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02월20일 제397호 

게임에 빠진 ‘다른 문화’

새로운 문화적 실험 이끄는 게임세대들… 온라인 게임 특성을 소설작법 등에 적용


사진/ 게임 1세대인 소설가 김원보씨는 게임의 작동원리를 소설작법에 응용하고 있다. (이용호 기자)


‘새로운 인류’ 게임세대가 그들만의 특성으로 만들어나갈 문화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게임 1세대 김원보(28)씨는 한 단면을 보여준다. 김지하 시인의 장남이자 소설가 박경리씨의 외손자답게 그 역시 소설가다. 그런데 차원이 다르다. 아버지와 할머니가 ‘정통’ 문학 장르를 대표한다면, 김씨는 ‘정통’과는 아주 대조적인 기법과 상상력으로 소설을 써내려가고 있다. 1999년 말부터 나우누리 통신에 SF판타지(하지만 본인은 요즘의 장르판타지나 SF 같은 가상이 아닌 현실을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소설 <엑시드맨>을 연재했고, 나남출판사에서 10권이 훨씬 넘는 6부작으로 묶어낼 예정이다. 현재 2부까지 집필을 끝낸 상태다. 이에 앞서 김씨는 계간지 <문학과 의식>에 괴테의 <마왕>을 모티브로 한 단편소설 <마왕의 기원>을 발표했다. 이들 작품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이나 게임 서사에 대한 연구는 게임세대의 특성과 잘 맞아떨어진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잠시 그의 개인사를 엿보고 갈 필요가 있다.

그는 “컴퓨터 게임의 진화와 발맞춰 성장한 셈”이라고 한다. 그 자신 국내 최초의 온라인 게임이라 할 만한 <단군의 땅> 제작자의 한명으로 일했던 사실이 이를 잘 뒷받침해준다. <단군의 땅>은 PC통신망에 여러 사용자가 동시에 접속해 텍스트를 기반으로 채팅하듯 플레이하는 머드게임이다. 요즘에 일반적인 머그 온라인 게임은 여기에 그래픽을 가미한 형태다. 그렇다고 그는 중독될 정도로 게임에 몰입했던 경험을 갖고 있지는 않다.

“70년대 말 오락실이 생겨날 때, 일본에서 처음 히트했다고 할 수 있는 <인베이더>를 시작으로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때는 놀잇감이 워낙 없을 때여서 심심풀이 정도였고 지속성을 갖기 힘든 종류의 게임뿐이어서 생활에서 큰 비중은 없었다. 그 이후 관심을 줄곧 가졌던 건 게임 자체보다 게임을 통해 전달되는 코드나 이미지 기호들이었다.”

'게임적 상상력'을 다차원적 문확으로


사진/ 영화 <매트릭스>가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놀라운 이미지로 펼쳐낸 것처럼 소설 <엑시드맨>도 미래의 현실을 새로운 서사방식으로 풀어간다.


8비트, 16비트 정도의 게임에서 아이콘 형태로 움직이는, 제한된 기호들은 지금도 매력적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일본, 미국 등 외국의 언더문화적인 감수성과 색깔을 접할 수 있었던 통로가 유일하게 게임이었다는 점, 특히 책과 같은 인쇄매체가 아니라 테크놀로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고 한다.

<단군의 땅>을 만드는 일을 하기 전후는 좀 힘든 시기였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지만 자기가 알고 싶은 것보다 기존 소설작법만 배우는 게 싫어 한 학기 만에 그만두기도 했다. <단군의 땅>을 만들면서 게임 자체를 즐기기보다 점점 게임을 분석적 사고로 바라보게 됐다. “어떤 게임을 하게 되면 게임의 패턴, 유형, 요소를 분석하게 됐다. 그게 흥미로우니까. 오락실 게임은 구조가 간단해 주로 롤플레잉 게임을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곧 만화나 소설, 영화 속과는 다른 세계가 그 안에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기존 장르는 독자가 작가의 눈으로 펼쳐지는 상황에 개입해나가면서 사건이 풀려가는, 일직선적이고도 주관적인 특징을 가지지만 게임은 달랐다. 그 세계는 “자신이 개입하지 않아도 그냥 거기에 있는 존재여서 남보다 편한 길로 갈 수도 있고, 어려운 길로 갈 수도 있는 다차원성”의 매력이 있었다. 게이머가 여러 갈래의 역할을 선택할 수 있는 롤플레잉 게임이 그랬다. 이는 연세대 발달심리연구실 장근영 연구원이 설명하는 온라인 게임의 서사방식과 일치한다. 현실공간과 온라인 게임의 서사는 선형서사 대 병렬서사, 일방향 인과론 대 상호작용성, 시간중심의 표상 대 공간중심의 표상, 흘러가는 자아 대 진화하는 자아 등의 차이점을 보인다. “예를 들어 <리니지>에서 아이템 거래시장은 게임 제작자들이 상점을 많이 만들어놓은 곳에만 생기지 않는다. 가치있는 아이템이 많이 생산되는 사냥터나 사냥 뒤 휴식을 취하는 마을의 광장에 자생적으로 형성된다. 여기서 사건의 원인과 결과는 불분명하다. 시장을 만든 것은 게이머들의 노고만은 아니고, 그렇다고 기획자의 책임도 아니다. 둘의 화학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김씨는 이를 소설의 방법론으로 끌어들였다.

“인물, 사건, 배경 식으로 플롯을 짜나가는 게 아니라 이미 미분화된 전체 덩어리가 있어 이를 조각해나가는 것이다. 내 소설은 시작과 끝은 있으나 그게 절대적인 구조가 아니다.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건 독자가 읽기 시작해서 끝났다는 사건의 경과밖에 없다.”

<엑시드맨>이 어떤 작품이냐고 물으니 “어떤 사건에 대해 설명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어떤 세계가 떠오른 것이어서 언어로 설명해 달라고 하면 무척 어렵다. 그걸 풀어가는 게 이 소설이니까”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연세대 최유찬 교수가 게임에서 얻는 지각방식으로 <토지>에 대한 논문을 썼던 방식과 딱 맞아떨어진다.

파편에서 총체를 인식하는 게임을 원용

게임과 소설작법의 연관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자 ‘초월자’라는 뜻의 소설 제목과 비슷한 개념이 쏟아져나왔다. 초매체성으로부터의 분화, 초주관적이고 공간적인 것, 초신화성…. 환상으로부터 현실을 끌어내는 것이 ‘초매체성으로부터의 분화’라면, <엑시드맨>에서 세 주인공의 눈을 통해서 하나의 상황을 서술하는 게 ‘초주관적이고 공간적인 것’이다. 소설을 처음 연재할 때 김씨가 올린 글은 이렇다. “윈도식 독립진행소설… 시점도 윈도창을 연 것처럼 1인칭 주인공 시점(그것도 세명)에서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마구마구 옮겨다닙니다.” 좀 어렵다. 소설도 술술 읽히면서 어렵다. 칼 구스타프 융의 심리학, 에르빈 슈뢰딩거의 물리학 이론, 문화인류학 등이 사방팔방에서 튀어나온다.

단편 <마왕의 기원>에 대해 최유찬 교수는 “일관된 줄거리로 제시되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통일되고 완결된 형상이 빚어지고 있다”며 “기억의 단편들을 제시해 독자들에게 그 전체를 완결시키도록 하는 서술기법은 결코 우연히 사용된 게 아니며 파편적인 데서 총체를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수법을 원용한 것으로 서사의 속도, 정보 전달량, 적응 범위를 넓히는 데 유력한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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