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 등록 2002.01.02(수) 제391호 |
|
[표지이야기] 허수아비 이사회는 가라! 비효율적 기업활동에 사법적 경고… 이사회는 시장경제의 기초로 자리잡아야
우리는 지난 4년 동안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겪으면서 ‘구조조정’이라는 말을 신물나게 들어왔다. ‘변화와 개혁’을 외쳐댔던 문민정부 시절까지 합하면 거의 10여년 가까이 개발시대의 낡은 경제운용체제를 탈바꿈하기 위해 몸부림쳐왔다. 그러나 부분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경제 체질의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 ‘법과 질서에 기초한 시장경제체제의 확립’을 외치는 목소리는 많았지만 관치경제와 정치자금, 분식회계와 선단경영 등 고질적인 병폐는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새로운 천년의 첫해가 거의 다 저물어갈 무렵 우리는 시장경제체제를 위한 귀중한 초석을 비로소 하나 세웠다. 법원이 이사의 민사적 책임을 실질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주주의 위임을 받은 이사는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성실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하며, 이런 의무를 위반했을 때에는 응당 그에 따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적어도 경제학을 전공한 필자에게는 그러하다. 그리고 필자가 찾은 민법 제2조 제1항에는 (법학자들은 이 조문을 어떻게 새기는지 몰라도) ‘신의성실의 원칙’이 모든 권리의무 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이미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처럼 지당한 기본원리가 이제야 비로소 현실에서 제자리를 찾게 된 것이다.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한 법원의 판결
혹자는 이번 판결을 두고 “법원이 운동권식의 어설픈 논리로 무리하게 기업경영에 간섭한다”고 볼멘 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또는 “그동안 거수기에 불과했던 이사들에게 이제 와서 몇백억씩 되는 돈을 다 물러내라고 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라고 현실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민사상 책임을 물어봐야 이미 재산을 다 빼돌렸을 테니 다만 몇년이라도 ‘콩밥’을 먹여야 하지 않겠냐고 흥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논리에 모두 반대한다. 적어도 이번 판결에 관한 한, 사실관계에 대한 인정 부분은 차치하고 현재 법원이 취하고 있는 기본 입장은 시장경제의 원리와 정확히 부합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주체는 소비자와 기업이다. 그런데 효용극대화라는 잘 정의된 행동원리를 가지는 소비자와는 달리, 기업의 유인체계는 의외로 매우 취약하다. 기업은 주어진 투자사업을 집행하기 위해 거의 언제나 외부로부터 부채의 부담이나 주식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이때 부채를 구입한 사람은 경영권을 포기하는 대신 과실의 분배에서 선순위를 차지하고, 주식을 구입한 사람은 후순위의 대가로 경영권, 즉 회사 자산에 대한 통제권을 차지하게 된다. 이런 구조는 일견 매우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경제이론에 의하더라도 이른바 ‘잔여적 청구권자’인 주주에게 통제권을 부여했기 때문에 경제적 효율성도 잘 담보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채권자나 주주 모두 각자의 유인체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원론적인 의미에서 기업경영에 대해 가장 이상적인 유인체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투자자금을 100% 자기 쌈짓돈으로 조달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기업이 잘되고 있건, 또는 망해가고 있건 언제나 회사경영에 성실하게 임할 유인이 있다. 왜냐하면 잘되면 자기 이익이고 안 되면 자기 손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채권자나 주주의 유인체계는 회사의 경영상태가 특정한 영역에 있을 때에만 효능을 발휘하는 절름발이다. 채권자는 회사가 망해갈 때 안달복달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나마 받아갈 수 있는 돈이 회사 상태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주주는 회사의 성과가 좋을 때에만 열심히 일한다. 회사가 망해가고 있을 때는 어차피 자신이 받아갈 몫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경영성과에 따르는 이사의 유인체계 확립
이러한 유인체계의 불완전성은 곧 기업활동의 비효율을 의미한다. 특히 현실에서는 이런 문제 이외에 채권자나 주주가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무임승차’ 문제까지 발생하여, 그나마 유인체계가 작동해야 할 상황에서도 번번이 실패하기 일쑤였다. 이사회란 기업이 직면한 이런 근본적인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이 만들어낸 해결책이다. 만일 어떤 제3자를 선정하여 그 사람의 유인체계를 마치 이 회사에 100% 자기 돈을 투자한 사람이 가질 법한 유인체계와 흡사하게 만든다면, 이 제3자에게 회사의 경영을 맡겨도 괜찮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이사의 보수를 결정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기업의 경영성과와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이사의 유인체계가 전액출자자의 유인체계와 유사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장 열등한 방법은 이사를 월급쟁이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보수체계하에서 이사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물론 현실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특히 그중에서도 불확실성의 존재는 문제를 상당히 복잡하게 만든다. 기업의 경영성과는 경영진의 노력 외에도 경쟁기업의 행동, 소비자의 선호, 그리고 각종 거시경제적 여건 등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기업의 경영성과를 가감없이 그대로 반영하여 이사의 보수체계를 결정하는 경우 상당한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기업의 경영성과가 나쁘더라도 그것이 이사의 과실이나 태만 등에 기인할 때에만 적극적으로 이사의 보수체계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 법원의 역할은 바로 여기서 나오게 된다. 법치주의 사회에서 과실이나 태만 등의 유무를 판단하여 타인의 재산을 적극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 법원이기 때문이다. 법원이 이 역할을 잘 수행해야 비로소 자본주의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다. 이것은 기업경영에 간섭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경영을 돕는 것이다. 만일 법원이 이런 판단을 해주지 않을 경우 과실이나 태만의 유무를 조건부로 하여 보수체계를 설계하는 계약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기업조직의 효율성은 달성되기 어렵다. 이런 시각에서 이번 판결을 다시 음미해보자. 우선 법원이 이런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절대로 기업경영에 대한 간섭의 차원이 아님은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이사의 잘못에 대해 형사상의 책임을 묻는 것보다 민사상의 책임을 묻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해결이라는 점도 납득이 간다. 형사상의 책임은 그 성립 요건이 훨씬 더 제약적이고, 처벌의 강도가 이사가 회사에 끼친 손해와 정교하게 대응되기 어렵다. 또 손해의 당사자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없어 또다시 무임승차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몇백억원씩 개별 이사에게 배상하라는 점도 그것이 이사의 보수를 회사의 손해와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손해배상 이후의 생계문제는 개인파산 제도의 정비를 통해서 해결할 문제이지, 배상책임 자체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
기업의 변화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시장경제체제가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가 제도의 미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툭하면 새 법을 만들고, 있는 법을 뜯어고치고, 시행령을 주물럭거렸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그런 것이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좀더 중요한 것은 법원이 이미 존재하는 법 속에서 어떤 구체적 의미를 찾아내어 그 사회에 제시하는가 하는 점이다. 필자는 법원이 이런 역할을 묵묵히 그러나 능동적으로 수행하기만 한다면 현존하는 제도하에서도 한국사회는 엄청나게 변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법원이 ‘권한의 남용’에 관한 민법 제2조 제2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해보면 기업에 또 어떤 변화들이 나타날지 기대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