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03월12일 제400호 

53% “미군철수 생각 안해봤다”

<한겨레21> 여론조사- “전쟁 가능성 낮다”81%에도 “미군 필요”가 58%

이 땅에는 주한미군을 둘러싼 여러 복잡한 담론들이 존재한다. 이들 담론은 서로 충돌하거나 부추기면서 국민들 마음속에 하나의 형상으로 자리잡는다. <한겨레21>은 국민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주한미군의 형상을 분석해보기 위해 지난 3월8∼9일 전국의 20살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전화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서 오차한계 ±4.4%포인트)를 실시했다.

계속주둔 이유, “남침억제”60.1%


사진/ 전국 20살 이상 남여 500명 대상 전화여론조사. 조사기간 2002.3.7~8
우선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어느 정도나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다. 10명 중 8명 정도가 낮은 편(55.8%)이거나 매우 낮다(25.0%)고 대답했다. 전쟁 가능성이 매우 높거나 높다는 응답은 13.6%에 불과했다. 일단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은 낮다는 게 지배정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쟁 가능성과 주한미군 주둔 필요성은 밀접한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한반도에 주한미군 주둔이 필요하냐’는 물음에 ‘필요하다’는 57.7%, ‘필요하지 않다’는 33.4%(무응답 8.9%)로 나타났다. 5명 중 3명꼴로 주한미군 주둔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인 셈이다. 6·15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2000년 6월26일 실시한 <한겨레21> 여론조사 결과(필요하다 71.7%, 필요하지 않다 25.7%)와 비교할 때 1년9개월 사이에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좀더 높아졌다.

전쟁 가능성은 낮은데 주한미군은 필요하다?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주한미군이 필요하다고 한 응답자 289명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다. ‘북한의 남침억제를 위해서’를 꼽는 응답이 60.1%로 가장 높았다. 전쟁 가능성은 낮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의식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전쟁 가능성은 낮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주한미군은 주둔해야 한다’는 논리가 세워진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우호적인 한-미관계 유지를 위해’라는 응답도 24.6%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주한미군 주둔 필요성을 인정하는 사람 중 4분의 1은 주한미군 주둔을 전쟁 억지력보다는 한-미 외교관계 차원에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 나라 군대를 우리나라에 주둔시켜야 한다’는 논리인 셈이다. 이에 비해 ‘일본 군사재무장 억제’와 ‘중국 억제’는 각각 3.8%와 1.4%로, 주변국 견제를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은 미미했다.

주한미군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자(167명)들은 그 이유로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을 위해’(38.7%)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남한주민의 인권·시민권 보호를 위해’와 ‘남한의 군사적 자주권을 위해’도 각각 24.3%와 24.5%로, 남한의 자주권 차원에서 주한미군 문제를 생각하는 인식 또한 많았다. 이는 특히 한-미 외교관계 차원에서 주한미군 주둔이 필요하다는 인식과는 대칭점에 있다.

‘주한미군 주둔이 어떤 나라에 가장 큰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절반 이상(52.6%)이 미국을 최대 이익국으로 꼽았다. 남한이라는 대답은 28.3%로 미국에 크게 못 미쳤다. 이런 결과는 ‘미군 주둔이 필요하다’는 응답층에서도 동일해, 최대 이익국은 미국이라는 답이 43.8%로 한국(39.1%)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주한미군의 최대 이익국은 미국이지만, 그래도 주둔은 필요하다?

“미군 없으면 북 전투력 우세”61.0%


사진/ 주한미군 주둔 필요성을 인정하는 사람 중 4분의 1은 주한미군 주둔을 전쟁 억지력보다는 한-미 외교관계 차원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호 기자)


미국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최근의 차세대전투기(F-X) 기종 선정에 대한 물음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차세대 전투기 기종을 선정할 때 ‘성능, 가격, 기술이전 조건을 고려, 제조국가와 상관없이 가장 우수한 전투기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89.2%)가 압도적인 반면 ‘한-미 군사동맹을 고려, 다소 질이 떨어지더라도 되도록 미국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6.7%에 불과했다.

만일 주한미군이 없다면 한반도는 어떻게 될까. 주한미군이 없는 한반도를 생각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거나(38.4%),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다(14.9%)고 했다. 가끔 생각해본 적이 있거나, 자주 생각해본 적이 있다는 응답은 각각 33.8%, 10.6%로 조사됐다. 국민 과반수가 주한미군 주둔을 선택사항이 아닌 고정상수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주한미군이 없을 경우 남북한 군사력에 대해선 ‘북한의 군사력이 더 강하다’는 응답이 61.0%였다. 남한 군사력이 더 높다는 답은 17.5%에 불과했다. 남북한이 거의 비슷하다는 답은 17.4%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군사전문가 대부분이 남한의 군사적 우위를 인정하고 있는 것에 비춰보면 주목할 만하다. 상당수 국민들은 남북한 군사력에 대한 왜곡된 상식에 기반해 주한미군 문제를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주한미군이 없을 때 북한의 공격 가능성을 묻는 질문엔 절반 정도가 매우 높거나(12.4%), 높은 편(39.6%)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한미군 없이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층(87명)에서도 43.9%가 주한미군이 없다면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대답했다. 북한이 아무리 기아와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인식 속에는 여전히 위협적이고 안심할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주한미군이 없을 때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에 대해서도 절반 정도가 매우 높거나 높은 편이라 대답(각각 9.1%, 42.1%)했다. 주한미군 철수에 따른 북한의 공격 가능성과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이 높다는 답변이 거의 비슷하게 나왔다는 건 상반된 두 가지 가능성이 사람들의 생각 속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한미군이 없을 때 한국경제가 타격을 받을 가능성에 대해선 38.4%가 매우 높거나 높은 편이라 대답했고, 동북아 평화가 깨질 가능성에 대해선 33.1%가 매우 높거나 높은 편이라 했다.

“다른나라 군대라면 문제있다”47.7%

한국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결정한다면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엔 ‘적극 말려야 한다’거나 ‘말려야 한다’는 응답이 각각 9.4%와 37.4%, ‘말리지 않아도 된다’거나 ‘전혀 말리지 않아도 된다’는 응답은 각각 38.8%와 7.6%로 거의 비슷한 수치로 나타났다. 주한미군 주둔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필요하지 않다는 반응보다 우세한 것과는 조금 다른 결과이다. 그 차이를 ‘주한미군이 필요하지만 매달릴 만큼 절박하지는 않다’로 해석할 수 있을까.

만일 지금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외국군이 미군이 아닌 다른 한 특정국가의 군대라면 어떨 것 같으냐는 물음엔 절반 가까운 47.7%가 다른 나라 군대라면 ‘매우 문제가 있다’거나(13.6%) 또는 ‘문제가 있다’(34.1%)고 대답했다. 미군 아닌 다른 나라 군대라도 ‘문제없다’거나 ‘전혀 문제없다’는 사람은 각각 31.1%, 10.3%로 나타났다.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응답층에서는 매우 문제있거나 문제있다는 반응(55.1%)이 문제없거나 전혀 문제없다는 반응(36.4%)보다 높게 나타났다. 반대로 주한미군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층에선 문제없다는 쪽의 답(48.4%)이 문제있다는 쪽의 답(42.2%)보다 높게 나타난 점이 흥미롭다.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층이 정작 미군이 아닌 다른 외국군에 대해 더 큰 거부감을 나타낸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미군은 외국군이 아니라는 뜻일까.

주한미군이 언제까지 주둔해야 하느냐는 질문엔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단계적으로 철수해야 한다’는 응답이 71.5%로 나타났다. ‘빠른 시일 내에 철수해야 한다’는 12.9%, ‘남북통일 뒤에도 주둔해야 한다’는 11.6%로 조사됐다. 지금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응답층에서도 77.1%가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단계적으로 철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주한미군 철수는 남북관계 변화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남북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생각과는 분명 모순된다. 내 마음 나도 모른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이화주 기자/ 한겨레 여론조사팀 hol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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