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 등록 2002.01.09(수) 제39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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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베스트 나인, 그들이 간다 2002년 한국경제의 변화를 주도할 9마리의 용은 누구인가
2002년 한국경제를 이끌어갈 9마리의 용은 누구일까? <한겨레21>이 지난해 12월 말 각계의 경제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김정태·안철수·정몽구·손길승·변대규·박종섭·진대제·김택진·황영기 등 모두 9명이 ‘새해 주목할 만한 경제인’으로 선정됐다. 구조조정과 경기침체라는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는 한국경제를 한 단계 변화·발전시킬 주역으로 이들 9명이 선발된 것이다. 조사는 경제전문가 30명이 5명씩 복수추천을 하고, 그 결과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번 조사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선정된 9명이 대부분 전문경영인과 벤처기업인이라는 사실이다. 오너 가운데서는 2001년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이 유일하게 포함됐다. 외환위기 이후 전환기에 처해 있는 한국경제의 변화를 전문경영인과 벤처기업인이 주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너 중에선 정몽구 회장이 유일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과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사장은 다른 경제인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표를 얻어 각각 1, 2위에 선정됐다. 김정태 행장은 외환위기 이후 시장경제의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면서 국민-주택 두 은행의 통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점이 높이 평가돼 가장 많은 18표를 얻었다. 김 행장은 총자산 185조원에 이르는 초대형 은행의 수장으로서 새해 국내 금융시장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란 점에서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신뢰받는 벤처기업인으로 꼽히는 안철수 사장은 가장 모범적으로 벤처기업을 경영해왔다는 점에서 14표를 얻어 새해 주목받는 경제인으로 뽑혔다. 안철수연구소는 특히 지난해 증권거래소 상장의 여세를 몰아 세계 10대 인터넷 보안업체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어 여전히 주목 대상이다. 흥미를 끄는 인물은 정몽구 회장이다. 쟁쟁한 전문경영인들을 제치고 대기업 오너로서 3위(8표)에 올랐다는 점에서 누구보다 관심의 대상이다. 정 회장이 3위에 오른 것은 지난해 1조2천억원의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거두는 등 최근의 눈부신 경영 실적이 밑바탕이 됐다. 그러나 정 회장이 주목받는 더 중요한 이유는 앞으로 2∼3년이 한국 자동차산업의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기아자동차는 미국시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국제화된 브랜드로 한 단계 도약하느냐, 아니면 이전과 같이 다시 주저앉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이번에 해외시장 확장에 실패할 경우 현대·기아자동차의 활동반경은 국내시장으로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현대자동차는 이에 따라 2002년 수출목표를 지난해보다 8.6% 증가한 146만대로 늘려잡았다. 월드컵을 계기로 세계적으로 현대·기아자동차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고 한국차의 수준을 세계적으로 각인시키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따라서 현대·기아자동차의 향후 진로가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한국경제의 동력으로 성장할 수 있느냐 여부를 결정하는 관건으로 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럽과 미국에 현지공장을 설립하고 세계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는 정 회장은 새해 한국경제 변화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우증권의 하상주 이사는 “현대·기아자동차가 미국 시장점유율을 얼마나 더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이와 함께 재계의 총리로 불리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직을 맡게 될지 여부를 둘러싸고도 안팎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손길승 SK 회장은 6표를 얻어 4위에 올랐다. 경제전문가들은 손 회장이 오너체제 아래서도 전문경영인으로서 독자적인 자기 역할을 해온 점을 높게 평가했다. 특히 오너가 존재하는 재벌 기업에서 회장 자리에까지 오른 국내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이어서 그에 대한 평가는 전문경영인의 역할이 어디까지인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 그는 최종현 회장 타계 이후 SK가 정보통신 그룹으로 확고한 국내 입지를 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다. 거대한 성장잠재력을 갖춘 중국시장에 가장 먼저 진출함으로써 국내산업의 지평선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박상배 산업은행 부총재는 “국내외 경제환경 변화에 따라 기업의 새로운 성장전략을 기획하는 등 새로운 기업가 마인드를 제시함으로써 전문경영인도 재벌 기업에서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변대규 사장, 셋톱박스의 괴력
변대규 휴맥스 사장은 디지털 위성방송 셋톱박스 분야에서 놀라운 성장을 보인 데 힘입어 5위(5표)에 올랐다. 셋톱박스 하나로 세계시장을 휘어잡은 실적이 주요한 선정 배경이 됐다. 휴맥스는 유럽 디지털 셋톱박스 시장에서 필립스 등과 이미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유용호 벤처기업협회 사무국장은 “작은 기업도 첨단기술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전범을 보여준 기업”이라며 높게 평가했다. 휴맥스는 셋톱박스 하나만 가지고 2000년 1억달러 수출을 달성한 데 이어 2001년 2억4천만달러 수출을 기록했다. 순이익도 330억원에서 800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휴맥스의 이러한 성취는 제품의 100%를 수출하는 중소기업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변 사장은 특히 ‘사람이 최고의 자산’이라는 철학으로 회사를 이끌어가고 있으며, 벤처업계에서 공부하는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박종섭 하이닉스반도체 사장, 진대제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부문 사장,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은 똑같이 4표씩을 얻어 주목할 만한 경제인 9명에 포함됐다. 박종섭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은 비록 공동 6위에 올랐지만 현실적으로 새해에 가장 주목되는 경제인이다. 그의 행보 하나하나가 거대기업 하이닉스반도체의 생사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전략적 제휴에 관한 협상을 벌이고 있는 하이닉스의 운명은 2002년 중 어떤 방식으로든 결론이 날 전망이다. 2000년 2월 사장직을 맡은 뒤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채권단에 알리고 설득해 위기를 벗어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현대가 경영난으로 하이닉스를 사실상 방치한 상황에서 그는 채권단과의 외로운 싸움을 1년이 넘게 벌여왔다. 하이닉스는 최근 디램반도체 가격의 급등으로 어느 때보다 회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그동안 박 사장의 노력이 조금씩 빛을 발하고 있다. 권오용 KTB네트워크 상무는 “하이닉스를 거의 개인 역량으로 연명시켜왔다”며 “마이크론과의 제휴를 어떻게 끌어가느냐에 따라 한국경제에 큰 지각변동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진대제와 이재용
진대제 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주인공. 그가 새해 주목해야 할 경제인으로 선정된 것은 그가 맡고 있는 디지털미디어 부문의 성장 가능성 때문이다. 디지털 텔레비전부터 시작해 DVD플레이어, 디지털가전, 홈네트워크, 노트북, PC 등 그가 맡고 있는 영역은 광범위하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장차 폭발적인 변화와 성장이 예견되는 부문이다. 따라서 모든 전자기기의 디지털화, 네트워크화가 예상되고 있는 이 분야에서는 그가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가 이끄는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부문이 그러한 변화의 주역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진 사장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 밖에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맏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후계체제 부상과도 맞물려 있다. 후계체제가 가시화하면서 진 사장의 역할과 비중이 더 커질 것이란 안팎의 전망 때문이다. 진 사장은 지난해 홍콩 시사주간지 <아시아위크>가 선정한 ‘아시아 밀레니엄 리더 20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은 국제금융 전문가로 국내 금융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경영을 시도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2001년 6월 삼성증권 사장에 취임하면서 증권업계의 고질적인 관행이었던 약정고 경쟁을 지양하고 수익률 중심으로 경영목표를 과감하게 수정했다. 수수료 수입에 의존하는 경영으로는 선진적인 금융회사로의 발전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방침이 국내 증권업계에 큰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은 물론이다. 그는 나아가 삼성증권을 선진국과 같은 종합투자은행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해외 증권사들과의 경쟁에도 과감하게 나서고 있다. 국내기업도 해외에서 증권을 발행할 때 외국계 투자은행을 주간사로 삼아야만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황 사장은 최소한 국내기업만이라도 국내 증권사가 주간사를 맡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현실의 벽을 뛰어넘으려 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장차 국내 증권업계의 한 단계 도약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온라인 게임 <리니지>로 세계시장을 휩쓸고 있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도 9명의 대열에 포함됐다. 경제전문가들은 김택진 사장이 국내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시장을 무대로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김 사장의 경영철학은 “철저한 경쟁논리를 통해 강해진 기업만이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원칙에 따라 철저한 시장경쟁을 통해 제품의 성능을 인정받아왔다. 엔씨소프트는 홍콩과 대만에 이어 최근 미국과 일본에서 <리니지>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무대를 세계시장으로 넓혀가고 있다. LG증권 김주형 이사는 “벤처기업 가운데 가장 빨리 세계화에 나서고 있는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윤종용·장흥순 등 52명도 추천돼
이번 조사에서는 이들 9명 외에도 52명이 추천됐다. 이 가운데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장흥순 터보테크 사장이 3표씩 얻었다.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 최태원 SK(주) 회장, 구자홍 LG전자 부회장, 박용만 두산 사장, 정건용 산업은행 총재, 김승유 하나은행장, 하영구 한미은행장, 이덕훈 한빛은행장, 이용경 KT프리텔 사장,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강창희 굿모닝투신운용 사장 등도 2표씩 얻어 주목할 만한 경제인으로 추천됐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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