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 등록 2002.02.27(수) 제39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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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서글픈 욕망 혹은 쓸쓸한 농담 들끓는 부자되기 열풍은 안전판 없는 사회의 반영… 함께 부자 되는 길은 없는가
참여연대 대안사회팀 박순철 부장에게 ‘부자 되세요’는 서글픈 욕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는 “‘부자 되세요’의 유행은 허황한 꿈을 꾸는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며 “쓸쓸하게 웃어보일 수 있는 농담 정도”라고 말했다. 주식이나 재테크를 통해 단박에 벼락부자가 된 신흥부자들이 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돈을 못 버는 사람들은 지지리도 못 벌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큰돈을 벌기는커녕 직장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그런 데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부자 욕망으로 들끓는 사회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돈 없어도 행복할 수는 없는가
‘부자 되세요’, 더 정확하게는 “부자 되고 싶어요”가 갖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모든 게 ‘결핍’이었던 지난 시절을 헤쳐온 한국인들에게 돈은 하나의 ‘안전판’이었다. 중앙대 김연명 교수(사회복지학)는 “사람들이 10억∼20억원을 부자라고 본다면 이는 웬만한 위험에 노출되어도 가계파산 없이 헤쳐나갈 수 있는 돈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업, 질병, 산재로 인한 노동력 상실 등으로 인해 갑자기 지출해야 할 큰돈이 발생할 때 이런 ‘사회적 위험’에 대한 안전판 노릇을 하는 게 돈이라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사회복지의 빈곤이란 문제로 이어진다. “사회임금이라 할 수 있는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사회복지가 높으면 크게 돈쓸 일이 없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자신이 버는 시장임금으로 모든 사회적 위험을 피해가야 한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는 불안감이 더하고 이것이 부자 욕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자신과 가족을 보호해줄 사회적 장치의 부재는, 집값은 치솟고 사교육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이를 월급으로 모두 감당해야 하는 한국 직장인들의 고통과 겹치면서 부자 욕망을 더욱 부추기게 된다. ‘돈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건 천만의 말씀’이 돼버린 한국사회에서 자신과 가족을 책임져야주는 건 국가도 사회도 아니고 오직 돈밖에 없는 것이다. 나아가 서울대 조흥식 교수(사회복지학)는 경제위기 이후 종신고용이 무너지고 계약직 고용이 크게 늘어나는 등 사회적 불안감이 확산된 데서 부자 욕망이 꿈틀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금의 부자 욕망은 “때깔나고 폼나게 살고 싶다”는 것을 넘어 팍팍한 현실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먹고살기 어려워지다보니 일정한 소득 보장을 열망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이것이 ‘부자 되기’ 현상으로 표현된 겁니다. 20 대 80으로 빈부격차가 심화하고 그러면서 중산층이 약화되고 있는 현상이 ‘부자 되세요’의 유행을 낳고 있는 것이죠.”
그 유행이 혐오스럽다?
한신대 김종엽 교수(사회학)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자 되세요’의 유행은 “혐오스럽다” 말했다. “부자가 되는 것말고 명예도 권위도 모두 가치를 잃고 있다. 추구하는 가치가 적어도 여러 개는 돼야 건강한 사회다. 고급 공무원이 다들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면, 명예를 추구하는 군인이 부자가 되려는 꿈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런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진실도 권력도 명예도 돈 앞에서는 꼼짝 못한다”거나 가치있고 영원한 것은 오로지 돈뿐이라는 믿음의 확산은 공무원들의 벤처행을 낳았다. 벤처가 한창 뜨던 지난 98년 이후 민간기업 등으로 이직한 공직자는 100명이 훨씬 넘는다. 정보통신부,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등 경제부처의 젊은 과장급을 중심으로 벤처로 나가는 행렬이 이어진 것이다. 중앙부처의 국·과장급으로 있다가 벤처기업으로 영입되면 스톡옵션과 수억원대의 이적료까지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돈 되는’ 벤처기업으로 공직자들이 빠져나가는 현상 속에 ‘낮에는 공무원, 밤에는 벤처사장으로 일하는’ 공직자도 생겨났을 정도다. 돈벌이 욕망은 학자의 연구분야에서도 쓴 웃음의 얼굴을 한 채 나타난다. 동국대학교 강사(사학) 이도남(41)씨는 연구를 위해 골동품을 수집하러 다니다보면 대뜸 “얼마 줄 거냐”는 말부터 꺼내는 사람이 많아 연구자료에 다가서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숨처럼 털어놓았다. “요즘 골동품을 보러가면 돈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다짜고짜 ‘값어치가 얼마나 나가느냐’, ‘얼마에 사겠느냐’고 묻기 일쑤입니다. 연구대상으로서의 역사적 가치는 전혀 뒷전입니다. 옛날에는 연구 때문에 왔다고 하면 교수라고 예우도 해주고 그랬는데….” 물론 대놓고 돈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를 속물근성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치있게 벌고 쓴다’는 게 빠져 있는 부자 이데올로기는 위험하다는 게 학자들의 지적이다. 대학생이 주식 데이트레이딩에 빠져 한번의 마우스 클릭으로 떼돈을 벌겠다며 재테크에 열을 올리는 현상은, 그렇게 돈벌이가 삶의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가는 사회는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김종엽 교수는 일도 ‘돈 되는 것’이냐를 먼저 따지면서 누구나 돈벌 궁리만 트고, 그래서 대화마다 돈 얘기로 넘쳐나는 건 ‘병든 사회’라고 진단한다. “돈이 판치는 세상도 병들었지만 더욱더 안타까운 건 부자가 될 수 없는데도 그런 헛된 꿈이 사회에 팽배해 있다는 겁니다. 월급쟁이는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건 빤하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그마한 기업이라도 사업을 하지 않으면, 또 사장이 되지 않으면 임금소득으로는 절대 큰돈을 만질 수 없어요.” 이런 점에서 취업과 집 장만이 어려운 소시민들의 좌절은 부자 신화와 뒤엉켜 쓰디쓴 절망감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상지대 홍성태 교수(교양과)는 부자 욕망이 갖는 일종의 ‘허위의식’을 본다. 그는 “한국인 개개인의 올해 개인적 이슈가 ‘부자 되기’라기보다는 정부, 기업, 언론에서 재테크니 ‘머니 파워’니 하면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널리 퍼뜨리고 있다”며 “부자는 중산층보다 훨씬 많은 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산층은 부자 이데올로기를 보급하고 작동하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자 욕망에 깃든 이중심리
자신이 부자가 되기 어렵다는 현실을 잘 알면서도 돈을 향해 뛰면서 ‘부자의 꿈’을 좇는 심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중앙대 이재호 교수(심리학)는 한국인들의 부자 욕망에는 이중심리가 깃들어 있다고 본다. 말로는 “돈은 사람 버리는 거야”라면서도 뒤돌아서면 돈에 대해 갈구한다는 것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돈없는 사람이 큰돈을 만질 기회가 더욱 좁아지면서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절망감이 한켠에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쪽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그들(부자)처럼 살 수 있다’는 식으로 계층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는 강한 의식이 함께 얽혀듭니다.” 정상적으로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복권, 도박, 투기를 통해 일확천금을 노리는 경향을 띠게 되는 건 이 때문이다. 물론 성실하게 일해서 정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김종엽 교수는 사회적으로 바람직 한 건 ‘함께 부자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공공주택을 늘리고 국립의료원을 더 확충하고 비뚤어진 입시위주 교육을 뜯어고쳐 막대한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등 공공부문에 대한 투자를 과감하게 늘리면 그것이 곧 함께 부자가 되는 길입니다.” 떼돈을 벌어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라 국가가 복지수준을 높여 국민들을 돈으로부터 해방시켜줘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사회적 연대 즉, 복지로 해결해야 하는 것까지 죄다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상품’이 된 현실 및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헛된 부자 신화에 대한 질타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부자 열풍은 베버가 말한 ‘자본주의 정신’을 넘어 돈에 ‘휘둘리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닐까? “단순한 새해 덕담을 넘어 ‘부자 되세요’가, 만나면 마땅히 인사할 말이 없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렇게 추구할 가치가 돈밖에 없는 것이라면 얼마나 황폐합니까.”(김종엽 교수)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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