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장병인

지난해 9월. 국회 재경위의 예금보험공사 국감장. “이용호씨를 아느냐.” 안택수 한나라당 의원의 질문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형택씨는 “최근 일부 언론에서 구구한 추측보도가 많이 있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대단히 유감이다. 평소에도 구설에 오르지 않기 위해 올바르게 처신해왔다고 자부한다. 그런데도 전혀 관련없는 일에 관련있는 양 보도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제가 작용하거나 이득을 취한 바가 전혀 없으며 하늘을 우러러 떳떳함을 밝힌다”고 당당하게 답변했다.

국가기관 동원한 대통령 처조카

그러나 불과 넉달 뒤 ‘이용호 게이트’를 수사중인 차정일 특검팀에 의해 이형택씨의 증언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김대중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형택씨가 삼애인더스의 주가조작에 이용된 진도 앞바다 보물선 탐사사업의 지분 15%를 보장받은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또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을 통해 국정원과 해군, 해경 등을 보물선 탐사작업에 동원하도록 한 사실도 드러났다.

보물선 인양사업과 관련해 이형택씨의 이권개입 의혹은 한나라당에 의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용호씨가 조작한 보물선 인양사업에 고위층 친인척 L씨가 개입한 흔적이 있으며 이씨는 여권고위층의 정치자금을 관리해온 인물이다.”(지난해 9월 법사위 국감에서 이주형 한나라당 의원) “이용호씨는 이 전무와 한 차례 만난 적이 있다고 답변했는데 이씨와는 어떤 관계냐. 그리고 오아무개씨의 보물선 인양사업에 동참했다는 의혹이 있는데 진실을 밝혀라.”(지난해 9월 재경위 국감에서 손학규 의원) 이런 의혹들이 차정일 특검팀에 의해 일부 사실로 드러남에 따라 주가조작 및 횡령 혐의로 출발한 ‘이용호 게이트’는 이제 최고권력자 친인척의 권력비리 의혹으로 전환하게 됐다.

그동안 김 대통령의 친인척, 특히 아들은 한나라당의 집요한 공격 대상이 돼왔다. 장남 김홍일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이용호 게이트 수사과정에서 이씨로부터 진정 무마 등의 명목으로 40억여원을 받은 여운환씨 등과 제주 휴가지 등에서 몇 차례 만나 식사를 한 것으로 드러나 김 의원이 여씨의 로비대상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을 샀다. 한나라당은 또 지난해 12월 진승현씨의 로비스트인 최택곤씨가 구속되기 전 구명을 위해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아태재단 부이사장을 찾아간 것이 드러나자 김 부이사장의 역할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온갖 의혹 속에서도 그동안 이들의 비리는 입증되지 않은 채 ‘설’로만 떠돌다 물밑으로 가라앉곤 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김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연루 의혹이 드러난 첫 사례. 그만큼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형택씨가 김 대통령의 처조카라는 점에서 김 대통령이 그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형택씨가 과거 야당 시절 DJ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돼왔기 때문에 이번 사건의 불똥이 김 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된 의혹으로 번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

실제 한나라당은 이형택씨가 보물선 사업 지분 15%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김 대통령의 비자금을 밝히라”며 공세에 나섰다. 장광근 수석부대변인은 “검찰 내부에서 ‘김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했던 이형택씨의 신분을 고려해 계좌추적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 흘러나온다”며 “권력핵심에서 계좌추적 불가 압력을 가했다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김 대통령은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청와대는 이런 주장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홍근 청와대 대변인은 “일부에서 이형택씨가 과거 김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한 것처럼 주장하고 이를 기정사실화하려 하고 있지만, 김 대통령의 비자금은 없다”고 반박했다.

대통령 개입 여부 따지는 야당

사진/ 대통령가의 친인척 비리는 대물림되는가.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의원과 차남 김홍업씨도 로비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이형택씨 관련 의혹이 점점 확산되면서 한나라당은 김 대통령의 직접 책임을 묻는 등 더욱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재오 총무는 1월28일 “대통령의 지시없이 단순히 수석 선에서 국가기관 등 조직을 동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대통령은 임기를 걸고 (국민들의 신임을 묻기 위한) 국민투표를 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김 대통령을 직접 공격하고 나섰다. 여권은 한나라당의 주장을 정치공세라고 반박하면서도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통령 친인척 비리는 대통령 자신의 도덕성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그동안 각종 의혹이 제기됐지만 다 의혹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처조카가 이권에 개입한 흔적이 있어 걱정이다. 한나라당에서 계속 쟁점을 삼겠지만 특검이 속시원하게 진실을 밝히는 것말고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보물선 사업과 관련해 문제가 되는 이형택씨의 행적은 두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상자기사 참조). 우선 이형택씨가 “제가 작용하거나 이득을 취한 바가 없다”는 지난해 9월의 국감 증언과 달리 보물선 사업의 지분에 참여하게 된 점이다. 또 이기호 경제수석을 통해 국정원과 해군, 해경을 움직여 보물선 사업에 개입하도록 한 과정도 의혹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특검팀은 이와 관련해 이형택씨의 사법처리에 대해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형택씨 비리의혹이 미칠 향후 파장. 이번 비리의혹은 그 비리의 규모나 개입 정도 등과 관계없이 향후 적지 않은 정치적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6월 지방선거와 12월 대선을 앞두고 야당에서 김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를 정치적 쟁점으로 삼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25 재·보선에서도 야당은 김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들이 진승현·정현준 게이트 등 각종 권력형 비리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 톡톡히 재미를 봤다. 한나라당은 벌써부터 이용호 게이트의 TV 청문회 개최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형택의 배후 여부에 정치권 촉각 곤두

특히 특검의 수사 결과 이형택씨의 보물선 사업 개입이 여권 핵심부와의 긴밀한 조율 아래 정치자금 모금 등을 위해 계획적으로 추진된 것으로 드러날 경우 그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는 이와 관련된 결정적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형택씨의 행적에 풀리지 않는 의혹이 남아 있는 것이다.

우선 이형택씨가 보물선 사업에서 확보한 자신의 지분을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감췄다는 점이 의혹을 부풀리게 하고 있다. 2000년 11월 이형택씨는 오아무개씨, 최아무개씨, 양아무개씨 등과 함께 15%, 75%, 5%, 5%씩 지분을 나눠 갖는다. 그러나 이듬해 2월 G&G그룹 이용호씨를 끌어들인 뒤 오씨는 이용호씨와 50 대 40으로 지분을 나눴으며 나머지 10%는 이형택씨의 동화은행 시절 부하직원이던 허옥석씨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바로 다음달 또 한번 계약을 갱신해 오씨와 이용호씨가 50 대 50으로 지분을 나눈다. 이 과정에서 이형택씨의 지분 15%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된 것이다. 특검팀 관계자는 “오씨의 지분 속에 이형택씨의 15% 지분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계약을 갱신하면서까지 자신의 지분을 숨긴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 꼭 숨겨야 할 배후가 있었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또 국정원, 해군, 해경 등 국가기관의 동원이 지휘체계에 있지도 않은 이기호 수석 혼자의 힘으로 되겠느냐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이 수석의 배후를 밝히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수석의 배후에 여권 실세가 작용했다는 주장인 것이다. 실제 최초의 보물선 사업자였던 소윤하씨는 “정보사 이아무개 중령이 99년말∼2000년초 ‘국가적 사업이니 사심을 가지지 말라’며 손을 떼도록 압력을 행사했다”고 말해 “이 수석 윗선에서 조직적으로 보물선 사업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힘을 실어줬다.

이런 사정들 때문에 이번 사건이 어디까지 비화할지 아직 가늠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특검팀 사정에 밝은 법조계의 한 인사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특검팀이 전혀 밑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한다. 처음에는 신승환씨 정도 잡아넣는 것으로 생각했다가 차츰 그림이 커져 이형택씨한테까지 왔는데, 또 이기호 수석도 나오고 이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크기로 커져 특검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끝까지 가봐야 알겠다는 게 특검팀의 생각”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사건 밑그림 오리무중… 진실은 뭔가

여권은 대통령 친인척의 요청에 따라 청와대, 국정원, 해군, 해경 등 주요 국가기관이 동요한 사건으로 보고 정치적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다. 애초 설 이후로 예정됐던 개각을 앞당겨 단행한 것도 이번 사건의 파급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분위기 쇄신이라는 개각조처가 얼마나 효험을 볼지는 이번 사건이 청와대쪽 주장대로 개인 이형택씨의 사건인지, 야당의 주장대로 DJ비자금 관리인 이형택씨의 사건인지 여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