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 등록 2002.01.30(수) 제39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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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권력의 끗발, 핏줄이 미워! 최고권력자 친인척들의 비리와 추문… 권력 기반 뒤흔들고 현대사에 얼룩 남겨
최고권력자로 통하는 비상구인 피붙이들. 그들 또한 핵심 권력자였다. 주변에는 항상 권력과 이권을 탐하는 불나방들이 들끓었다. 그러나 ‘열흘 붉은 꽃이 없다’했던가. 결말은 비극이었다. 권좌에 머물 동안은 온갖 의혹에 시달리면서도 버틴다. 하지만 권력은 그들의 추문으로 심각하게 흠집나고, 결국 대부분 철창행으로 이어진다. 이승만 대통령은 피붙이가 없었다. 친인척 비리가 생길 까닭도 없었다. 하지만 훨씬 어처구니없는 사건과 서글픈 종말이 뒤따랐다. 이강석. 당대 권력 실세 이기붕의 장남인 그는 어느날 이승만의 양자로 들어갔다. 이기붕은 그 덕분에 2인자 자리를 확실히 굳혔고, 이강석은 친인척 발호의 표본이 됐다. 거리에는 이강석을 통해 정권연장을 꾀한다는 소문이 떠돌았고, 서울대 법대에 부정입학했다가 학생시위로 쫓겨나는 수모도 겪었다. 내로라 하는 권력자들도 그 앞에 앞다퉈 머리를 조아렸다. 57년 늦여름 그 위세를 증명하듯 ‘가짜 이강석 사건’까지 발생했다. “내가 이강석”이라는 실업자 청년의 말 한마디에 경주, 영천, 안동, 봉화 등에서 시장, 경찰서장, 군장성, 은행장들이 뇌물과 공용차량을 제공하며 극진히 모셨다. 그러나 4·19혁명 직후 그는 친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를 권총으로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붙이 없어도 친인척 비리는 발생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친인척을 잘 관리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친형 동희씨를 경북 선산에 묶어두는 등 친인척을 따돌려 오히려 원성을 샀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떠돌았다. 그러나 아들 지만씨 때문에 고교평준화가 실시됐다는 의혹은 이제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지만씨는 박 대통령 사망 이후 마약복용 혐의로 4차례나 교도소를 들락댔다. 직계 혈육 대신 2인자들이 발호했다. 특히 박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당시 권력의 단맛을 즐기며 각종 부정축재 사건에 연루됐고, 둘째형 종락씨까지 재계인사에 지나치게 개입해 물의를 일으켰다.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대통령은 ‘정의사회 구현’을 국정지표로 내걸었다. 그러나 집권기간 동안 부인 이순자씨를 비롯해 형 기환, 동생 경환씨 등 친인척들의 추문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청와대 경호실 보좌관이던 경환씨는 형이 대통령이 되자 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에 취임해 ‘관직없는 2인자’로 군림했다. 노태우 정권 출범 한달 뒤인 88년 3월22일, 경환씨가 구속되면서 드러난 비리는 친인척 발호의 결정판이었다. 새마을운동본부와 새마을신문사의 기부금과 공금 76억원 횡령 및 탈세, 가양동 생산녹지 무단형질 변경, 기업가의 청탁과 뇌물수수…. 그해 8월11일 노량진수산시장 운영권 강제교체와 공금 27억원 횡령 혐의로 구속된 형 기환씨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전 대통령 집권 동안 과거 자신과 함께 용산경찰서에 근무했던 사람들을 대거 경무관에 승진시키는 등 경찰인사에 적극 개입했다. 경찰들은 아직도 ‘전기환과 용산마피아’라는 말을 기억한다. 전두환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난 지 1년 만에 처남 이창석, 육촌동생 전우환, 처삼촌 이규승씨까지 뇌물수수 횡령, 탈세 혐의로 줄줄이 구속됐다. 그리고 95년 12월3일 전두환 대통령 자신이 기업인들로부터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챙기고 군사반란을 주도한 혐의로 철창신세를 졌다. 그러나 아직 전씨 일가가 수천억원의 ‘양도성예금증서’를 어딘가에 쟁여두고 있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전체 비리 규모나 실체는 완전히 규명되지 못했다.
5·6공 때 전가의 보도 휘둘러
노태우 대통령의 친인척도 전씨 일가의 뒤를 밟았다. 먼저 외동딸 소영씨가 아버지로 이르는 비상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 일부가 드러났다. 그는 90년 1월 19만2500달러를 미국 11개 금융기관에 분산예치했다가 들통나 미국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물론 돈도 전액 몰수당했다. 그러나 돈의 출처는 아직도 논란거리다. 이른바 노 대통령의 스위스 비자금 계좌에서 흘러나왔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지만 진실은 끝내 확인되지 못했다. 소영씨가 92년 8월 공군참모총장 후보였던 이양호 전 국방장관 부인 김혜숙씨로부터 승진 청탁과 함께 4천만원짜리 보석세트를 선물받았다가 나중에 돌려준 사실도 밝혀졌다. 96년 10월 검찰조사 때 노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씨에게 이 보석세트가 전달됐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명쾌한 결론은 없다. 노 대통령의 처고종사촌인 박철언씨. 그는 6공화국 내내 ‘떠오르는 황태자’로 불렸고, 후계자로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 등장 뒤 슬롯머신 업계의 대부 정덕진씨로부터 국세청 세무조사 무마 부탁과 함께 5억원을 받은 혐의로 감옥으로 향했다. 박씨는 아직도 “김영삼 정권의 정치 보복극”이라고 주장한다. 전 대통령의 손아래 동서인 금진호씨도 임기 내내 경제부처와 재계 인사에 개입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비자금 수수 사건에 연루돼 불구속 기소됐다. 물론 노 정권 비리의 몸통은 대통령 자신이었다. 청와대 집무실에서 재벌 회장들에게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건네받고, 200억원의 비자금은 사과상자에 담아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 자택에 맡겨두는 엽기적 행각까지 저질렀다. 그는 95년 11월16일 철창에 갇힌 첫 전직 대통령이 됐다.
소산 현철씨, 정치적 재기 노려
김영삼 대통령은 뭔가 다를 것 같았다. 문민정부의 자긍심을 내세운 그는 “돈을 안 받고, 친인척 비리·정치적 개입도 절대 없을 것”이라고 수없이 공언했다. 청와대 칼국수로 청렴을 과시했다. 그러나 둘째아들 현철씨가 복병. 집권 초부터 정치권 안팎에는 “소산계” 또는 “현철사단”이라는 사조직이 국가 공조직을 무력화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장관도 그 앞에선 무릎을 꿇었고, 96년 4월 총선에 출마한 개혁성향 인사 상당수가 현철씨의 공천과 뒷돈, 조직력에 기대 선거를 치렀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한보사태의 몸통으로도 지목됐다. 하늘 아래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결국 97년 3월 YTN 인사개입 현장이 담긴 ‘박경식(G클리닉 원장)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꼬리가 잡혔다. 그러나 결말은 용두사미격이었다. 그해 6월5일 대선잔여금으로 추정되는 252억원에 대한 증여세 포탈 혐의로 구속됐을 뿐이다. 문민황태자는 요즘도 정치적 재기를 꿈꾸고 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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