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 등록 2002.03.06(수) 제39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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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DJ의 곡예비행 사내 내부반발 안 사면 미국 횡포… 청와대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김대중 대통령이 과연 미국산 전투기에 등을 돌릴 수 있을까?” 차기 전투기(FX)선정 사업을 둘러싼 사전 내락설, 외압·특혜설 등이 불거져 나오면서 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외견상 국방부가 기종을 결정하게 돼 있으나 대통령의 승인이 떨어져야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최종 결정권은 김 대통령이 쥐고 있는 셈이다. 김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FX 무기획득사업을 투명하게 원칙적으로 처리하라는 지시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투명한 선정…원론적 입장만 표명
하지만 측근들의 말에 따르면 김 대통령은 차기 전투기 선정을 놓고 깊은 시름에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잉사의 F-15K를 구입하자니 당장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공군 등 군 내부는 물론 국민의 거센 반발과 의혹을 살 게 뻔하다. 그렇다고 프랑스산 라팔을 들여오자니 미국의 횡포(?)가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동안 대북정책에서 일정한 성과를 봐야 하고, 월드컵 등 국제행사를 순조롭게 치르기 위해서도 미국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야말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최대 딜레마에 봉착해 있는 셈이다. FX 사업은 전반적인 국가이익은 물론 정권의 운명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자칫 대세를 거스르는 결정을 할 경우 현 정권은 물론 다음 정권에도 치명상을 줄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율곡비리사건을 뛰어넘는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FX 사업은 국방부가 4조3천억원을 들여 21세기 우주항공 강대국으로 뻗어나가기 위해 최신예 전투기 40대를 도입하는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FX 사업 추진을 계기로 첨단기술을 습득해 스스로 2015년까지 차세대 전투기를 만들어 보겠다는 야무진 복안도 갖고 있다. 미국 보잉사의 전투기 F-15K를 비롯해 프랑스 다소의 라팔, 영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4개국 컨소시엄사가 만든 유로파이터 타이푼, 러시아 수호이 SU-35 등 4개 전투기가 다음 한 세대 한반도 상공을 먼저 장악하기 위해 지난 2년간 치열한 다툼을 벌여왔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 보잉사의 F-15K와 프랑스 다소사의 라팔로 대상이 압축돼 있다. 국방부는 가격, 성능, 기술이전 요건 등에 대한 심사에다가 정책적 판단을 감안해 이르면 4월 말까지 이중 하나를 최종 선택할 요량이다. 정부의 고민은 미 보잉사의 F-15K전투기가 다른 경쟁 기종에 견줘 여러모로 도드라진 성능을 갖고 있지 않은 데서 출발한다. 만약 미국산이 빼어나다면 지금과 같이 이 눈치 저 눈치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가격이나 기술이전 등의 조건만 집중 협상하면 그만인 셈이다. 실제 차기 전투기를 직접 몰 공군 조종사들은 물론 상당수 전문가들은 F-15K가 지금 봐서는 우수한 기종이기는 하나 차세대 전투기감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이번에 선정될 전투기는 2040년까지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전자전 중심의 미래전을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F-15K는 적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몸은 최대한 숨기면서 적기를 먼저 포착해 쏘는 레이더와 스텔스 기능이 크게 떨어지는 게 최대 흠으로 지적되고 있다. 차세대 전투기는 북한뿐 아니라 일본, 중국 등을 견제할 수준의 성능은 갖춰야 한다. 공군은 내심 통일 후에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무력시위까지 벌일 가능성을 대비하고 있다. 이미 1980년대 중반에 F-15J를 도입, 운용하고 있는 일본은 점차 이들 전투기들을 창고 속에 밀어놓고 다음 세대의 첨단 미래형 전투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터에 한국 공군이 일본보다 한 세대 뒤진 F-15K를 차세대 주력기로 쓰겠다고 나선다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라고 공군쪽 관계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보잉사 배려, 안쓰러울 정도
더구나 F-15K는 미국 내에서도 연간 10여대의 생산계획밖에 없는 단종을 앞둔 기종으로 부품공급에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자주국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술이전 측면에서도 F-15K는 다른 기종에 비해 조건이 야박하다. 이는 <한겨레>에서 입수한 ‘차기 전투기 시험평가 결과보고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공군 차기 전투기 사업평가단(단장 신보현 공군 준장)이 작성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4개 업체의 전투기를 대상으로 현지에서 기능·특성·성능 등을 시험 평가한 결과 프랑스 다소사의 라팔기종이 모든 항목에서 1위를 차지했다. 또 보고서는 미국 공군이 운용하고 있는 F-15K 전투기가 오는 2030년에 사라질 예정이어서 한국 공군이 가격협상 결과 5조8천억원대로 알려진 F-15K를 도입할 경우 2030년 이후 부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다고 가격이 다른 기종에 비해 싼 편도 아니다. 최종 입찰가격은 F-15K의 경우 45억달러로 유럽 4개국 컨소시엄의 유로파이터의 46억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프랑스 다소의 라팔은 42억달러 규모다. F-15K는 국방부 기준가 32억달러(원화 4조1천억원)를 크게 웃돈다. 이런 상항에서 최소 12억달러의 국민 혈세를 더 쏟아부으면서까지 도입한 전투기가 차세대 전투기에 걸맞은 성능을 보여주지 못하면 두고두고 비난을 받을 판이다. 군사전문가들은 정부가 공정성 시비를 피하기 위해 이런저런 제스처를 쓰고 있지만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미국산 F-15K를 선택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모든 측면에서 미국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김 대통령으로서는 미국의 뜻을 공공연히 거스를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만약 김 대통령이 미국산이 아닌 프랑스산 전투기를 선정한다면 이는 과히 혁명적인 ‘신자주·독립선언’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어떻게든 미국 보잉사에 높은 점수를 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차마 눈뜨고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다. 이런 노력은 지난해 말 한·미 안보연례협의회(SCM) 이후 줄곧 강화돼 왔다. 당시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F-15K 구매를 노골적으로 요청해 왔고, 김동신 장관도 이를 뿌리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방부는 보잉사에 불리한 기술이전에 대한 평가 가중치를 줄이기도 했으며, 차기 전투기 사업을 전면 재검토한다고 했다가 부시 대통령 방한을 앞두고는 갑자기 강행쪽으로 방향을 틀기도 했다. 이것도 모자라 차기 전투기 기종선정을 불과 1개월여 앞둔 최근 극히 이례적으로 미 보잉사에 유리한 항목별 평가기준을 적용키로 해 특정업체 지원 의혹까지 사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각 기종의 평가항목별 최하점수는 0점이 아닌 60점으로 상향조정된다. 이럴 경우 선택사항들이 다른 기종에 비해 부족한 보잉사로서는 점수차를 좁혀 다른 기종과 오차범위 3% 안에 들게 돼 결국은 한국 정부의 정치적 배려를 입을 가능성이 높게 된다. 심지어 국방부는 처음 FX 사업을 국회에 보고한 자료 등에서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으로 이름 붙였다가 최근 평가작업이 임박하면서 ‘차기’로 수정해 미 보잉사 특정 업체를 배려한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F-15K가 차세대 전투기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다른 나라 입찰경쟁에도 영향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은 이번 차기 전투기 수주 경쟁에서 다른 나라들을 제치지 못할 경우 팍스 아메리카나 유지에도 큰 손상을 입을지 모른다고 크게 우려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보다는 비교적 쉽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한국에서조차 경쟁에서 질 경우 싱가포르, 네널란드 등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다른 나라에서의 입찰경쟁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다. 더구나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행태에 잔뜩 불만을 품고 있는 유럽이나 중동, 동남아 일부 국가들이 한국에서의 F-15 탈락을 계기로 미국산 무기를 멀리할 가능성도 높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미국의 더욱 집요한 한국 공세가 이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런 다급한 처지를 역이용해 국가 이익을 챙기는 고도의 외교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연 김 대통령은 어떤 묘수를 던질 것인가. 역사가 그의 지혜로운 결단을 지켜보고 있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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