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03월12일 제400호 

주한미군철수, 정말 안되는가

‘친미’를 왕따시켜놓고 ‘용미’와 ‘철미’가 거센 논쟁을 벌이다


사진/ (박승화 기자)


주한미군은 현실이다. 그 현실 위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대결, 화해와 갈등, 안정과 긴장은 비로소 경계를 긋는다. 그 현실로부터 한반도의 통일과 분단, 번영과 몰락, 희망과 절망이 규정된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추상이고, 관념이며, 하나의 신화다. 그 신화 속에서 주한미군은 불가침이며 불멸이 된 지 오래다.

<한겨레21>은 한반도와 우리 민족의 운명을 틀어쥐고 있는 주한미군을 추상과 관념, 신화의 영역에서 현실의 세계로 되돌리는 작업에 힘을 쏟고자 한다. 주한미군이 고래로부터 한반도에 존재한 것이 아니었듯이 영구히 주둔해서도 안 된다는 상식에서 출발해, 주한미군 철수의 현실적 가능성을 점검하고 공론화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편집자

우리 둘은 나름대로 애국자입니다. 애국열사의 삶을 좇을 배짱까지는 없지만, 친일파들의 죄상에 분노할 줄 압니다. 금메달을 빼앗긴 김동성 선수를 두고 ‘지고도 이겼다고 떼쓰는 ×이나 이기고도 졌다고 국기 팽개치는 ×이나’라고 이죽거린 신문 만평의 양비론을 주저없이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과 북 할 것 없이 우리 민족이 함께 행복하게 잘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 둘은 유독 한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을 보입니다. 주한미군 문제입니다.

우리는 ‘용미(用美)’씨와 ‘철미(撤美)’씨입니다. 우리 말고도 ‘친미(親美)’씨라고 한 사람이 더 있기는 합니다. 친미씨는 전부터 인생철학이나 가치관에서 우리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친미씨가 우리 셋 사이에 분위기를 압도했는데, 언제부턴가 차츰 왕따가 되어가는 듯합니다. 친미씨는 철미씨를 꼭 ‘반미’라고 부르거나 ‘친북’이라고 바꿔 부릅니다. 바꿔 부른 이름은 이 동네에서는 별명이 아니라 아주 심한 욕입니다.

미군철수 주장은 도박인가

철미씨도 친미씨에게 화를 내봅니다. 하지만 친미씨가 하도 오랫동안 그렇게 불러왔기 때문에 꽤 많은 사람들이 그 욕이 진짜 이름인 줄 압니다. 심지어 용미씨까지도 깜빡 할 때가 있을 정도이니까요. 그런 철미씨와 친미씨 두 사람 사이에서 용미씨는 난처할 때가 많습니다. 철미씨와 얘기라도 하려 치면 친미씨가 도끼눈을 치켜뜨니 찜찜한 노릇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친미씨의 눈치 안 보고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맘껏 나눠보기로 했습니다. 자주 얘기하다보면 서로를 좀더 잘 알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용미 나도 남한 군사력이 북한보다 앞선다는 얘기를 듣긴 들었다. 하지만 전쟁이란 게 ‘누가 더 힘이 세냐’ 견줘봐서 깨끗이 끝나는 문제라면 얼마나 좋겠냐. 근데 “너 죽고 나 살자”고 일으키는 전쟁만 있냐. “너 죽고 나 죽자”라고 일으키는 전쟁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 전쟁이 더 무섭다. 가뜩이나 북한은 자포자기 상태에 가깝다. 북한이 그런 전쟁을 일으킬 거라는 생각만 하면 난 끔찍하다. 너는 겁 안 나냐. 아직 남한의 군사력은 북한의 도발의도를 막을 만큼은 안 된다. 주한미군은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전쟁을 막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걸 잊지 마라. 지금 미군보고 나가라고 하는 건 국민 목숨을 걸고 도박하자는 얘기나 다름 없다.

철미 누가 지금 당장 나가라고 했냐. 지금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에 의한 전쟁 발발 가능성을 100% 틀어막을 수 없다는 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주한미군이 있다고 해도 사정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이미 한반도에는 누가 먼저 침략하든 일단 터졌다 하면 함께 죽을 수밖에 없을 만큼 엄청난 화력이 집중돼 있다. 주한미군이 있든 없든 상황은 마찬가지다. 아무리 주한미군이 세다고 해도 북한이 죽을 결심을 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지 않느냐.

북한의 오판? 미국의 오판?

용미 그래, 주한미군이 있어도 북한이 자포자기식 공격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확률을 단 1%라도 낮출 수는 있을 거다. 네 논리는 전쟁 가능성을 100% 틀어막을 수 없다면 그런 노력을 포기하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전쟁이 나면 모두 다 죽는다는 했겠다. 그렇기 때문에 단 1%라도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면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하는 거다. 그 방법이 비록 외국군 주둔이라 할지라도. 내 관점에서는 그게 바로 민족애와 인류애다. 알량한 민족 자존심이 다가 아니다.

철미 누가 자존심 문제라고 했냐. 진짜 문제는 주한미군이 전쟁 가능성을 줄인다고 볼 수 없다는 거다. 주한미군의 압도적 군사력이 북한을 더 도발하게 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살아보겠다고 군비를 더 늘리다 가뜩이나 피폐한 경제가 완전히 붕괴되면 그때야말로 북한이 전쟁을 생각하는 순간이다. 네 주장대로 단 1%의 전쟁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거라면 주한미군이 없는 게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마땅히 해봐야 한다.

용미 북한 경제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더욱더 주한미군이 필요하다. 그나마 주한미군이 있어서 남한의 군사비 부담이 줄어들었고, 그 여윳돈으로 북한을 도와줄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래서 대북 원조가 퍼주기라는 주장에는 나도 동의하는 게 아니다. 북을 도와주려면 주한미군이 있는 게 더 낫다.

철미 뭐? 지금 넌 우리가 주한미군 덕에 아낀 군사비로 북한을 도와주고 있다고 말하는 거냐. 계속 군비증강에 매달리게 해 경제를 피폐하게 만든 다음 원조를 해주는 건 병주고 약주는 꼴이다. 처음부터 병이 안 들게 해줘야지. 중요한 건 남과 북이 군비경쟁만 안 해도 남한은 물론 북한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거다. 그런데 주한미군 때문에 그렇게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해봤냐.

용미 지금 군축을 하자는 얘기처럼 들리는데…. 말이 쉬워 군축이지, 그게 지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냐. 줄인다면 누가 먼저 줄일 건데. 북한이? 아니면 남한이? 우리가 먼저 군축하면 북한이 오판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철미 북한이 오판할 수 있다는 건 막연한 가능성일 뿐이다. 그러나 미국이 오판할 가능성은 훨씬 구체적이다. 지금 남북관계 경색이 왜 일어났는데.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때문이라는 건 너도 모르지 않을 거다. “전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가 “전쟁 의사가 없다”고 말을 바꾸는데, 또다시 말을 바꾸지 말라는 법이 없다. 1%라도 전쟁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있다는 미군이 오히려 전쟁 위기를 몰고 오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겠냐. 미국은 94년과 98년에 우리도 모르게 북한 공격 직전까지 갔었다. 우리 민족 전체의 생명이 걸린 문제인데도 말이다.

미군은 개일까 호랑이일까


사진/ SOFA 개정이 근본적인 해결책일까? 그러나 미군의 횡포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안 돼 있는 게 현실이다. (이정용 기자)


용미 미국이 우리와 상의도 없이 독자적으로 전쟁 수행을 검토한 것은 누가 뭐래도 잘못한 거다. 너만 열받는 게 아니다.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전시작전통제권도 그렇지. 전쟁 때 작전통제권도 없는 군대가 어떻게 한 나라의 군대라고 할 수 있겠냐. 난 우리가 작전통제권 환수 요구도 못하는 게 한심스럽다. 아무리 자존심이 없어도 그렇지. 그렇지만 미국도 돌려달라고 해야 돌려줄 것 아닌가.

철미 언제는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니, 왜 자꾸 오락가락하냐. 자존심으로만 따지면 군사력에서 세계 10위 안에 드는 우리 군대도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냐. 한데 절대 자존심 문제가 아니다. 우리 생존과 직결된 문제지. 민족 전체의 운명이 걸린 전쟁에서 우리는 자기결정권이 없다는 게 문제다.

용미 그렇게 중요한 거면 당장 돌려달라고 하면 될 거 아니야.

철미 순진하시군. 문제는 작전통제권을 돌려달라고 요구해도 미국이 쉽게 돌려주려고 하지 않을 거라는 거다. 미국 입장에서는 그냥 작전통제권만 넘겨주는 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유엔사 지위와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전략에 영향을 끼친다고 보고 있다. 강하게 요구해도 힘든 판에 강하게 요구할 수도 없다. 슬프지 않냐. 생존과 직결된 전시작전통제권을 생존과 직결된 안보를 이유로 돌려받지 못한다는 이 모순된 현실이. 자주국방 못하는 우리의 숙명이지.

용미 미국도 한반도 주둔이 필요해서 하는 걸 텐데, 작전통제권을 돌려달라고 밀어붙인다고 해서 미군이 당장 철수까지야 하겠냐. 잘 구슬려서 돌려받을 생각을 못하는 게 문제지. 어쨌든 그것 때문에 주한미군 물러나라고 할 수는 없다. 자주국방이라고 했는데. 뜻은 좋지만 완벽한 의미의 자주국방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도 알아야지. 나카소네 전 일본총리도 “주일미군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파수견으로 쓰는 것”이라고 했지 않냐.

철미 미군이 과연 개일까. 내가 보기엔 호랑이 같은데, 호랑이보고 개라고 부르면 그 말만 믿고 있던 철없는 애들만 물리지. 설령 그게 개라고 해도 안방에 들어와 있는 야생견이지 어디 애완견이냐.

용미 그게 호랑이든 야생견이든 좋다. 중요한 건 우리만 미군에 기대는 게 아니라는 거다. 부강한 유럽국가들도 미국과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사동맹체제를 이루고 있는 이유가 뭐겠냐. 그건 다 필요에 의해서 미국을 이용하고 있는 거다. 남북통일 뒤에도 주한미군은 남아 있어야 한다는 대통령 말씀도 수긍이 간다. 미군 빠져나가고 나면 중국하고 일본이 가만히 있겠냐. 호랑이 없는 산에는 늑대와 여우가 호랑이 행세를 하는 법. 그나마 호랑이가 있으면 질서라도 잡히지.

미군 철수와 주머니 사정


사진/ 주한미군 없는 세상이 그렇게 두려울까? 미군부대 앞에서 미군을 사랑한다고 외치ㅣ는 우익단체들. (한겨레)


철미 나토와 주한미군은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은데, 어떻게 네 눈에는 공통점만 보이는지 모르겠다. 나토도 사령관은 미군 장성이다. 하지만 회원국들은 전시에도 자국의 독자적인 판단과 결정에 따라 사령관 통제에 들어가는 거다. 들어가기 싫으면 안 들어가면 그만이다. 또 나토는 다자간 동맹의 지역집단 안보체제이지만 주한미군은 쌍무적 군사동맹이다. 남북통일이 되면 중국이 미국의 주적이어서 우리도 자동으로 중국과 대결해야 한다. 중국과 친해지고 싶어도 맘대로 친해질 수 없다. 그러면 한반도는 한·미·일 대 중국의 각축장이 되겠지. 통일 뒤에는 중국·일본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다른 방안을 찾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 미국도 이용한다면서 중국과 일본을 이용할 생각은 왜 못하냐.

용미 우리 좀더 솔직해져보자. 민족도 좋고 평화도 좋다. 나도 학교 다닐 때 반미시위도 해봤고, 우리한테 군림하는 것 같은 미국이 지금도 싫다. 하지만 당장 미군이 떠나면 우리가 얼마나 형편이 궁색해질지 생각해봐야 한다. 일단 국방비가 엄청나게 늘어난다. 국방연구원이 조사한 건데, 해마다 300억달러가 들어간댄다. 현재 우리 국방비가 한해 120억달러인데, 지금보다 두배 이상 더 들어간다는 얘기다. 전력운용에 필요한 시스템을 주한미군이 도맡고 있는 형편에서 미군이 빠지면 우리의 전투력만 제대로 굴러가게 하려해도 엄청난 추가투자가 필요하다. 지금도 가뜩이나 국방비가 아까운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되겠냐. 주한미군 빠져나가 봐라. 당장 국제신인도도 떨어지고 해외자본 유치도 안 될 거다. 우리 국민의 삶의 질도 중요하다. 우리 형편이 어려워지면 남북관계도 좋아질 리 없지 않냐.

철미 솔직한 건 좋은데, 너무 속물적이군. 그렇다고 해서 널 이중인격자라고 부르지는 않겠다. 주머니 사정이 나빠지는 건 나부터도 좋아할 리 없으니까. 미군이 철수하면 사정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나빠질 거라는 예상도 뚜렷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어쩐지 나빠지길 바라는 사람들이 지어낸 얘기 같기도 하고. 대만을 봐라. 거대한 중국과 군사적으로 대결하고 있지만 대만이 국제신인도가 낮고 외자유치가 안 돼서 못산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거꾸로 대만에 미군이 주둔했으면 지금쯤 일류 선진국이 되었겠네. 그렇다고 군사적으로 대결상태에 있지 않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썩 잘사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런 식의 경제논리로만 따진다면 일본이 “우리가 조선을 통치해서 그나마 근대화시켜줬다”라는 말도 아주 틀린 것 같지는 않네. 그리고 주한미군 철수를 어느날 갑자기 한꺼번에 철수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단계적 철수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왜 철수라는 말만 나오면 한사코 일시에 완전철수하는 것으로 호도해버리는지 모르겠더라.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용미 글쎄, 듣고보니 나도 단계철수론은 제대로 생각 안해본 것 같군. 아마 주한미군 철수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 국민의 삶의 질과 직접 관련될 수 있는 문제이니까 면밀히 따져봤어야 하는데, 막연하게 형편이 어려워질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건지도 모르겠군.

철미 네가 지레짐작한 것일까, 아니면 어디선가 얻어들은 걸 자기 생각처럼 얘기한 것일까.

용미 어쩌면 얻어들은 것일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너라고 해서 명백한 근거만 가지고 얘기하는 건 아니잖아. 어차피 우리의 운명이 걸린 불확실한 미래의 얘기를 하는 건데, 그나마 보수적으로 전망하는 게 낫지 않을까.

철미 문제는 처음부터 방향을 잡아놓고 추론을 한다는 거야. 지금까지 너의 얘기는 ‘주한미군 없는 한반도’는 곧 재난상황이라는 등식에서 모든 논리를 구성한 느낌이야. 그게 아니면 주한미군 없는 한반도라는 상황을 생각해보려고 하지도 않았는지 모르지. 거대한 방송 세트 속에서 평생을 살며 그곳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은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처럼. 주한미군은 한반도보다 훨씬 깊숙한 우리 마음속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주둔해오고 있는 게 아닐까.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혹시 헷갈리십니까.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




↑Back to th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