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04월24일 제406호 

김홍걸 버티기, 이젠 늦었다

최규선 게이트 관련 검찰 소환 임박… ‘부적절 합의’에 거액 수수설 모락모락

최규선 게이트는 김홍걸 게이트로 활활 번져갈 것인가.

최규선씨와 한나라당의 잇단 폭로가 김대중 대통령의 셋째아들 김홍걸(39)씨를 점점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무차별 폭로는 이제 김홍걸씨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 수위 또한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검찰은 홍걸씨 소환절차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홍걸씨 문제는 잊혀진 주제였다. 이신범 전 한나라당 의원이 2000년 2월 국회 대정부 질의서에서 김홍걸씨 부부가 로스앤젤레스(LA)의 호화주택에 살고 있다고 폭로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이 전 의원은 무모한 폭로전이나 벌이는 저격수라는 여당의 집중공격을 받았고, 4·13 총선에서 낙선했다.

합의금 55만달러 출처에 쏠린 의혹


사진/ 검찰 소환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김대중 대통령의 3남 김홍걸씨.


그 뒤 미국으로 건너간 이씨는 홍걸씨와 관련한 각종 자료를 수집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리고 홍걸씨를 미국 법정에 고소했다. 이씨의 소송 진행과정은 좀 복잡하다. 이 전 의원의 첫 소송 상대는 홍걸씨가 아니었다. 이씨는 2000년 2월 폭로 직후 자신의 폭로를 허위적 정치공세라고 보도한 LA 한인방송 를 상대로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씨는 이 소송과정에서 홍걸씨 부부의 법정 증언을 신청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이씨는 이 소송에서 패해 11만5천달러를 물어주게 되었다.

그는 패소 직후인 2001년 1월3일 이번엔 김홍걸씨 부부를 상대로 ‘증언 거부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을 LA 법원에 제기했다. 소송 넉달 만인 5월17일 이 전 의원과 홍걸씨는 합의에 이른다. 이신범씨는 “내 변호사비용과 증언신청 철회비용 11만달러와 에 물어줘야 할 돈 11만5천달러에 손해보상비를 더해 모두 55만달러를 받고 소송을 취하하기로 합의했다”며 “이 가운데 11만달러를 먼저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11만달러는 변호사에게 바로 넘어가 내가 직접 받은 돈은 한푼도 없다”고 덧붙였다.

합의는 오래가지 못했다. 합의 일주일 만인 5월24일 이씨는 서울지검에 의해 옷로비 관련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홍걸씨가 직접 그를 고발한 것은 아니었지만, 배신감을 느낀 이씨는 7월24일 다시 김홍걸씨와 김씨의 어머니 이희호씨 등을 상대로 계약위반과 사기 등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LA법원에 냈다. 이희호씨는 재판관할권이 없음을 주장해 빠졌지만, LA에 거주하던 김홍걸씨는 다시 피고소인이 됐다. 그 뒤 지루한 소송공방을 계속 해오고 있다.이씨와 김씨가 돈을 건네주고 받기로 합의한 사실은 가 맨 처음 보도했지만, 국내에선 이슈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최규선씨 사건으로 홍걸씨의 비리 연루의혹이 불거지면서 새삼스레 다시 현안으로 떠올랐다. 수십만달러의 거액을 주고 합의하기로 한 것은 홍걸씨 쪽에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또 학교 연구원 신분으로 큰 수입이 없는 홍걸씨가 어떻게 거액의 합의금을 마련할 수 있었는가 하는 의혹도 함께 제기됐다.

홍걸씨 쪽의 다급한 합의와 관련해서 청와대 쪽은 “이신범씨가 워낙 집요하게 사생활을 폭로하고 괴롭혀서 어쩔 수 없이 응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민주당 김성호 의원은 “일단 소송이 걸리면 재판에 출석하지 않을 경우 무조건 지게 돼 있는 미국 사법제도의 특성을 악용하였다”며 이신범씨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전에는 주목받지 못하던 김홍걸씨의 여러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별다른 돈벌이가 없는 홍걸씨가 어떻게 2001년 5월 LA 고급 주택지인 팔로스버디스에 97만5천달러(약 12억6700만원)짜리 집을 살 수 있었는지에 대한 원초적 의구심이 번졌다. 청와대는 “일시불로 37만5천달러를 내고 60만달러는 융자받아 샀다”고 밝혔지만 이번엔 일시불로 낸 현금의 출처와 융자과정에서의 의혹들이 새롭게 제기됐다. 한나라당은 목포출신 무기중개상 조아무개씨의 연관설을 제기하고 나섰다. 반면 청와대 쪽은 “일시불은 친지에게서 빌린 것인데, 원래 갖고 있던 37만5천달러짜리 집을 팔아 갚을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로비 현장에 최규선씨와 동석했다?

60만달러 융자과정 또한 문제투성이로 드러났다. 야당은 홍걸씨가 융자서류에 국적을 미국으로 거짓 표기했다며 도덕성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신범 전 의원은 “국적 허위기재는 이민법 위반이자 융자사기로 중대한 범죄”라며 “미연방수사국(FBI)에 김씨를 고발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부동산회사가 융자를 쉽게 받기 위해 알아서 쓴 것”이라고 해명했다. 야당은 나아가 “홍걸씨가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며 서류에 아시아나항공 미주본사에 근무하고 있다고 허위기재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만약 홍걸씨와 아시아나 쪽이 공모했다면 대통령 아들의 지위를 이용한 또 다른 범법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시아나 쪽은 “홍걸씨를 취업시키거나 도와준 사실이 전혀 없다”고 강력히 이를 부인했다.

홍걸씨가 55만달러의 합의금을 약속하고 실제로 11만달러를 지불한 사실과 관련해서도 의혹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11만달러의 자금출처에 대해 청와대 쪽은 “일단 미국의 지인에게 빌려 돈을 준 뒤 일산에 갖고 있던 땅을 팔아 갚았다”고 서둘러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최규선씨가 홍걸씨에게 돈을 줬다는 폭로성 발언이 나오면서 홍걸씨의 자금원이 바로 최씨가 아니겠느냐는 의혹이 곧바로 제기됐다.

최규선씨는 그동안 몇 차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홍걸씨에게 수시로 용돈을 줘왔다고 밝혔다. 그가 밝힌 액수는 7만달러(9천만원)에서 9억원까지 오락가락한다. 그러나 검찰 수사에서 그는 결정적인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구속영장에서 “최씨가 각종 이권에 개입해 10억원을 받아 챙겼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씨는 법원 영장실질심사에서 “이 가운데 2억5천만원만이 내 몫이며, 나머지는 홍걸씨 것”이라고 진술했다. 정황도 매우 구체적이다. 검찰은 홍걸씨가 지난해 15차례나 귀국해 수시로 최씨와 접촉했고, 로비현장에도 최씨와 함께 있다는 최씨 측근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은 “홍걸씨가 최규선씨 돈을 믿었기에 선뜻 거액의 합의금을 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맹공세를 퍼붓고 있다.

지금껏 나온 혐의만으로도 홍걸씨에 대한 소환조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받고 있는 여러 의혹 가운데 하나라도 사실로 드러난다면 사법처리 또한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코끝을 겨눠오는 검찰의 칼날에 청와대의 표정은 어두워져 가고 있다. 홍걸씨는 김 대통령 현 부인인 이희호씨와의 사이에 난 유일한 아들이다. 80년대 초 김 대통령이 엄혹한 정치적 탄압에 시달릴 때 사춘기를 보냈다. 김 대통령은 한창 민감한 시기에 그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가슴 아파했다고 한다.

“순진한 홍걸씨 처세의 달인에 당한듯”

홍걸씨는 일찍 유학을 간 탓에 그동안 국내 사정기관의 관리대상에서 사실상 벗어나 있었다. 그는 고려대 불문학과(82년 입학)를 나와 91년에 부산 출신 임미경씨와 결혼했다. 김 대통령 당선 전인 94년 미국 유학을 떠난 이래 계속 LA 인근에서 살아왔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국내의 홍일씨와 홍업씨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홍걸씨에겐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소송 당사자인 이신범씨도 “원래 순진한데다 외국에 오래 나가 있어 물정을 잘 몰라서인지, 사람들이 찾아와 ‘김 박사님’ 하며 90도로 절하니까 그만 넘어간 것 같다”고 그를 평가했다. 그가 돌아와 검찰의 수사대상으로 입을 열어야 할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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