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04월24일 제406호 

최규선 농간이 권력을 삼켰다

희대의 처세로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 뒤흔들어… 부패의 늪에서 진실 추적은 가능한가


사진/ (김종수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장병인


어느덧 대통령 탄핵소추가 거론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찰 총경 한 사람이 해외탈주 활극을 벌이는 사이 대통령 셋째아들의 추문이 쉴새 없이 불거져 나오더니, 이들을 두들겨패던 야당의 강력한 대권주자가 더러운 돈을 받았다는 폭로가 갑자기 터졌다.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는 청와대 사람이 대통령 동향 정보를 팔아먹었다는 의혹은 오히려 작은 에피소드였다. 이들 의혹의 공통분모는 구치소로 끌려가면서도 금테안경 너머로 눈빛을 반짝이며 “조국에 공헌했다”고 큰소리친 한 남자의 이름이 똑같이 따라붙었다는 것뿐이다.

대통령 일정까지 수시로 보고받아

‘최규선 게이트’가 끝간 데 없이 번지고 있다. 일주일 새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는 일조차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사건은 이미 ‘김홍걸 게이트’로 불릴 만큼 세간의 눈길은 대통령 셋째아들 쪽으로 쏠리지만, 수많은 의혹들은 아직 ‘의혹’의 꼬리표를 떼지 못하였다. 이런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장본인의 말에서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무너진 지 오래다. 확실한 것이라곤 정체가 모호한 한 인물이 나라의 힘 있는 곳을 빠짐없이 들쑤시며 권력자의 이름을 팔고 다녔다는 사실과, 그 때문에 지금 나라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민간인’ 최규선씨는 대통령의 일정까지 청와대로부터 수시로 ‘보고’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대통령 수행비서인 이재만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이 최규선씨로부터 금품을 받고 2급비밀에 해당하는 대통령 일정을 유출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자체 조사를 벌인 뒤 이 행정관의 사표를 수리했으나, 이 행정관은 “용돈은 받았으나 비밀을 유출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일정의 유출 여부 못지 않게 중요한 사실은 최씨가 호형호제하며 대통령의 잠자리까지 챙기는 수행비서를 ‘관리’했다는 사실이다.

관리 차원에서 보자면 대통령 수행비서보다 대통령 아들을 관리하는 데 훨씬 많은 품이 드는 건 당연지사다. 최씨는 자신의 운전기사인 천호영씨의 인터넷 폭로 뒤 기자회견을 자청해 느닷없이 “나와 홍걸이는 의형제 사이로, 홍걸이에게 용돈으로 7만달러를 주었다”고 ‘천기’를 발설했다. 최씨는 또 지난 4월19일 영장실질심사에서 “ㄷ사에게서 받은 10억원 가운데 2억5천만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홍걸씨 몫이었다”고 진술해 적어도 7억5천만원은 홍걸씨에게 건넸음을 내비쳤다.

일부 언론은 검찰이 최씨의 측근으로부터 “홍걸씨가 방학은 물론 다달이 한 차례 정도 입국해 최씨에게서 돈을 받아갔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씨의 측근은 “홍걸씨가 한번 귀국하면 4∼5일 또는 1주일씩 머물면서 최씨의 이권청탁이 오가는 자리에 합석해 자리를 지켰다”며 “사업내용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청와대의 한 친인척 업무 관계자는 “방학 때가 아니어도 부모 생일 같은 가족행사 때 귀국하곤 했지만 다달이 들어왔다는 건 과장된 얘기”라고 말했다.

지난 4월19일 최씨를 구속 수감한 검찰은 수사 초기부터 예기치 못한 짐을 떠안았다. 최씨가 청와대 관계자의 ‘해외도피 종용설’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최씨는 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 소환 직전 청와대 이만영 비서관이 경찰청 특수수사과장 최성규 총경을 통해 해외도피를 권유했다”며 “이 비서관이 ‘부산에 밀항선을 준비해놓았다’는 얘기까지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최씨의 주장은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청와대가 최씨를 해외로 빼돌리려고 했다”는 야당의 공세가 시작되면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뒤뚱대는 검찰… 국정원장에 구명 요청


사진/ 김홍걸씨 검찰 소환이 다가오는 가운데 수행비서의 일정 유출 등이 불거져 김대중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이용호 기자)


그러나 이만영 비서관은 해외도피 종용설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이 비서관은 “몇년 전 밥 한번 같이 먹은 것밖에 없는 사이인데 어떻게 밀항을 종용할 수 있겠느냐. 삼류 추리소설과 같은 얘기다”라며 펄쩍 뛰고 있다. 지금으로선 미국으로 도피한 최 전 총경이 귀국하지 않는 한 내막을 파헤치기는 불가능하다.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힘든 최씨의 입만 맥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과연 밀항선은 최씨의 머리 속에서만 떠 있었을까, 아니면 실제로 부산 앞바다에서 출렁이고 있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최규선씨가 권력의 핵심부인 청와대 곳곳에 자신의 촉수를 뻗치고 이들을 관리해왔다는 점이다.

국정원과 경찰도 최씨의 활동반경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최씨는 검찰 소환을 앞두고 대책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신건 국정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구명운동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신 원장은 “대통령 아들과 관련한 문제인 것 같아 전화를 받았을 뿐”이라며 “‘검찰에 출두해 떳떳하게 대처하라’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고 해명했다. 재미있는 건 최씨가 신 원장에게 자신을 밝힐 때 “김 이사”로 표현했다는 사실이다. ‘최씨’를 ‘김씨’라고 말해도 통할 수 있는 두 사람의 정확한 관계는 무엇일까. 그 실상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들이 수시로 중요한 문제를 상의해왔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두 사람의 공식적 관계는 대통령 인수위 시절 함께 일한 게 전부다.

최씨는 경찰 정도는 수족처럼 부리며 사실상 수사를 진두지휘하지 않았느냐는 의혹도 사고 있다. 천호영씨 형제의 최씨 협박 혐의를 수사하는 경기 분당경찰서의 행태는 매우 전격적이었다. 최씨의 신고전화를 받고 천호영씨의 동생을 룸살롱에서 긴급체포하고, 잠복근무까지 해가며 천씨를 붙잡은 분당경찰서의 활동은 공갈사건을 다루는 경찰의 일반적인 행태에 견줘 지나치게 ‘의욕적’이었다는 지적이다. 최씨는 분당경찰서장의 보직을 변경해주는 댓가로 2억5천만원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대중 정권의 핵심 실세인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쪽에도 그는 촉수를 뻗쳤다. 최씨는 1998년 가을 한보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일본에 머무르던 권 전 고문을 찾아가 그의 특보가 됐다. 최씨는 2000년 가을 자신의 신분을 과장해 항공사에 VIP로 등록해놓고 특별대우를 받은 점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권 전 위원 특보자리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최씨는 권 전고문을 떠난 뒤에도 권 전고문의 수행비서 문아무개씨에게 고급 승용차까지 선물하며 관리해 끊임없이 여권 실세들의 동향정보를 얻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권력층 친분이면 무엇이든 통하는 나라


사진/ 지난 4월 19일 구속 수감되는 최규선씨. (김종수 기자)


검찰의 핵심 수사대상은 최씨가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에 어떻게 간여했는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셋째아들 홍걸씨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규명해내야 한다. 그러나 그를 구속시키기 위해 구속영장에 적시한 것은 아파트 건축사업 과정에서 인·허가 청탁 등의 대가로 10억여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충처벌법상 알선수재)다. 검찰이 아직 사건의 핵심으로 접근해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이 사건의 본질을 보여주는 단서는 최씨의 구속과정에서 이미 드러났다. 다름 아닌 권력층과의 친분을 내세워 이권에 개입한 수법이다.

최규선 게이트가 터지자 대통령과 여권을 향해 맹공세를 가하던 한나라당이 게이트 의혹의 한 장본인이 됨으로써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가뜩이나 조직의 명운을 걸고 수사를 해야 하는 검찰 처지에서는 야당의 관련 여부까지 수사해야 하는 엄청난 부담을 새로 떠안게 됐다. 설훈 의원이 “이회창 전 총재가 윤여준 의원을 통해 최규선씨에게서 2억5천만원을 받았다”고 폭로하자, 야당은 느닷없이 대통령의 ‘내정권한 사용 중단’이라는 사실상의 하야 요구와 이를 압박하기 위한 탄핵소추 검토라는 배수진을 치고 나왔다.

그러나 설훈 의원의 폭로를 둘러싼 진실게임에서 한발 물러나서 보더라도, 여·야를 가리지 않은 최규선씨의 처세술은 새삼 혀를 내두르게 한다. 최씨는 1997년 15대 대선 직전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의 보좌역이라는 직함으로 처음 정치권에 들어섰지만, 96년 말 당시 여권 실세인 최형우 신한국당 의원에게 먼저 줄을 댄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최 의원 쪽을 찾아가 미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보브 돌 의원과의 면담을 제안했다는 게 최 의원 측근의 전언이다. 그러나 최 의원이 97년 3월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최씨는 정반대 쪽인 김대중 총재 진영으로 건너갔다.

최씨의 전력은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 있다(상자기사 참조). 그런데도 여와 야를 가리지 않고 권력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그의 ‘말발’이 통했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 최씨는 권력층에게 접근하는 데 늘 자신의 국제적인 인맥을 활용했다. 97년 외환위기 때는 조지 소로스 미 퀀텀펀드 회장, 알 왈리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등 국제 금융계의 거물들을 초청해 김 대통령에게 소개했다. 최근에는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하던 홍사덕 의원에게 접근해 자신의 미국 내 정·관계 인맥을 과시하며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적 신약에 한국적 처방의 합작품


사진/ 한나라당도 최규선 게이트 화염에 휩싸였다. 지난 4월 15일 열린 한나라당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구호를 외치는 참석자들. (한겨레 이종근 기자)


한국사회 권력자들의 사대성을 파고들어 자신의 국제적인 인맥을 십분 발휘한 최씨는 다시 이들의 이름을 팔아 권력 앞에 약한 한국사회의 약점을 파고들며 치부에 매달렸다. ‘국제적’이라는 신약과 ‘한국적’이라는 민간처방을 총동원해 한국사회를 등쳐먹은 것이었다. 최씨는 마치 자신의 처세술을 과시하려는 듯 검찰에 출두할 때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라는 책을 손에 들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L. 프리드먼이 쓴 이 책은 세계화의 거대한 조류와 이에 저항하는 반세계화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가 구속될 때 그 책은 더 이상 그의 손에 들려 있지 않았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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