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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하다 잡혀도 또 탈북 한번 맛본 자유 잊지 못해… 북한 당국의 느슨한 처벌과 감시로 월경은 식은 죽 먹기
중국에 가면 식량난에 허덕인 탈북자들을 만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다른 목소리를 냈다. “내래, 답답해 도무지 못살겠습데다.” “그렇게 죽기는 정말 싫었숨네다.” 선택한 단어는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마음은 모두 한길로 통했다. 한번 맛본 자유와 풍요를 잊을 수 없다. 처음 조국을 떠나는 게 어렵지 한번 탈북하면 도저히 북한에 정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 곳곳에서 만난 탈북자 대부분은 한번쯤 북송된 경험이 있었다. 이들은 요즘 국경을 넘는 북조선 사람들은 모두 재탈북자라 전했다. 실제 탈북행렬의 큰 흐름은 이미 재탈북으로 바뀌고 있었다.
“탈북자 가혹한 처벌” 사실과 달라
북송된 탈북자들은 리씨와 비슷한 생각에 빠진다. 동행한 김형덕씨는 “중국에서는 구걸을 해도 김정일 생일 때보다 훨씬 잘 먹을 수 있다”며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천당과 지옥이 엇갈린다는 사실을 체득한 이들이 궁핍한 북한에서 계속 머물기는 어렵다”고 해석했다. 조국을 배신했다는 이웃 주민들의 멸시도 재탈북을 부추긴다. 그러나 재탈북 행렬은 북한 정권의 관대한 처리와 체제 이완에 따른 감시소홀 탓이 더 크다. 베이징, 상하이, 지린, 창춘 등 중국 전역에서 검거된 탈북자들은 해란강이 흐르는 옌지시 룽징에 위치한 중국군 변경부대 집결소로 이송된다. 변방감방으로 불리는 곳이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토성으로 둘러쌓인 이곳은 남자방 6개, 여자방 4개 등 모두 10개로 이뤄졌고, 각 방마나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한 방에 보통 8∼10명씩 수용되며 아침저녁 두 차례 쌀죽이 제공된다. 중국 정부는 이곳에서 중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탈북자만 가려낸 뒤, 나머지는 한달 안에 모두 북송한다. 보통 2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버스로 개산툰, 투먼, 숭선을 거쳐 북으로 보낸다. 중국과 북한을 잇는 다리나 철도가 있는 곳이다. “북한은 탈북자들을 가혹하게 처벌한다.”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식이다. 그러나 현실은 좀 달랐다. 대량 탈북이 시작된 97년 초반 북송된 탈북자들은 북한군에 인계되는 즉시 구타를 당하고, 코가 꿰어 끌려가는 경우도 있었단다. 그러나 재탈북자들은 이제는 그런 일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리연숙씨는 “기독교를 믿거나 남조선 사람을 만난 경우, 인신매매에 걸린 일이 없으면 도집결소에서 며칠 보낸 뒤 풀어줍네다”라고 말했다. 몇몇 재탈북자들은 지난해 10월부터 북조선 군인들이 “장군님께서 먹고살갔다고 넘어간 인민들은 그대로 고향으로 돌려보내라는 방침이 내려왔다”면서 중국에서 가져간 돈이나 물건을 빼앗는 일도 줄었다고 전했다. 북한 정권도 생계형 탈북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북한·중국 넘나들며 가족생계 책임지는 이들도
물론 예외는 있다. 한국인과 만났거나 김정일 체제를 비난한 행적이 확인되면 즉시 정치범으로 분류된다. 가혹한 형벌도 뒤따른다. 그러나 재탈북자들은 “북조선에 넘겨지면 보위부에서 한국사람과 만난 일이 있는지 집중적으로 따진다”며 “먹고살려 국경을 넘었다고 버티면 큰일 없다”고 전했다. 얼마든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절차가 끝나면 시집결소에서 도집결소를 거쳐 노동교화소로 보낸다. 탈북기간과 행적에 따라 단기 2주, 길어도 반년 정도만 지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고향에서도 감시는 체계적이지 못하다. 탈북자들은 안전부에서 가끔 점검하지만 자아비판서만 쓰면 심각하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불완전하나마 한번 맛본 풍요와 자유를 잊지 못한 북송 탈북자들은 이런 감시소홀을 틈타 곧 다시 탈북자 대열에 합류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최근 북한과 중국을 넘나들며 북쪽에 남아 있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4월1일 옌지에서 만난 리옥순(가명·66)씨. 4년 전 북한 회령에서 탈북한 그는 “지금까지 두번이나 북한에 갔다왔다”며 “갈 때마다 빌어모은 인민폐 1천원 정도를 딸들에게 주고 온다”고 말했다. 옌지시 중심가 한 은신처에서 만난 리현철(가명·21)·김진혁(가명·20)씨도 “얼마 전 북조선에 있는 가족들에게 몇백원씩 주고 왔다”고 자랑했다. 중국돈인 인민폐 1천위안은 우리도 17만원이다. 북한에서 한국돈 2만원 정도면 한 가족이 한달을 버틸 수 있는 만큼 이들이 가져다준 돈은 주민들의 생계에 적잖이 보탬이 된다.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 가운데는 이것을 종잣돈 삼아 농민시장에서 쌀이나 식료품을 사고 팔며 부를 축적하는 일도 적지 않다. 리현철씨는 “몇백원이면 큰돈은 아니라도 좀장사(작은 규모의 장사)는 할 수 있습네다”라고 말했다.
중국 가면 예수님이 살려준다?
국경경비를 맡은 북한군들조차 돈을 받고 탈북자들의 입국을 눈감아준다. 적어도 탈북자들 사이에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4년 전 탈북한 뒤 국경의 북한군과 연계해 탈북자들의 귀환길을 주선하고 돈을 받는 김일용(가명·24)씨는 최근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군대도 먹고살아야잔슴메. 들어갈 때와 나갈 때 100원씩 주면 아무 일 없숨네다. 요즘 정세가 긴장되니까 군인들이 200원을 달라거나 테레비를 가져다 달랍 졸 ??? 골아픕네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탈북자들에게 돈을 주고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한 선교활동을 벌이는 교회들도 있다. 탈북자를 모아 성경공부를 시킨 뒤 1년에 1만5천위안 정도를 주면서 선교에 나서도록 한다는 것. 김일용씨도 “교회에서 부탁해 북한에 들어간 적이 있다”고 전했다. 다른 탈북자들도 국경 인접 도시에는 중국 가면 예수님이 살려준다는 소문이 퍼져 있고, 몰래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40대 중반의 한 재탈북자는 “요즘 북조선에 붙잡혀갈 때 성경공부한 사실을 숨기면 더 의심을 받습네다”라고 말했다. 이미 북한 보위부 등에서 교회가 탈북자들의 생존공간이라는 점을 알고 있고, 이를 숨기면 오히려 한국사람들과 접촉한 것으로 의심한다는 것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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