군사용 위성,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 전략 및 전술정찰기 등을 갖추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확보가 우선적 과제지만, 전시작전권을 틀어쥐고 있으면서 한국군의 무기체계에까지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군의 동의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가까운 시일 안에 실현될 가능성은 커보이지 않는다.

미군이 짜주는 무기구입 리스트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뒤 한-미간의 역할 분담론에 따라 미군은 지휘·통제 및 전략적 감시, 공중 및 해양방어의 주요 임무를 담당하고, 한국군은 지상전력 위주로 전력을 키워왔다. 더구나 해·공군력은 미 증원전력에 의존한다는 방침에 따라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턱없이 부족한 게 한국군 실정이다. 즉 한반도 유사시 해·공군력은 주로 연합전력 위주로 대응하고, 지상전력은 한국군이 우선적으로 담당하는 개념으로 발전되어왔다. 국가안보를 한-미연합방위전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미래전이 정보전과 항공력 등에 의해 승패가 갈린다는 면에서 보면 한국군이 구조적으로 아날로그 군대로 남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군 소식통들에 따르면 사실 한국군은 일본의 F-15 보유에 자극을 받아 80년대 중반에 이미 같은 기종을 들여오려고 시도했다. 작전 반경도 넓고 대형인 F-15를 기술 도입 방식으로 자체 생산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군사 전문가들이 F-15를 독수리로, F-18이나 F-16은 꿩이나 닭에 빗댈 정도로 이들 전투기의 실력 차는 크다. 하지만 결국 해·공군의 작전능력을 묶어두려는 미국 내 보수파의 입김에 미국 정부도 두손을 들고 만다. 더구나 미 의회는 첨단 전투기와 관련 기술 판매로 미국 항공기 시장을 위협하는 또 다른 일본이 부상할 것을 우려해 한국 판매를 초반부터 반대했다. 실제 미 의회는 그 뒤 F-16을 한국에 팔면서도 기술 이전은 엄격히 제한하는 조건으로 판매를 허락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때 한국 정부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제대로 대응해 F-15나 F-18을 샀더라면 비용절감은 물론 지금과 같은 소모적인 논쟁과 국가적 망신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실 지난 시절 한국군은 미군이 짜주는 무기구입 리스트를 금과옥조로 삼아왔다. 미국이 한-미연합작전상 필요하다고 명분을 들이대면 누구도 이를 뿌리칠 수가 없었다는 얘기다. 지난 90년대 초에는 전술핵 철수에 따른 전력공백을 메워야 한다며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비롯해 각종 무기를 한국에 강매했다. 미국은 지난 90년부터 2000년까지 11년간 별다른 기술 이전 없이 96억달러어치의 무기를 한국에 팔았다. 무기장비류까지 합치면 무려 170억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미국이 산 한국 무기나 방산물자는 1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군수산업은 늘 한반도 긴장을 먹이로 삼아왔다. 전쟁의 먹구름이 한반도 상공을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어느새 미제 무기들은 한국군의 손에 잔뜩 쥐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90년대 초반의 북한 핵위기, 98년의 미사일 위기 등 심심찮게 유령처럼 나타나는 전쟁위기 뒤의 무기거래 실적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올 초 부시 대통령의 북한을 겨냥한 ‘악의 축’ 발언에다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나오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관련 기술의 수출설, 특별 핵사찰 압박, 금강산관광 대가의 군사비 전용설 등에 이은 차기 전투기 결정도 한반도 긴장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적당한 수준의’ 현대화

미국은 또 가끔 ‘무기 현대화’를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무기구입을 부추기기도 한다. 사실 한국 공군력 현대화의 필요성을 애초 강조한 나라도 미국이었다. 지난 90년대 초 미국은 당시 탈냉전의 기운이 완연함에도 한국과 일본에 공군력 현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현대화의 방법까지 자상하게 조언했다. 미국 군수산업체들이 만든 전투기 완제품을 사거나, 합작생산과 합작개발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시행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대표적인 보기가 지금 논란이 붙은 차기 또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이다.

이때 일본은 물론 한국도 현대화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 완제품을 사기보다는 합작을 통한 자체생산 비율을 늘리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과는 달리 한국에 대해서는 합작개발을 배제했으며, 가급적 완제품을 구입하거나 부분적인 합작생산만을 허용하였다.

사실 한국군도 대미 무기도입 의존도는 높았으나 미국이 핵심기술 이전을 피하자 무기 도입선을 유럽 등지로 다변화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써왔다. 국방부는 90년대 들어와 모든 무기도입에는 철저히 시장경쟁원리를 적용하겠다는 내용을 무기획득 관련 규정에도 명문화하는 등 자못 비장한 결심을 내보이기도 했다. 기술 이전을 많이 받기 위한 당연한 조처였다. 하지만 실제 운용상으로는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미군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정부 내 친미성향의 정책담당자들이 정치논리를 앞세워 정상적 평가를 줄곧 왜곡시키는 바람에 늘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하고 있다. 기술 이전 조건이 야박함에도 비슷비슷하거나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면 미제무기를 도입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해온 것이다.

한국군은 지난 30여년간 주로 재래식 무기의 국산화에 치중한 결과 첨단 핵심기술 분야는 여전히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은 ‘적당한’ 수준의 한국군 현대화만 원하고 있다. 한국군의 급속한 무장화가 미국의 이익과 맞지 않을 뿐더러 주변국을 자극해 군비경쟁으로 이어지길 원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군의 미사일 발사 사정거리를 엄격히 제한하는 한-미미사일각서를 미국이 강요해 맺은 것도 대표적인 보기다. 한-미군사동맹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한국군. 미국에게서 진정한 동맹군의 대접을 받을 날은 언제쯤일까.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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