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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 등록 2002.03.13(수) 제40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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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미군 없는 한반도를 기획하자 이제는 찾아야 할 ‘독립적인 사고’… 한-미동맹 논리에서 벗어나 대안을 찾을 때
태어날 때부터 몸에 혹이 하나 있다고 치자. 일상에서는 불편을 못 느끼지만 어느날 혹이란 존재를 깨닫는 순간 그 혹은 곧 ‘불편’으로 다가온다.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이 꼭 그렇지 않을까. 물론 혹이 아니라 ‘이로운’ 것이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미군기지가 들어서 있는 지역의 주민이나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 등 몇몇 부류를 빼면 대다수 한국인에게 주한미군은 일상 삶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실체다.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김학묵씨의 말은 우리 마음 안에 주둔하는 주한미군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사석에서 얘기할 때는 (주한미군이) 이대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공적인 얘기로 들어가면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으로 굳어졌다.” ‘주한미군철수는 곧 국가이익에 반하는 것’이란 심리가 뿌리깊이 내면화됐다는 얘기다.
국방부는 ‘한-미동맹’의 새장 속에 갇혔다
그 결과 주한미군은 ‘연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움직일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져 왔다.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은 다시 말해 주한미군에 대한 일방적인 주장과 선전만이 판치고 진지한 논쟁은 없는 현실을 뜻한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함택영 교수는 “주한미군에 관한 한 국방부, 미국 정보부서 등에서 나온 일방적인 자료를 인용하고 또 그대로 베끼는 식으로 주둔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확대재생산돼 왔다”며 “이제는 진지한 논의를 통해 주한미군을 냉정하고 바라보고 그 대안을 모색해 나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주한미군에 대한 ‘치열한 논의의 부재’ 속에서 현상유지론만 되풀이돼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한미군을 어떤 관점에서 새롭게 성찰할 것인가.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안보를 무조건 미국에 의존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군사적 공백이 생겨 한반도가 불안해질 것이라는 주장에는 남북이 평화질서를 함께 구축해 나가는 ‘자주적 사고’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평화문제연구회 서보혁 회장은 “미국은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전제로 통일 이후 한반도 및 동북아 군사전략을 치밀하게 연구하고 있는 반면 국방부는 지금의 한-미 동맹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게 상책이라는 안이한 태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 기대는 안보관에서 탈피해 남북한이 군사적 신뢰구축을 통해 주한미군 문제를 풀어나가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더 나아가 이제 ‘주한미군 없는 21세기 한반도를 기획해 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그는 “주한미군을 앞세워 미국이 추구하는 군사전략이 우리의 생존권과 한반도 평화에 어떤 긴장을 낳고 있는지, 국민 개개인의 안보를 희생하면서 추구하는 국가안보가 바람직한지를 찬찬히 따져봐야 할 때”라며 “과장된 북한의 남침위협에서 비롯된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 평화지향적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없는 낯선(?) 한국’은 주한미군이 한반도의 군사적 갈등에서 비롯된 만큼 남북이 화해관계에 접어들수록 그 존재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실제로 북한의 총체적 국력침체 및 한국의 국방 현대화 속에서 주한미군의 기능은 대북억지력에서 북한을 완충지대 삼아 중국을 억지하는 쪽으로 전환되고 있다. 미국의 주한미군의 성격을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세력균형자 역할로 옮기면서 영구주둔론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여전히 한-미 동맹관계 속에 갇힌 채 한반도의 미래와 안전보장을 미군에 의탁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는 “한반도 주변의 위협은 과거와 달라진 게 전혀 없다. 그래서 주한미군은 여전히 주둔해야 한다. 미군이 나가면 그만큼 엄청난 국방비를 쏟아부어야 한다”는 국방부 관계자의 말로 확인된다. 물론 여기에 ‘주한미군이 없는 한반도’에 대한 주권국가로서의 고민은 아예 들어설 자리조차 없다.
중국 위협론 고리 삼은 미국의 전략
미군 없는 한국을 준비할 때 곧바로 제기되는 물음은 “과연 무엇을 위해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가”다. 이 때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불평등, 기지주변 환경오염, 미군 범죄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 나아가 남북통일과 연계해 주한미군을 포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경남대 함택영 교수는 “과거에는 한국이 위협받았을 때 미국이 도왔지만 지금의 한-미동맹은 오히려 미국이 다른 나라를 칠 때 우리가 말려들어가 미국을 도와야 하는 형국으로 바뀌고 있다”며 “그래서 한-미동맹은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한미군이 남북한 신뢰구축 및 군축 등 평화정착으로 가는 것을 오히려 가로막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유혹을 부추기면서 분단의 현상유지를 강화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주한미군이 미국 군사무기 판매체제의 통로로 작용하고 있다는 건 이미 상식이다. 외국어대 이장희 교수(법학)는 “남북관계 개선으로 주한미군 주둔 명분은 약화되고 있다”며 “냉전시대에 미국이 동북아에 닦아놓은 교두보를 일본, 중국에 빼앗가지 않으려고 북한을 빌미로 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위협론을 고리삼아 미국의 동북아 패권전략을 정당화시켜주고 있는 게 주한미군이란 얘기다. 주한미군 주둔의 또다른 명분인 동북아 세력균형자로서의 역할도 따져볼 대목이다. 주한미군이 빠져나갈 경우 과연 힘의 균형이 무너져 한반도에서 중-일간의 군비경쟁이 가속화하고 군사패권주의가 등장할 것인가. 김승국 박사(군사문제연구자)는 “일부에서 통일 이후까지 주한미군 주둔을 얘기하지만 지금은 동북아도 국경없이 자본이 넘나드는 시대”라며 “이를 감안할 때 미군 없는 동북아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군철수 이후의 동북아 불안은 미국이 만들어낸 일종의 ‘신화’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미군주둔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도 주한미군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를 본격화해야 한다.
반미와 친미의 대립을 넘어서는 길
미국이 우리와 협의없이 자국의 세계전략에 따라 미군 주둔과 철수를 결정할 것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연세대 노정선 교수는 “미국은 한국 자체의 상황과 무관하게 주한미군을 늘이거나 줄일 것”이라며 “이는 미국이 ‘한국이 요구하면 우리는 있겠지만 요구하지 않으면 나갈 것’이라고 늘 압박해온 데서 그대로 드러난다”고 말했다. 물론 우리쪽이 남아달라고 요구하도록 미국이 적절한 상황을 ‘조성한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그러나 이런 미국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우리 당국은 미군이 떠나면 안 된다는 주장을 더 적극적으로 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남북한의 군사적 신뢰구축으로 가는 길에서 주한미군 문제는 필연적으로 전면에 부상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과 한반도가 갈등관계에 놓일 가능성도 높다. 지금부터 ‘주한미군 없는 한반도’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건 이 때문이다. 정욱식 대표는 “당국이 주한미군 주둔 여부 등 근본문제에 대한 공론화 자체를 차단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당국과 시민사회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오가면서 주한미군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그동안 친미 대 반미의 이분법적 틀 안에서 주한미군 문제를 놓고 극단적인 대립만 되풀이해온 현실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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