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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 등록 2002.03.20(수) 제40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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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고난의 응어리가 풀리고 있다” 인터뷰 ㅣ 노무현 민주당 고문의 부인 권양숙씨
노무현 민주당 고문의 부인 권양숙(55)씨에 대해서는 그동안 밖으로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권씨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지난 1950년대 말 당시 경남 창원군 진전면에서 진영읍으로 이사하면서 한동네에 살던 노 고문을 처음 만났다는 것과,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부산에서 생활하던 권씨가 할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고향 마을에 돌아왔다가 당시 군에서 제대해 집에 머물고 있던 노 고문을 다시 만나 열애 끝에 70년 결혼해 1남1녀를 두었다는 정도가 권씨에 대해 알려진 전부다. 노 고문이 광주지역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16일 <한겨레21>이 요청한 인터뷰에 대해서도 권씨는 “정치인은 남편이지 내가 아니다”며 극구 사양했다. 대전지역 경선을 치른 17일 오전 어렵사리 권씨를 만났다. 하지만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활달한 성격 탓인지 권씨는 쉽게 말문을 열었다. 행사 시작을 불과 1시간여 앞둔 시간이어서 인터뷰는 숙소인 유성관광호텔에서 경선 장소인 엑스포무역전시관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뤄졌다.
노 고문이 정계에 진출하겠다고 나섰을 때, 혹시 반대하지는 않았나. 재야활동을 하던 지난 87년 정치권에서 영입제의가 들어왔다. 그때는 정치란 돈 많고 집안 좋은 사람들, 대단한 사람들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재야에서도 만류를 했고, 처음에는 나도 반대했다. 노 고문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88년 5공비리 청문회가 아닌지 싶다. 가족생활에 변화는 없었나. 그전에도 부산에서야 잘 알려져 있었지만, 청문회가 전국에 생방송되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지고 관심이 커지면서 생활에 큰 변화가 생겼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너무나 순식간에 변화가 일어나 사실 많이 힘들기도 했다. 가족끼리 나들이하기를 좋아했는데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아이들이 함께 외출하는 것을 꺼렸다. 당시 중1·중3이던 아이들도 학교에서 부담이 많이 됐을 것이다. 노 고문이 민주당 공천을 받아 부산에서 국회의원·시장 선거에 나서 연거푸 낙선했을 때 심경은 어땠나. 주위에서 도와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선거 직후에는 오히려 그분들을 위로하기 바빴다. 이미 각오는 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기는 했지만 사실 힘들었다.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낙선한 뒤 남편에게 “이제 그만두자”는 얘기도 했다. “당신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않느냐”고, “세월이 가면 지역감정도 수그러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런 말에 남편은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광주지역 경선에서 노 고문이 1위를 차지하면서 ‘지역주의가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광주 경선결과가 발표된 뒤, 뭐랄까, 한동안 맺혀 있던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남편이 힘들면 부인도 힘든 법이다. “왜 당신만 이러느냐”고 탓도 했다. 쉽게 당선될 수 있는 보궐선거 기회도 뿌리치고 부산으로 내려갈 때 말리기도 했다. “사람은 좋다”고 애정을 표하기도 하고, 지지자도 많았지만 당 간판 때문에 번번이 힘에 부쳤다. 광주 경선을 지켜보면서 그동안 남편이 해온 일에 대한 평가를 받은 것 같아 마음 한구석에 있던 답답함이 사라졌다. 노 고문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가 있다.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노 고문은 어떤 사람인가? 밖에서는 ‘고집이 셀 것 같다’고도 하고 ‘날카로운 사람’이라는 말들도 하는데, 내 입장에선 전혀 이해가 안 된다. 집안에서는 아이들 야단도 안 치고 아주 조용한 사람이다. 부부싸움이라고 해봐야 가벼운 말타툼 정도가 고작이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는 함께 쇼핑을 자주 다녔다. 아이들 옷도 사 입히고, 살림 장만하러 다니고 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요즘도 아이들과 함께 연극이나 영화 보러 가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정치권에 진출한 직후부터 10여년째 왕성한 외부활동을 벌이고 있는 남편과는 달리 권씨는 바깥행사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이런 권씨에게 노 고문은 지난 94년 내놓은 수필집을 통해 <여보 나 좀 도와줘>(새터 펴냄)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권씨의 주변인물들은 이런 평가와는 조금 다른 얘기를 전했다. 노 고문이 정계에 진출한 뒤 6차례 치른 선거 때마다 권씨가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에 참여해왔다는 것이다. 노 고문의 한 측근은 “외부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평균 2년에 한번꼴로 선거운동에 참여해 경험이 많은 분”이라며 “경선이 시작된 뒤에는 주초부터 일찌감치 경선 예정지에 도착해 여성 대의원을 만나는 등 선거운동에 힘을 쏟고 있다”고 전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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