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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등록 2002.03.20(수) 제401호

[표지] 이회창은 떨고 있다

노무현 돌풍에 한나라당 대선전략 흔들려… 영남권 3자 연대 차단에 당력 집중

“새로운 강적 출현인가, 아니면 좀더 손쉬운 상대인가.”

민주당 광주 경선 이후 한나라당 안에서 이른바 ‘노무현 돌풍’이라는 고차방정식을 놓고 머리를 쥐어뜯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경선 초반부터 “노무현이 약진하면 밤잠을 못잘 것”이라고 말하는 당직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극소수. 결론도 하나같이 “걱정없다. 후보가 될 수 없을 테니”였다. 이 총재와 한나라당 당직자들 마음속에는 오직 한 명의 맞수, 이인제 후보가 자리잡고 있었다.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이 총재와 이 후보의 맞대결을 대전제로 대선 전략·전술을 가다듬었다. 지난해 8월 당 기획위원회는 ‘여권 대선논리 검토’라는 종합보고서를 만들었다. 예상되는 민주당 각 주자별 장단점을 일별했지만 초점은 이인제 후보였다. 대응법은 간단명료했다. “HC(이회창 총재)를 ‘가부장적 사고’의 지도자로 몰면서 자신은 ‘산업화 세대’의 지도자라고 주장, 통일·정보화 혁명 등 범국민적 이슈 선점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분석한 뒤 “태생적 한계를 덮을 만한 뚜렷한 논리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97년 신한국당 경선불복 전력과 영남에 퍼져 있는 ‘이인제 학습효과’를 자극해 지역대결 구도로 몰고가면 쉽게 꺾을 수 있다는 논리다. 이 총재 주변 참모들은 “이미 97년 대선에서 한번 상대했고,당 차원에서 다양한 공격자료를 쟁여두고 있다”며 “단박에 날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노무현과의 양자대결 구도에 불안감

그러나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국민경선을 타고 불어오는 ‘노무현 돌풍’이 심상찮기 때문이다. 대선전략을 책임진 윤여준 기획위원장은 “현재 민주당 경선 추세가 계속 되면 대선전이 이 총재와 노 후보 양자대결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대선 시나리오를 새로 짜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부는 아직 노무현 방정식에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 후보가 이 총재의 대선가도에 독이 될지,약이 될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준비가 부족하다. 한나라당 내부갈등만큼 그의 폭발력에 대한 진단과 해법도 제각각이다.

주류인 영남 민정계 의원들은 노 고문을 손쉬운 상대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른바 ‘DJ머슴론’과 ‘보-혁대결’로 얼마든지 노무현 돌풍을 잠재울 수 있다고 자신한다. 영남 출신의 한 부총재는 “노무현은 결국 호남 베이스의 당 후보고,이 총재는 영남 베이스의 당 후보일 수밖에 없다”면서 “노무현이 민주당 후보가 되면 영남표가 이탈할 것이라는 주장은 이론적으로나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그는 “노무현은 이인제 필패론에 위기를 느낀 민주당이 띄우는 와일드카드일 뿐”이라고 깎아내렸다. 출신지만 영남일 뿐 호남당인 민주당에 기반한 만큼 DJ정권 연장론 앞에 무력화된다는 것이다.주류세력은 영남에 뿌리깊은 ‘반DJ정서’와 ‘정권 재탈환 열망’은 결코 노무현 변수로 깨지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이들은 오히려 노 고문이 후보로 확정되면 보수 대 혁신의 이념대결 구도를 몰고갈 수 있다고 낙관한다. 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크고 충성도도 높지만 실제 유권자의 30%를 넘지 않는다는 대전제가 낙관론의 버팀목이다. 노 고문이 민주당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벌써 불안감을 느낀 재계와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이회창 밀어주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류 쪽의 이런 계산법을 낭만적 주관주의로 평가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비주류 좌장격인 이부영 부총재는 “노무현이 지금은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해 강경한 색채를 보이지만,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는 순간부터 중도노선을 표방할 것”이라며 “개혁 대 보수의 단순구도를 예상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고 말했다. 개혁성향의 한 재선 의원은 아예 “한국의 보수세력은 국민들에게 도덕성을 상실한 집단처럼 비친다”며 “노 고문과 이 총재의 대결은 21세기형 새 정치세력과 80년대식 낡은 정치세력의 경쟁구도로 흐를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전망했다. 그는 “주류를 자칭하며 이 총재의 낡고 수직적 리더십과 대세론에 안주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영남지역 구여권인사들은 노무현 약진이 얼마나 긴박한 상황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당을 망치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지역구도 작동 막혀 영남권 지위 상실

이 총재의 주변 측근참모들은 이런 복잡한 상황만큼이나 고민도 깊다. 일단 노무현 적색경보를 발령했다. 그가 민주당 후보로 최종 확정되는 순간 대선전략의 근본인 지역구도가 작동하지 않을 것을 가장 우려한다. 한 참모는 “‘한나라당=영남당’, ‘민주당=호남당’의 단순 논리로 영남을 지키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적 결집력이 강한 30대를 중심으로 세대교체 바람이 불면서 DJ에 실망해 이탈하던 민주당 지지세력과 새 정치를 열망하는 비구여권 세력이 결집하는 상황도 걱정이다. 특히 30대의 바람이 인접한 20대와 40대로 연쇄 확산될 경우 타격이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정치력 복원을 위해 활발히 움직이는 YS나 영남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는 박근혜 의원과 노 후보의 결합은 상상하기조차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 총재의 다른 측근 참모는 “그런 상황이 온다면 사실상 게임은 끝난다”며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안 없는 영남의 대표주자로 ‘반DJ표’를 결집해 집권하려는 이 총재의 전략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때문이다.

YS와의 연대는 단순 가설이 아니다. 노 후보는 사석에서 “후보가 되면 당당하게 YS를 찾아가 화해를 모색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명분은 87년 대선 이후 갈라선 영·호남 민주화 세력의 재결합을 통한 개혁 완수. 이 카드는 부산 민주계를 뒤흔들어 한나라당을 급격히 붕괴시킬 수도 있다. 이 총재 진영은 손에 땀이 흐를 수밖에 없다. 열쇠는 YS의 태도. 대변인 격인 박종웅 의원은 “상황이 워낙 유동적이라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를 아직 확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노 후보 부상은 영남여론을 변화시켜 이 총재의 지지 기반을 상당부분 잠식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 의원은 특히 “YS는 노 후보의 정치적 스승이자 은인인 만큼 못 만날 이유가 없다”고 문을 열어놨다. 노 후보는 90년 1월 3당합당을 거부하고, YS와 결별하기 전까지 정치적 행보를 함께 했다. 인권변호사인 그를 발탁해 의원에 당선시킨 것도 YS다.

김덕룡 ·홍사덕을 신당에 보낸다?

박근혜 변수는 계산이 좀더 복잡하다. 이 총재의 측근참모들은 SBS에 이어 문화방송, 한국방송 여론조사에서도 이 총재와 노 후보의 양자대결 구도일 경우 이 총재가 지는 것으로 나오자 경악하고 있다. 박근혜 의원이 출마하는 ‘3자 대결구도’로 끌고가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다. 당 일각에서는 탈당설을 흘려온 김덕룡·홍사덕 의원을 내보내 박 의원의 신당 창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하지만 박 의원의 대선 출마가 어느 쪽에 도움을 줄지 확실치 않아 고민이다. 박 의원과 노 후보 모두 영남 출신이지만 지지층은 명확히 차별화돼 있다. 반면 이 총재가 기대를 거는 영남의 보수표는 박 부총재의 지지기반과 대부분 겹친다. 3자 대결구도를 만들기 위해 박 의원을 너무 부추기다 자칫 이 총재의 영남표만 깎아먹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빌라게이트 등 이 총재 도덕성 시비, 잇따르는 측근정치 청산 요구, 경선과정 불협화음 등으로 가뜩이나 휘청거리는 한나라당에 노무현 돌풍은 엄청난 충격이다. 몇몇 측근들은 아예 “상황이 유동적인 만큼 당을 비상체제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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